잇단 금융사고 - 위기의 금고

  • 입력 2000년 11월 27일 18시 30분


27일 오후 서울 북창동의 C상호신용금고. 낡은 잠바와 펑퍼짐한 바지를 입은 50대 여성이 들어섰다. 99년 여름, 시중은행에 넣어두었던 남편의 퇴직금을 시중은행보다 금리가 2%포인트 더 높은 이 금고로 옮겼지만 요즘엔 불안한 마음에 밤잠을 설칠 지경. 김모씨(53·서울 광진구 구의동)는 “서민에겐 2%도 크지만 요즘 같아선 돈을 찾고 싶다”고 털어놨다.

서민들의 사랑을 받아왔던 금고업계가 잇단 불법대출로 휘청거리고 있다. 신용금고와는 전혀 성격이 다른 신용협동조합이나 새마을금고도 금고 사고 여파로 인출 문의가 잇따르고 있다. 내년부터 시행될 예금부분보장제도 때문에 예금이 빠져나가는 상황에서 불법의 온상으로 비쳐져 고사할 위기에 놓인 것.

서민 금융이 몰락할 위기에 놓이자 서민들이 그 피해를 고스란히 떠안게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서민금융 고사 땐 서민만 피해〓금고 등 서민금융기관이 무너지면 은행에서 대출받기 힘든 고객은 사채시장을 찾을 수밖에 없다. 사채시장은 고금리는 물론, 폭력동원 등 불법적인 채권 회수로 연일 말썽을 빚고 있다. 결국 서민만 피해를 보는 셈.

지난달 서울 동방금고의 불법대출 사건 이후 영업 정지된 금고는 대신 정우 대한(인천) 장항(충남) 동방(전남)에 이어 열린금고가 여섯번째. 이중 인천의 정우와 대한, 장항 금고 등은 예금 인출로 영업정지를 맞게 됐다.

이 때문에 금고들도 대출을 꺼리는 실정. 서울 코미트금고의 윤호근기획부장은 “금고 위기설로 고객이 예금을 인출하는 데다 연말 자금 수요에 대비해 대출을 꺼리고 있다”며 “금고가 몸을 사려 대출금을 회수하면 당장 상인들의 자금줄이 마를 것”이라고 말했다.

이 금고 대출의 60∼70%는 남대문의 영세 상인. 신용등급을 제대로 평가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은행과는 거래가 쉽지 않은 고객들이다. 새마을금고는 10월말 현재 약 238만명에 이르는 신용불량자도 회원으로 받아 일정 정도의 금융거래를 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 신협도 조합원엔 5000만원까지 신용대출을 해주고 있다.

▽서민금융을 살리려면〓회원이나 조합원으로 구성되는 새마을금고나 신협에 비해 신용금고에 출자자 불법대출이 잦은 것은 대주주가 ‘주인’처럼 경영과 인사를 좌우하기 때문.

여기다 98년 금고의 인수가 승인제에서 신고제로 바뀌자 사금고(私金庫)화가 목적인 자본도 쉽게 침투하게 됐다. 금융감독원은 이에 금고법을 개정, 신용금고 인수를 다시 승인제로 바꾸겠다고 밝히고 있으나 국회의원 등 이해관계자가 복잡하게 얽혀 개정여부는 불확실하다.

전문가들은 금고의 정상화를 위해선 구조조정을 서둘러 ‘옥석’을 가리라고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금고 이미지 추락에 따라 부실금고 인수자도 나서지 않아 올 연말까지 구조조정을 마무리하려던 금융 당국의 계획에도 차질이 불가피할 전망. 24일 영업정지된 신중앙(서울) 신충은(충북) 광주(광주) 등 세 개 금고의 ‘매각 공개 설명회’가 열렸으나 단 한 건의 신청도 없었다.

금고업계는 금고법이 개정돼 저축은행으로 개명하게 되면 ‘부실과 비리’의 이미지를 털어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나연기자>laros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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