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그룹 해체]'주군'떠난 현대…'가신'들은 어디로

정주영(鄭周永)현대명예회장이 선단식 경영을 포기하고 전문경영인에 의한 자율 경영을 선언함으로써 각사 사장단의 거취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평소 본사에는 잘 나타나지 않던 계열사 간부들도 1일 본사에 나와 계열사 사장단의 거취를 묻고 명예회장이 밝힌 ‘전문경영인’의 개념이 무엇인지 확인하는 등 사장단 인사에 지대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

또 몽구(夢九·MK) 몽헌(夢憲·MH)회장의 가신그룹도 ‘주군’과 함께 행동을 할 것인지 주목된다.

정부의 고위 관계자들은 사석에서 “현대의 가신그룹 몇 명이 현대그룹을 농단하고 있다”고 수차례 말하는 등 가신그룹에 대해 불쾌한 심기를 간접적으로 전달해왔다.

현대관계자들은 사장단 인사와 관련, “오너들이 일시에 퇴진하고 몽구회장의 반발도 수습되지 않은 혁명적인 상황에서 외부인사 영입이나 사장단 인사까지 할 경우 경영공백이 오기 때문에 전문경영인 인사는 단기간에는 어렵다”며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야 경영진 인사가 있을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현재 가장 관심이 가는 인사는 현대증권 이익치(李益治)회장의 거취. 이회장의 거취에 대해서는 극단적인 예측이 엇갈린다.

이회장의 주변인사들은 우선 현대증권 현대투신 현대생명 등 금융계열사가 금융 소그룹으로 묶여질 경우 이회장이 회장 1순위후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회장은 대북사업 개척, 바이코리아 열풍 등을 통한 몽헌회장의 후계체제 확립에 1등 공신.

그러나 그는 공이 많은 만큼 적도 많다. 반대세력은 이회장에 대해 “주가조작과 현대투신 부실사태 등으로 금융시장을 교란했고 현대계열사의 동반부실을 가져왔다”고 비난하고 있다. 특히 이회장은 금융소그룹의 회장으로 승진할 경우 ‘전문경영인 체제’에 걸맞지 않고 ‘몽헌회장이 이회장을 통해 여전히 영향력을 유지하려 한다’는 비난을 살 우려가 있어 그의 승진이나 유임에는 난관이 많다.

안공혁(安恭赫)현대투신회장 이창식(李昌植)현대투신사장 등은 전문경영인으로 분류되지만 현대투신의 부실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해 변수가 많다.

사장단 중 정명예회장과 가장 가까운 김윤규(金潤圭)현대건설 및 아산사장도 주목대상. 입사 이래 30여년간 건설에만 근무해왔기 때문에 전문경영인이라고 할 수 있지만 현대건설의 자금난을 가져온 책임이 있다.

김재수(金在洙)구조조정본부장도 가신그룹으로 구설수에 올라 있다. 건설에서 줄곧 재무업무를 담당해온 김본부장은 현대건설로 다시 돌아갈 가능성이 높다.

자동차소그룹의 경영진은 몽구회장의 거취와 상관관계가 높아졌다.

몽구회장의 뜻이 관철돼 자동차 소그룹 회장직을 유지할 경우 사장단은 전원 유임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몽구회장이 물러날 경우 자동차그룹 회장은 영입인사, 특히 외국인 전문경영자가 선임될 가능성이 높다. 정명예회장은 “자동차 회장은 국제적인 감각을 가진 전문경영인이 필요하다”고 수차례 강조해왔다.

또 이계안(李啓安)현대자동차사장 등 현재 사내외적으로 경영능력을 인정받고 있는 사장단도 능력여부를 떠나 이번 내분사태와 관련 책임을 물어 전원 사표를 써야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몽구회장을 잘 보필하지 못한 것에 대한 책임추궁.

현대전자의 박종섭(朴宗燮)사장 현대중공업 조충휘(趙忠彙)사장 현대상선의 김충식(金忠植)사장 등은 현재 경영상의 잘못도 없고 경력상 전문경영인에 가깝기 때문에 유임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현대전자는 몽헌회장이 회장직에서 물러났기 때문에 외부 전문가가 회장으로 영입될 가능성도 점쳐진다.

<이병기기자>ey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