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 저문' 서산농장 발길 무건운 현대…매년 적자농사

  • 입력 2000년 7월 17일 18시 50분


<<정주영(정주영) 전 현대명예회장은 “땅은 결국 후손들에게 돌아간다. 당대엔 자금이 한없이 투입되고 이익을 보상받기 어렵지만 민족의 이름으로 후손에게 돌아간다”는 말을 자주 해왔다. 정 전 명예회장이 이때 말하는 ‘땅’의 구체적 대상은 충남 서산농장이다.

이런 자부심 때문일까. 서산농장에 대한 그의 애착은 각별하다. 고령에도 틈만 나면 서산농장을 찾는다. 3월 두 아들의 ‘왕자의 난’때도 서산으로 내려갔다. 공교롭게도 “땅에서 이익을 보상받기 어렵다”는 정 전 명예회장의 말이 현실화됐다.>>

무려 6400억원의 공사비가 투입된 서산농장이 현대건설의 발목을 잡고 있다. 투자자들은 현대건설측에 ‘건설회사가 무엇 하러 농지를 가지고 있느냐’고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지만 현대건설측은 마땅한 대안이 없어 애를 태우고 있다.

▽서산농장 무엇이 문제인가〓지난해 서산간척지에서 생산된 쌀은 25만8300가마. 현대측은 쌀을 팔아 86억원의 이익을 냈다. 그러나 전체 공사비의 이자만 감안해도 서산농장은 매년 500억원 이상의 적자를 보고있는 셈이다.

서산농장의 쌀 생산량은 1마지기에 1.8가마수준. 일반 농가 쌀 생산량(1마지기에 4가마)에는 턱없이 못미친다. 염분농도가 높고 사력질 토양으로 단위 면적당 쌀 생산량이 낮기 때문. 결국 농사를 지어서는 채산성이 맞지 않는다는 결론이 나온다.

현대건설측이 16일 서산간척지에 첨단산업단지를 건설하는 방안을 내놓은 것도 이런 상황을 벗어나기 위한 고육책. 그러나 문제는 이 방안도 현실성이 별로 없다는 점이다.

서산농장은 농지로 묶여있어 산업단지 조성도 불가능하다. 설령 특혜논란이나 ‘바늘구멍을 통과할 만큼 복잡한 절차’를 거쳐 정부가 용도변경을 허락하더라도 공단에 입주할 기업이 많을 것 같지는 않다. 지방자치제 실시이후 각 지자체가 공단을 앞다투어 조성해 공장용지가 초과공급 상태이고 산업구조가 고도화되면서 공단 수요가 자꾸 줄어들고 있기 때문.

▽‘왕회장’의 빗나간 계산〓정 전 명예회장은 왜 무리하게 서산간척지 조성을 강행했을까. 과연 ‘민족의 대역사’라는 책임감만으로 엄청난 자금이 들어가는 공사에 뛰어들었을까.

재계에서는 “서산간척지 조성은 농토에 대한 집념 외에 ‘왕회장’ 특유의 직관적인 계산에 따른 것이지만 결국 실패한 사업으로 봐야 한다”고 말한다.

정 전 명예회장은 78년말 중동건설경기의 하강으로 해외 건설현장에 투입됐던 노동력과 건설장비의 활용방안으로 서산간척사업을 생각해냈다. 또 경제가 계속 발전하면 서해에 울산처럼 대규모 공단이 필요해질 것이고 자연스럽게 서산농장의 일부를 공단으로 전용하면 공사비는 충분히 건질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는 것.

그러나 ‘정부만 설득하면 모든 것이 된다’는 발상이 더 이상 통하지 않게 됐고 산업구조 변화로 대규모 공단의 필요성이 줄어들면서 ‘왕회장’의 야심은 오히려 현대의 발목을 잡는 실패작이 됐다.

▽현대의 속마음〓현대측은 일단 농지를 공단으로 전용하는 것은 어렵다고 보고 서산농장에 대한 청사진을 제시, 서산농장의 미래가치를 올려놓고 자산담보부증권(ABS) 발행을 원하고 있다. 주채권은행측이 현재의 서산농장으로는 ABS발행이 어렵다는 입장이기 때문.

전문가들은 “현대가 서산농장에 대한 소유권을 가지고 있는 한 용도변경은 특혜시비가 나올 수밖에 없다”며 “현대가 잘못된 판단에 대한 책임을 지고 서산농장의 지분중 상당부분을 정부에 헌납한 뒤 정부 주도로 서산간척지 일부를 개발하는 방안을 검토해볼 만하다”고 지적한다.

<이병기기자>ey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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