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건설 로비]정치자금 축소조작 의혹증폭

  • 입력 2000년 6월 6일 19시 14분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 대상인 동아건설의 고병우(高炳佑)회장 등이 지난 4·13총선 당시 여야 출마자 100여명에게 거액의 선거자금을 살포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는데도 정치권의 침묵과 사정당국의 불분명한 수사의지, 고회장측의 임기응변식 말 바꾸기 등으로 의혹이 증폭되고 있다.

이 같은 상황이 벌어지자 시민단체 관계자들은 한결같이 정치인 자금수수의 법적 도덕적 책임 규명 및 고회장 등의 업무상 횡령 혐의 등에 대한 즉각적인 검찰수사를 촉구하고 나섰다.

▼정치권 침묵▼

4·13총선 과정과 직후 목청을 높여 ‘깨끗한 정치’ ‘개혁정치’를 외치던 여야 정치권 인사들은 엄청난 국민적 부담을 안겨준 워크아웃 업체로부터 상당수의 현역 의원들이 선거자금을 받은 사실이 드러나자 일제히 침묵을 지키고 있다.

민주당은 6일에도 일절 입장발표를 하지 않고 있으며 한나라당은 권철현(權哲賢)대변인의 논평을 통해 “사건의 정치적 배경이 의심스럽다”고 주장했다.

▼당사자 변명 은폐▼

선거자금을 받았다고 시인한 총선 출마자들은 “후원금으로 처리했기 때문에 문제되지 않는다”고 주장하면서 지원자금이 워크아웃 대상 기업으로부터 나왔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고 있다.

또 일부 자금수수 정치인들은 “후원금 내용을 공개하는 것은 정치자금법 위반이 될 수 있다”며 “공개할 경우 법적으로 대응하겠다”고 말했다.

▼후원금처리절차 문제▼

현행 정치자금법은 후원금의 경우 영수증을 발급하고 후원금 장부에 기록한다는 규정만 있을 뿐 기장(記帳)이나 영수증 발급의 시한을 규정하지 않아 문제가 된 정치인들이 사후 기장 등 편법을 동원할 가능성도 있다.

중앙선관위의 한 관계자는 “현행 제도상 4·13총선 당시 동아건설의 자금을 받아 써 버렸다 해도 지금 그만큼의 금액을 다른 곳에서 구해 후원금 계좌에 입금조치하고 동아건설의 후원금이라고 기장하면 실질적으로 위법 여부를 파악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미진한 동아건설측 해명▼

동아건설측은 5일 국회의원 및 국회의원 후보자 55명에게 올해 1∼4월 중 공식 후원금으로 1억2070만원을 제공한 내용을 공개하면서 정작 이 돈을 받은 당사자들의 명단은 공개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동아건설측은 “적법한 돈임에도 불구하고 혹시 문제가 있는 돈으로 국민에게 비쳐져 당사자들에게 누가 될지도 모른다는 우려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고회장의 말 바꾸기▼

고병우회장은 3일 밤 본보 기자에게 “20∼30명의 후보자들에게 (500만∼2000만원의) 절반 정도를 줬다”고 말하다 ‘회사 돈을 빼내 선거자금으로 준 것은 불법’이라고 지적하자 “30만∼50만원도 줬고 100만∼200만원도 줬다”고 액수를 낮췄다.

고회장은 이어 본보 5일자 1면에 동아건설의 선거자금살포 사실이 보도되자 즉각 기자회견을 자청해 “20만∼30만원씩 후원금을 주긴 했지만 총선 때 로비자금을 뿌린 적은 없다”고 부인했다.

▼시민단체 반응▼

참여연대 박원순(朴元淳)사무처장은 “동아건설측과 정치인들에 대한 검찰 수사가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면서 “또 고회장에게서 돈을 받은 정치인들이 선관위 신고내용에 이를 포함시켰는지 여부도 확인해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경실련 이석연(李石淵)사무총장은 “이번 건은 정경유착의 실례”라고 전제하고 “검찰이 남북정상회담 후에나 본격 수사를 하겠다는 것은 정치적 고려에 의해 책임을 방기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함께하는 시민행동 하승창(河勝彰)사무처장은 “동아건설이 일정시기에 집중적으로 여러 사람에게 돈을 주었다는 것은 자금제공에 대가성이 있었다고 볼 수도 있는 부분”이라면서 “검찰 수사를 통한 사실관계 확인이 급선무”라고 말했다.

<서영아·윤영찬·하종대기자>sy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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