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하위원회 “꼭두각시 노릇 안한다”

  • 입력 2002년 8월 7일 18시 24분


민간위원이 포함된 정부 산하 위원회가 과거와 달리 관련 부처의 ‘거수기 노릇’을 거부하고 정부의 ‘뜻’과 다른 결정을 내리는 사례가 부쩍 늘고 있다. 과거 산하 위원회를 ‘입맛대로’ 움직이던 정부로서는 예상치 못한 결과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8·8 재·보선에 출마한 강봉균(康奉均) 전 한국개발연구원(KDI) 원장의 후임을 뽑는 6일 국무총리실 산하 경제사회연구회 이사회 자리에서 ‘이변’이 발생했다. 새 KDI 원장에 김중수(金仲秀·55) 경희대 아태국제대학원장이 선출된 것.

정부는 당초 신임원장에 이계식(李啓植·54)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나 장하준(張夏準·39)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를 염두에 두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교수는 ‘DJ노믹스’의 이론적 토대를 제공한 ‘중경회’ 출신이고장 교수는 민주당 중진인 장재식(張在植) 의원의 아들.

김 신임 원장은 KDI가 첫 직장인 ‘KDI맨’이긴 하지만 김영삼(金泳三) 정부에서 대통령 경제비서관, 경제부총리 특보, 조세연구원장 등을 지냈다. 이 때문에 현 정부로서는 가장 달갑지 않은 후보라는 평이 투표 전부터 나돌았다. 실제 그에 대한 정부측의 ‘물밑 비토 움직임’이 곳곳에서 감지되기도 했다.

그러나 정부의 의도를 모를 리 없는 경제사회연구회 이사회 위원 중 민간위원을 중심으로 상당수가 ‘반란표’를 던지면서 의외의 결과가 나왔다. 특히 이사회 위원 12명 가운데 정부측 위원이 5명(1명 불참)이나 된 상황에서 김 원장이 선출되자 정부측은 적잖게 당황했다.

민간위원이 정부의 간섭에 노골적인 불만을 표시하면서 아예 사표를 던져버리는 사례도 늘어났다.

산업자원부 산하 무역위원회의 전성철(全聖喆) 위원장은 지난달 30일 청와대에 사표를 제출했다. 마늘 긴급수입제한조치(세이프가드) 연장을 위한 농민피해 조사에 대한 농민단체의 요청을 기각하는 결정이 나온 다음날이다. 그는 사퇴 이유서에서 “아직도 무역위원회를 행정의 하위개념으로 보는 것이 요즘의 상황”이라며 정부의 입김에 강한 불만을 표시했다.

또 지난달 30일에는 공자위 민간위원 중 한 명인 김승진(金承鎭) 변호사는 민간위원들의 의사와 관계없이 정부측이 대한생명 등 공적자금 투입 금융기관의 처리를 서두른다고 반발하면서 위원직 사의를 표명했다. 이에 앞서 5월3일 공자위 신임 민간위원장 선임과정에서도 재경부가 신임 위원장으로 사실상 ‘내정’한 인사가 민간위원들의 반발로 투표에서 지기도 했다.

서울은행 매각건 처리를 논의하기 위해 6일 열린 공자위 전체회의에서 예상과 달리 최종결정이 나오지 않고 회의가 다음주로 연기된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이날 일부 민간위원은 “인수과정에서 하나은행에 주어질 세제혜택에 대해 더 따져볼 여지가 있다”고 주장해 늦어도 이달 초까지는 서울은행 매각건을 매듭짓겠다고 강조한 재경부를 곤혹스럽게 했다.이같은 ‘위원회의 변신’을 놓고 정권 말기의 레임덕 현상과 연관해 보는 비판도 있다. 그러나 이런 측면을 감안하더라도 정부의 거수기 역할을 거부하고 독립적으로 판단하겠다는 민간위원들의 노력을 긍정적으로 평가해야 한다는 시각이 많다.

김광현기자 kk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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