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B의 금리인상 배경

  • 입력 2000년 5월 17일 07시 28분


'인플레 주치의' 앨런 그린스펀 미 연준리(FRB) 의장이 미국경제에 또 한차례 예방주사를 주입했다. 이번 인플레 예방주사는 다른 때보다 약성분이 대단히 강했다. 예방약성분(금리 인상폭)이 0.5%포인트를 기록했다.

작년 6월 이후 이제까지 5차례에 걸쳐 지켜온 물리치료를 포기하고, 미사일 요법을 채택한 것이다. 0.5%포인트 인상은 지난 95년 2월 이후 5년여만에 처음.

이뿐 아니라 '인플레 닥터' 그린스펀은 미사일 요법에다 '재할인률 조작'이라는 추가 조치까지 취했다. 재할인률을 종전 연 5.25%에서 6.00%로 무려 0.75%포인트나 올린 것이다.

이에따라 은행간 콜금리인 연방기금(FF)금리는 이날부터 종전 연 6.0%에서 6.5%로 높아졌다.

FF금리와 재할인률은 각각 1991년 1월과 8월 이후 9년여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0.5%포인트 인상배경=미국경제에 인플레 징후가 갈수록 뚜렷해 짐에 따라 경기과열을 진정시키고 물가불안을 사전에 차단시키겠다는 것이 가장 큰 인상배경이다. 특히 이번의 0.5%포인트 인상은 인플레를 억제함으로써 과열권에 접어든 미국경제를 연착륙시키겠다는 그린스펀의 강한 의지이기도 하다.

4월중 소비판매가 지난 98년 이후 처음으로 감소하고, 또 생산자물가지수도 0.3% 줄어든 것으로 나타나면서 물가상승 압력을 둔화시킨 게 사실이다. 또한 이날 발표된 소비자물가지수(CPI) 역시 변동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식품 에너지를 제외한 핵심물가지수는 0.2% 증가했다.

미국경제에 완연해진 '인플레 증상'이 나아지고 있다고 하기에는 너무 미약한 수치들이다.

작년 4/4분기 경제 성장률이 7.3%로 FRB가 적정 수준으로 판단하는 2∼3%를 크게 웃돈 것은 물론 올 1/4분기에도 5.4%의 높은 성장률을 기록, 과열증상을 더욱 뚜렷이 했다. 앞선 3/4분기에도 성장률이 5.7%에 달했었다.

특히 인플레 조짐의 바로미터인 노동시장의 움직임에 이상이 발견됐다. 실업률이 30년만의 최저치인 3.9%까지 떨어져 언제든지 임금인상을 통한 인플레가 촉발될 가능성이 높아진 상황이다.

FRB는 최근 더욱 뚜렷해지고 있는 구직자수 감소 현상이 결국은 임금인상을 촉발, 심각한 물가불안을 초래할 수 있다는 점에 금리정책의 무게를 싣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인플레 싹을 잘라내 후환을 없앤다는 데 정책의 최우선을 두고 있다는 얘기다.

이밖에 이번에 기회를 놓치면 금리정책을 조절할 타이밍을 놓칠 수 있다는 판단도 서둘러 금리를 올린 이유로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향후 전망

이날 시장은 FRB의 0.5%포인트 금리인상에도 불구, 큰 폭의 오름세를 보였다. CPI 등이 시장에 우호적으로 발표된 데 영향을 받은데다, 특히 금리인상이라는 악재가 이미 시장에 충분히 반영됐다는 인식이 투자자들 사이에 확산되며 매수세가 물밀 듯이 유입된 것이다.

시장분위기에 고무된 탓일까. 향후 시장을 낙관시하는 전망이 늘어나고 있다.

미국증시에서 그린스펀 다음으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으로 알려진 골드만삭스의 수석투자전략가 애비 조셉 코헨이 이날 오전 금리 인상이 0.5%포인트로 결정되도 앞으로 주가는 계속 상승할 것이라고 전망한 것도 투자자들에게 힘을 실어줬다. 그녀는 이날 아침 주요 고객들에게 보낸 보고서를 통해 0.5%포인트의 금리인상은 이미 채권 및 주식시장에 반영됐으며, 이같은 정책결정이 미국의 경기확장국면을 계속되게 하는 데 오히려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녀는 S&P500지수의 연말 전망치를 종전대로 1,575로, 내년봄 전망치를 1,625로 유지하면서 증시의 상승국면이 지속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FF금리 목표치가 7%까지 상승할 것으로 분석하는 전문가들이 역시 늘어나는 추세여서 섣부른 판단을 주저케하고 있다. 로이터통신은 16일 뉴욕증시 폐장 후 정부채권 전문 딜러 29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FF금리가 올해안에 7%로 0.5%포인트가 더 추가될 것으로 전망하는 딜러가 늘어나고 있다고 보도했다.

FRB 역시 FOMC 회의가 끝난 뒤 발표한 성명성에서 "미국경제의 수요와 공급에 심각한 불균형이 보이고 있다"며 금리의 추가인상을 고려하고 있음을 시장에 공포했다.

전문가들은 "인상폭의 대소는 이제 더 이상 관심사가 아니다"라며 FRB가 향후 경제를 어떻게 평가하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들은 특히 FRB가 경제 성장률이 적정 수준보다는 높지만, '견딜 수 있는(sustainable)' 수준인 3.5-4.0%(연률) 주변으로 내려올 때까지 연준리의 금리인상 협박과 단행은 계속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살로몬 스미스 바니의 존 맨리 분석가는 "속도를 줄이기 위해 FRB는 브레이크를 밟을(금리인상)수 밖에 없다"며 "다만 브레이크를 밟는 강도(인상폭 및 횟수)가 관심"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추가 금리인상 시기와 규모를 6월과 8월 중 각각 0.25%포인트로 전망하며, 따라서 미국증시는 적어도 찬바람이 불 때까지는 커다란 대세전환을 맞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관측이 우세하다.

뉴욕=방형국<동아닷컴 기자>bigjob@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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