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주가 끌어올려라"다급한 CEO들

  • 입력 2000년 12월 7일 18시 30분


삼성전자 윤종용 부회장은 아침에 출근하면 컴퓨터 앞에 앉아 간밤의 미국 나스닥 시장 상황부터 체크한다. 이달초 주가관리를 위해 본격 가동에 들어간 IR팀으로부터 수시로 보고를 받고 사안별로 대처 방안을 지시한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올해 세계 전자 및 정보통신 분야에서 5위권의 순이익을 냈는데도 시가총액은 30위권에 불과하다 보니 임원들의 관심이 온통 주가에 쏠려 있다”고 말했다.

내년초 그룹의 지주회사로 변신하는 LG화학 성재갑 부회장은 국내 기관투자가들을 직접 만나 회사의 올해 경영실적과 앞으로의 계획을 설명하는데 열을 올린다. 4일부터 12일까지 홍콩 뉴욕 런던 등 6개 도시에서 진행중인 해외 로드쇼 상황을 점검하면서 해외 투자자들의 반응에도 신경을 쓴다.

연말이 다가오면서 주요 기업의 CEO(최고 경영자)들이 주가를 끌어올리기 위해 총력전을 펼치고 있다.

▽“CEO 능력은 주가가 말한다”〓CEO들이 유독 연말 주가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주가가 경영평가의 핵심항목인데다 올해 종가가 내년초 주가흐름에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기 때문.

삼성은 CEO의 경영실적을 평가할 때 재무성적에 전체 점수의 70%를 배정하고 나머지 30%는 시가총액과 주가 상승률 등 주가관련 성적으로 매긴다. 전체 종합주가지수와 업종별 특성을 감안하기는 하지만 주가가 낮은 CEO 입장에서는 신경이 쓰일 수 밖에 없다.

그룹의 간판인 삼성전자는 내년 1월 19일까지로 예정된 자사주 344만주 매입계획을 앞당겨 연말에 집중적으로 사들이기로 했다.

엔지니어링 테크윈 중공업 제일모직 등 주가가 액면가를 밑돌거나 액면가 수준에 머물고 있는 회사들은 비상이 걸린 상태. 제일모직은 올해 10%의 고배당을 약속했다.

LG 그룹의 경우 경쟁 그룹보다 주가가 더 큰 폭으로 떨어져 CEO들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현대건설 사태로 그룹 이미지가 손상된 현대는 계열사 CEO들이 책임지고 주가를 끌어올리도록 했다.

▽CEO는 괴롭다〓삼성 LG 현대 등 주요 그룹의 임원 인사시기가 내년초로 연기돼 CEO들이 주가에 쏟는 관심도 이와 비례해 높아졌다.

상당수 기업들은 IR팀을 CEO 직속으로 신설하거나 보강했다. 삼성전기 이형도사장은 개인 홈페이지의 ‘팬클럽’ 코너에 보내온 소액투자자들의 질문에 직접 응답한다. 굵직한 합작사업이나 신제품 발표 시기를 가급적 연말에 집중시키는 것은 물론 해외 IR에 CEO가 직접 나가 설명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재계에서는 최근 주가하락으로 고전중인 모 그룹 계열사 대표가 해외 출장중 과로로 인해 코피를 흘렸다는 소문도 나돌고 있다. 그만큼 CEO들의 몸도 마음도 고달프다는 것.

미국에서는 주가가 폭락하면 주주총회에서 최고경영자가 주주들에게 공개 사죄를 한다. 재계 관계자는 “지금처럼 주가가 맥을 못추는 상황이 계속되면 내년 주총에서는 주가하락에 대해 고개를 숙이고 용서를 비는 CEO들이 국내에도 여럿 나올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박원재기자>parkwj@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