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기업, 제 사업 뒷전 머니게임 열올려

  • 입력 2000년 6월 27일 18시 55분


상당수 상장기업과 코스닥기업이 벤처기업 투자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일부 기업은 정도가 지나쳐 마치 벤처캐피털과 다를 바 없다는 지적도 듣는다. 대기업들이 핵심역량에 집중하지 않고 문어발식 확장을 일삼던 것에 빗대 ‘낚시발식 투자’라고 일컫기도 한다.

▽창업투자회사 임원의 분노〓최근 국내 유수의 창투사 고위 임원인 A씨는 다우기술측의 행태에 크게 화를 냈다. 이 창투사는 다우기술 자회사인 다우인터넷(다우기술지분 74%)과 이머니(52%)에 100억원을 기술개발용으로 투자했다.

그런데 다우인터넷과 이머니는 이 자금을 코스닥종목인 한국신용평가정보 지분을 매입하는데 사용했다. 다우기술과 다우데이타시스템 등도 176억원을 함께 투자해 한신평정보 지분을 16%이상 확보해 최대주주가 됐다.

A씨는 “벤처기업에 대한 투자라면 전문가인 우리가 다우인터넷이나 이머니보다 훨씬 더 잘 할 수 있다”며 “다우인터넷 등이 밝힌 투자목적의 내용을 이사회에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겠다”고 다짐했다.

이에 대해 다우기술측은 “한신평정보가 확보하고 있는 콘텐츠를 활용할 경우 다우인터넷 이머니와의 시너지효과가 클 것”이라며 “주주로 참여하는 것이 시너지효과를 더욱 높일 수 있고 투자목적도 있다”고 말했다.

▽코스닥기업 벤처투자 기승〓코스닥기업의 타법인 출자규모는 올 들어 23일까지 1조2298억원(공시기준)으로 올해 1·4분기(1∼3월) 당기순이익 5591억원의 2배가 넘는다. 영업이익 이 아주 적거나 적자인 인터넷관련 기업이 주도하며 공모나 유상증자 대금이 재원이다.

이중 새롬기술은 55억원을 출자하면서 아예 벤처기업 육성과 투자활성화를 위해 창투사 성격의 새롬벤처스(자본금 250억원)를 세웠다. 새롬측은 “시세차익을 노린 게 아니라 인터넷사업을 위한 네트워크를 만들려는 것”이라고 밝혔다.

다음커뮤니케이션이 ‘사업을 벤처전문 인큐베이팅 업체로 확대한다’며 테크퍼시픽 코리아에 8억원(지분 40%)을 출자한 것도 눈에 거슬리는 대목. 에스오케이(옛 범아종합경비)는 2월 사이버패트롤에 5억원(지분 10%)을 출자한 뒤 한달만에 지분 5%를 100억원에 팔아 ‘인터넷 사업진출’이라는 출자목적을 헷갈리게 만들었다.

증권전문가들은 영업이익을 내기 어려운 인터넷기업이 연구개발(R&D)과 시설투자보다는 관련기업출자로 시너지효과를 높이려는 점은 어느 정도 이해하지만 공모자금의 대부분을 벤처기업에 투자하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이진·김두영기자>lee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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