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 재무팀 곤욕]"주가 띄워라" 개미들 종일 전화공세

  • 입력 2000년 3월 15일 19시 21분


지난달말 인터넷 벤처기업인 버추얼텍 사무실. 오전9시 업무가 시작되자마자 전화벨이 울렸다.

“투자자인 데요. 듣자하니 미국 통신업체와 손을 잡는다는 데 AT&T가 맞죠?”

한 경제지에 버추얼텍이 미국의 5대 통신업체 가운데 한 곳과 손을 잡을 계획이라는 기사가 나자 걸려온 전화였다. 버추얼텍측은 해당 업체와 제휴하면서 당분간 언론에 공개하지 않는다는 조건을 붙였기 때문에 이름을 말해줄 수는 없었다.

“회사 기밀사항이라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30분후 다시 울리는 전화벨.

“혹시 시스코가 아닌가요?”

▼제휴사실 '유도심문'▼

이 투자자는 이날 하루동안 5차례나 전화를 걸어 ‘유도 심문’을 했고 재무팀과 홍보팀 직원들은 번갈아가면서 전화를 받느라 진땀을 뺐다. 회사의 이름을 알려주지는 않았지만 결국 ‘손을 잡는다’는 사실 만큼은 확인해준 셈이 됐다.

버추얼텍이 코스닥시장에 등록한 것은 1월초. 등록 후 매일같이 회사의 정보를 캐거나 증시에 나도는 루머를 확인하는 전화가 수십통씩 걸려온다. 언론 보도나 인터넷 등 온라인에 나도는 정보로 만족 못하는 ‘개미’들이 직접 전화를 걸어 사실 여부를 확인하는 것. 이 때문에 재무팀장을 비롯, IR(투자자 관리)와 관련된 직원들은 개인 투자자의 전화를 받는 게‘일’이 되어버렸다.

‘코스닥 황제주’로 통하는 새롬기술이나 다음커뮤니케이션의 사정은 더욱 심하다. 새롬기술 관계자는 “주가가 조금만 떨어져도 회사 전화망이 불통될 정도로 전화가 폭주한다”고 털어놓았다. 특히 회사와 관련된 공시가 나거나 루머가 돌 때, 또 언론에 회사 관련 기사가 보도되는 날은 관련 부서 직원들이 비상 대기를 해야 한다.

▼"공시 자주하라" 요구▼

다음의 재무팀 관계자는 “‘어느 기업은 매일 공시가 나가는 데 다음은 왜 2주일간 한번도 공시를 하지 않느냐’, ‘왜 언론에 자주 보도가 안되느냐’는 등 주가를 높이기 위해 노력해달라는 요구도 많다”면서 “이런 저런 하소연을 듣다보면 낮시간에는 다른 업무를 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업체에 직접 전화를 하는 부지런한 ‘개미’들 덕분에 전략적 제휴나 외자 유치, 기술 개발 등 호재가 터져도 막상 발표 당일에는 주가가 떨어지는 ‘기현상’도 비일비재하다. 발표 며칠전부터 주가에 미리 반영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정보 미리 알리려 노력▼

일부 벤처기업에서는 투자자들의 문의에 앞서 기본적인 정보는 미리 공개하려는 노력도 벌어지고 있다. 버추얼텍의 경우 인터넷 홈페이지에 투자정보 코너를 마련, 영업실적과 재무 상태, 경영상 주요 계약 사항 등을 올려놓고 있다.

<홍석민기자>sm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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