[코스닥 뜯어보기]‘인건비 따먹기’ 하청경쟁

  • 입력 2002년 9월 23일 18시 49분


서울대투자연구회는 최근 가치투자자가 피해야 할 5개 업종을 선정하면서 시스템통합(SI) 업종을 첫째로 꼽았다. 실제로 SI업계의 현실은 적자에 가까운 영업이익률, 업체 난립과 출혈 경쟁, 낮은 진입장벽으로 요약된다. 당연히 주가도 크게 떨어져 2년 사이에 10%만 남은 주식이 널려 있다.

▽무늬만 첨단〓국내 SI업체 수에 대한 정확한 통계는 없다. 막연히 1000여개로 추정할 뿐이다. 이 가운데 연 매출액 20억∼30억원 규모가 전체의 90%를 넘는다.

출혈경쟁 탓에 순이익률은 1% 수준이다. 영업이익률은 5%를 밑돈다. 자기자본이익률이 금리를 밑돌아 시간이 지날수록 기업 가치를 갉아먹는 구조다.

LG경제연구원 최용호 연구원은 “한국 SI업체는 유통업체”라고 말했다. SI에 필요한 장비를 국내외 기업에서 사다가 설치해주는 수준이라는 의미.

전략을 짜주고 해법을 제시해 벌어들이는 ‘용역 매출’은 전체 매출의 20%선에 불과하다. 나머지 80%는 다른 회사 장비를 판 ‘상품 매출’이다.

여기에 중소업체들은 대형사의 하청업체로 전락해 ‘인건비 따먹기’식 사업을 하고 있다.

▽경쟁논리에서 벗어나라〓국내에서 웬만한 그룹은 SI업체를 계열사로 갖고 있다. 유행처럼 SI업체를 만들고 몸집 불리기에 바빴다. 이는 저가 수주 경쟁으로 이어져 업계의 발목을 잡고 있다.

한양증권 성태형 연구원은 “그룹간 경쟁논리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SI업계의 발전은 불가능하다”고 단언했다. 경쟁구조는 해외시장에서도 마찬가지여서 한 업체가 수주를 위해 공을 들여놓으면 다른 한국업체가 뛰어들어 가격을 떨어뜨린다.

성태형 연구원은 “80, 90년대 한국 건설업체들이 해외에서 출혈경쟁으로 제살을 깎아 먹었던 것과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삼성SDS LG-CNS SKC&C 현대정보기술 등은 모그룹 계열사에 대한 매출 비중이 최고 85%에 육박한다. 일반 수주에서 밑지고 그룹 일감으로 메우는 식이다. 이런 구조에서 기술을 쌓고 경쟁력을 높이기는 쉽지 않다.

▽전문화와 해외진출로 거듭나라〓정보통신부 소프트웨어진흥과 정석진 사무관은 “전문화로 실력을 기르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실적이 좋은 동양시스템즈, 신세계I&C는 각각 금융과 유통에 전문화돼 있다. 국방과 토목공사 등도 전문화할 분야로 꼽힌다.

정 사무관은 “SI는 한 업체가 모든 과정을 맡을 수 없다”며 “각 분야의 전문성을 갖춘 업체들이 그룹을 이뤄야 한다”고 지적했다.

해외시장 진출을 가장 중요한 과제로 꼽는 전문가도 많다. 현대정보기술 기획실 최윤권 대리는 “동남아시아나 중남미에서는 한국의 시스템을 모델로 삼는 곳이 많다”며 “꾸준히 실적을 쌓으면 해외에서 충분히 경쟁력이 있다”고 말했다.

정 사무관은 “해외시장에서는 편법이 통하지 않으므로 시스템 개발과정, 조직, 인력, 전문성, 위험관리 등의 수준을 한 단계 높여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은우기자 libr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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