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 정부' 2년]분야별 성적 점검/날개단 경제 '生氣'

  • 입력 2000년 2월 24일 19시 40분


▼ 정치분야 ▼

김대중(金大中)정권의 지난 2년은 한마디로 ‘절반의 성공’으로 요약된다. 동아일보 여론조사(23일자)에서도 나타나듯 경제와 외교안보는 비교적 후한 점수를 얻고 있지만 정치안정 지역갈등해소 등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평가가 더 많기 때문이다.

국내정치의 불안정은 2년 내내 김대통령의 ‘난제’였다. 2년 동안 여야는 단 한차례의 ‘대타협’도 보여주지 못한 채 대립과 정쟁으로 일관했다.

여권은 그 이유를 ‘소수정권’이라는 태생적 한계와 야당의 ‘반대를 위한 반대’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자민련과의 공동정권이라는 헌정사상 초유의 실험도 그렇고,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 실질적인 여소야대 상황 등이 구조적 요인이 됐다는 것. 일면 일리 있는 주장이다.

그러나 그 본원적 책임은 집권당의 정치역량 미숙과 판단착오에서 먼저 찾아야 한다는 것이 보편적인 시각이다.

우선 민주적 절차를 강조하면서도 자주 나타나는 김대통령의 독단적 배타적 리더십은 인사나 정책 면에서의 오류를 초래한 요체가 됐다.

이는 또 여권 내의 국정운영시스템 부재라는 부작용으로 이어졌다. 지역편중인사도 대립양상을 심화시켰다. 3급 이상 중앙공무원의 지역별 분포가 영남 34.2%, 호남 24.4%, 충청 17.2%, 경인 18.4%라는 정부의 통계수치에도 불구하고 호남인맥의 요직장악이 논란의 빌미를 제공했다.

김대통령에게 4월 총선은 정치적 불안정을 해소하느냐, 증폭시키느냐를 가늠하는 시험대. 그러나 공교롭게도 집권 2주년이 되는 날 터져나온 자민련의 ‘공동정부 철수선언’으로 총선 후 정국운영의 밑그림을 다시 그려야 할 힘든 상황이 됐다.

<최영묵기자> ymook@donga.com

▼ 경제분야 ▼

현정부가 경제 분야에서 거둔 최대의 성과는 외환위기로 인해 파탄상태에 빠진 나라 경제를 되살리고 우리 경제가 다시 한번 도약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했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성장률 물가 금리 등 주요 경제지표가 외환위기 이전 수준을 회복했거나 오히려 웃돌아 ‘제2의 한강의 기적’이라는 찬사까지 나올 정도.

경제지표만 놓고 보면 현정부의 경제성적표는 일단 합격점을 받을 만하다.

외환위기 직후인 98년 국내총생산(GDP) 기준 경제성장률은 ―5.8%였지만 작년에는 10.2%(추산)로 가파른 상승곡선을 그렸다.

금융 기업 노동 공공 등 4대부문의 개혁도 비교적 성공적으로 진행됐다는 평가. 은행 종금 등 347개의 부실 금융기관이 퇴출되면서 금융 분야에도 시장원리 도입이 확산됐고 삼성 현대 LG SK 등 4대 대기업집단의 부채비율은 98년말 352%에서 작년말 200% 아래로 낮아졌다.

그러나 지난 2년 동안의 가시적 성과에 만족하는 것은 시기상조라는 지적이다.

우선 대내외 여건이 심상치 않은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국제유가가 배럴당 최고 30달러를 넘고 일본 엔화가치가 떨어지면서 당장 무역수지와 국내 물가에 큰 부담을 주고 있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빚을 합한 국가채무는 작년말 현재 107조원으로 96년말보다 두 배 가량 늘었다.

경제회복 과정에서 오히려 전보다 더 벌어진 계층간 소득격차를 좁히고 실업자를 줄이는 대책도 마련돼야 한다. 벤처열풍과 코스닥활황으로 일부 계층의 부가 급증한 반면 절대 빈곤층도 증가해 97년 116만명에 그쳤던 생활보호대상자 수는 지난해 192만명으로 늘었다.

총선을 앞두고 정치논리가 다시 경제논리를 압도하는 듯한 움직임도 경계대상으로 지목된다.

<박원재기자> parkwj@donga.com

▼ 외교안보분야 ▼

지난 2년 간 김대중(金大中)정부의 외교-안보-통일 정책은 ‘대북포용정책’의 일관성 있는 추진을 통한 한반도 냉전체제 해체에 초점이 맞춰졌고 비교적 성공적이라는 평을 들었다.

잠수함 침투(98년6월), 장거리 미사일 실험발사(98년8월), 서해교전(99년6월) 등 북한의 계속된 도발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과거정권과는 달리 정경분리 원칙을 지켰다. 대북 포용정책은 △남북경협 △금강산 관광 등의 가시적 성과를 일궈냈다. 이로 인해 지금까지 18만명이 금강산을 관광하고, 9270여명이 북한을 방문하는 등 남북간 인적교류가 급증했다.

대외적으로는 한 미 일 3국간의 굳건한 공조체제의 토대 위에서 북한의 대량살상무기 억제전략을 무리없이 추진해 왔다. 또 미 일을 비롯한 서방국가들의 대북 관계정상화에 대해서도 북한을 개방사회로 끌어낼 수 있는 동인(動因)으로 보고 긍정적 입장을 취했다.

주변 4강에 대해서도 일본과는 과거사 청산을 통한 미래지향적 파트너십 구축을 선언했고, 중국 및 러시아와는 지속적인 관계개선 노력을 경주해 안정적인 관계를 구축했다.

그러나 부정적인 평가도 없지 않다. 정부의 지속적인 햇볕정책에도 불구하고 남북관계는 제자리걸음이다. 98년과 99년 두 차례에 걸쳐 중국 베이징(北京)에서 열린 비료회담을 제외하곤 당국자 접촉은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 북한은 의도적으로 남한과의 대화를 피한 채 미 일 수교에만 집착하는 모습이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정부의 포용정책이 오히려 북한에 역이용당하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포용정책에 상응하는 남북간의 관계개선, 이것이 김대중정부가 남은 3년동안 성과를 보여야 할 과제다.

<윤영찬기자> yyc1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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