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위 정책추진방식 논란]신문고시 무리한 추진 '각본'의혹

  • 입력 2001년 4월 5일 18시 41분


‘경제검찰’을 자처하는 공정거래위원회는 ‘보이지 않는 손’에 따라 움직이는가.

공정위가 신문고시(告示) 부활을 무리하게 밀어붙이고 있는 가운데 공정위의 정책추진 방식을 두고 행정부처 내에서 논란이 일고 있다. 공정위는 규제개혁위원회 민간위원들이 사실상 거부한 신문고시를 통과시키기 위해 3번이나 분과위를 열도록 주도하고 있다.

공정위는 “신문고시가 이번에 통과되지 않으면 신문시장이 무질서해진다”는 논리를 펴면서 밀어붙이고 있다. 대(對)언론사 주무부처가 아닌 공정위가 이같이 나서는 데 대해 ‘외압 의혹’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공정위는 독자적인 정책결정이라고 주장한다.

▽몰아붙이기 업무추진 방식〓공정위는 신문고시가 민간위원들의 제지를 받아 통과되기 어려워지자 일부 ‘시민단체’의 논리를 그대로 본뜬 보완자료를 4일 규개위에 또 올렸다. 공정위는 언론개혁시민연대와 전직 보급소 지국장 출신 모임인 신문공정판매총연합회 등 비공식 단체들을 이해관계인으로 동원해 자신들의 논리를 뒷받침하는 데 활용했다. 정상적인 대응방안을 찾지 못하자 외곽단체를 동원한 셈이다.

공정위는 1차 회의 때 민간위원들이 제기한 문제점을 2번째 심의에서도 명쾌하게 밝히지 못했다. 무가지(無價紙) 제한과 신문 강제투입 및 본사와 지국간 관계 등 핵심 쟁점사안에 대해 위원들은 여전히 이의를 제기했다.

공정위는 더욱이 한때 무가지 비중을 내년부터 전면금지하는 방안을 올렸다가 ‘없던 일’로 했다. 언개련 등의 말을 그대로 따라가려다 규개위 실무국의 제지를 받을 만큼 무리수를 둔 것이다.

▽언론장악 각본 동원 ‘의혹’〓공정위의 언론사 조사와 신문고시 제정은 6개 업종에 대한 ‘클린마켓 프로젝트’의 일환이다. 이 프로젝트는 외형상으로는 포괄적인 시장개선 대책을 담고 있으나 사실상 신문, 특히 ‘빅3 신문 목조르기’를 겨냥한 것으로 풀이된다. 신문고시 제정은 정상적인 업무절차에서 상당히 벗어나 있다. 공정위 방침대로라면 언론사에 대한 공정거래 위반 조사가 끝나고 시장실태를 파악한 다음 여론수렴 절차를 거쳐 고시제정 여부를 검토하는 것이라야 한다.

공정위는 신문사에 대한 조사가 시작된 닷새 뒤 신문고시 제정 카드를 들고 나왔다. 또 정확히 신문사 조사 보름 만에 신문고시 초안을 만들어 발표했다. 고시 초안이 나올 때는 아직 4개 신문사 조사가 진행 중인 상태로 시장현실을 파악하지 못한 상태였다. 의료제약 건설 정보통신 등 나머지 5개 업종의 경우 제도개선은커녕 실태조사도 답보상태를 면치 못하고 있는 것에 비춰보면 아주 대비된다. 미리 플랜을 짜놓고 하나하나 꿰맞춘다는 의혹을 받는 대목이다.

▽기업조사 본업은 제쳐둔 채 신문사 조사에 주력〓환란 이후 금융감독위원회와 함께 기업개혁을 주도하던 공정위는 조사국 직원들에게 모두 신문사 조사에 매달리도록 하고 있다. 여기다 3월말까지 끝날 일정을 한달 더 연장했다. 조사국 직원 외에도 독점국 등 다른 부서직원들도 차출돼 있다.

자유시장경쟁 체제를 모토로 삼는 공정위는 본업인 기업조사는 제쳐두고 신문사 불공정거래를 샅샅이 뒤지고 있다. 공정위 실무자들조차 “위원장과 일부 간부들 주도로 ‘마녀사냥’식 언론사 조사에 나서 공정위가 20년 동안 쌓아온 신뢰가 훼손당하고 있다”고 비판하는 분위기다.

▽20년 공정위 역사에 정치논리 흠집 우려〓규개위의 한 민간위원은 “공정위가 신문고시를 다시 살려 간섭을 해야 할 정도로 신문사들이 특별감시를 받아야 하는지 의심스럽다”며 “아무리 의도가 순수하다고 주장해도 고시 제정시기와 추진방법 등에 대해 의혹을 떨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공정위 내부에서도 상당수 실무자들은 “과거 신문고시와 달리 이번 고시안은 공정위가 사전에 명백한 의도를 갖고 추진하는 만큼 실제 고시가 발효될 경우 신문사에 재갈을 물릴 강력한 수단이 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최영해기자>money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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