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금융부문 갈등…이익치증권회장 경질-번복 소동

  • 입력 2000년 3월 15일 22시 58분


현대그룹의 5대 주력부문중 금융부문 장악을 둘러싸고 정몽구(鄭夢九)회장과 정몽헌(鄭夢憲)회장간의 세력싸움이 극에 달하고 있다. 두사람 간에 극적인 화해가 없다면 현대그룹이 두동강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을 정도로 내분이 심각한 상태다.

현대그룹은 15일 현대증권 이익치(李益治)회장을 고려산업개발회장으로 임명하고 노정익(盧政翼)현대캐피털부사장을 현대증권 사장으로 내정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그룹측의 발표가 나자마자 현대증권측은 “정몽헌회장이 미국에 나가있는 사이에 최대주주인 정회장의 의사와 관계없이 이루어진 인사”라며 “이번 인사를 수용할 수 없다”고 정면으로 반발하고 나섰다. 정몽헌회장이 이날 아침 국제전화를 통해 이회장 경질소식을 듣고 “누구 마음대로 인사를 하느냐”고 격노하며 취소를 지시했다는 것이 측근 인사의 전언. 이에 따라 이회장의 경질은 어정쩡한 상태에 있다.

현대증권의 지분은 정몽헌회장의 현대상선이 16.7%로 가장 많고 다음은 현대중공업(3.2%) 외국인(3.9%) 순이며 나머지는 일반 개인주주들이 갖고 있다.

현재 현대그룹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은 금융부문의 주도권을 둘러싼 갈등에서 비롯됐다.

정몽헌회장의 사람으로 알려진 이회장을 정몽구회장이 밀어내고 노부사장을 현대증권 사장으로 임명, 현대증권내에 자신의 영향력 확대를 시도했다는 것.

그러나 정몽헌회장이 맏형인 정몽구회장의 결정에 정면으로 반발하고 나서면서 현재로서는 이번 인사가 어떻게 결말이 날지 아무도 모르는 상태가 됐다.

두 형제간의 후계구도를 둘러싼 갈등이 밖으로 표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정몽구회장은 지난해말 그룹인사에서 자신의 측근인 이계안(李啓安)현대자동차사장을 현대증권 사장으로 보내고 정주영(鄭周永)명예회장의 직계로 알려진 박세용(朴世勇)구조조정위원장을 현대자동차회장으로 받아들이는 한편 이익치현대증권회장을 현대상선과 종합상사의 회장으로 보내려 했다. 그러나 이 안 역시 정몽헌회장이 강력히 반발, 박세용회장이 인천제철회장으로 가게 됐다는 것이 그룹내부사정에 정통한 사람들의 전언.

두 형제가 현대증권의 경영권을 놓고 충돌하는 것은 앞으로 현대그룹이 자동차(정몽구) 전자 및 건설(정몽헌) 중공업(정몽준) 금융 등 5개 소그룹으로 분리될 때 금융소그룹을 장악하는 측이 정주영명예회장의 실질적인 후계자임을 대외적으로 확인시키고 또 자금원을 확보하게 돼 회사운영을 훨씬 손쉽게 할 수 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특히 정몽구회장은 빠르면 올 9월 현대자동차 기아자동차 등 자동차소그룹을 그룹에서 분리해 나올 예정이기 때문에 다소 무리수를 두더라도 그룹에서 분리되기 전에 금융소그룹을 장악하려는 의도라는 것이 내부의 분석.

아무튼 두 형제간의 갈등은 정주영명예회장이 직접 나서서 불을 끄지 않는 한 앞으로 더욱 심각한 상태로 발전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연로한 정명예회장은 아직까지 어느 편의 손도 안 들어주고 있다.

그룹내부에서는 금융부문의 경영권을 놓고 두 형제가 이렇게 갈등이 계속될 경우 금융소그룹 분리안이 백지화되고 현대증권 현대투신 현대캐피털 현대생명 등을 쪼개서 두 형제가 나눠 가질 가능성도 있다고 보고 있다.

<이병기기자> ey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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