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헤란로 보면 한국경제 보인다"… 디지털 벤처 중심지로

  • 입력 2000년 2월 22일 19시 03분


‘중동 건설붐의 상징, 무역의 전진기지, 한국의 월스트리트에서 서울 디지털 밸리로….’

5000여개의 벤처기업이 빌딩숲을 채우면서 국내 벤처산업의 메카로 각광받고 있는 테헤란로. 경제의 중심축이 이동할 때마다 그 역할을 달리해온 테헤란로를 두고 사람들은 ‘한국경제사(史)의 산실’이라고 부른다.

외환위기 시절 공실(空室)대란사태를 맞기도 했지만 지금은 명실상부한 한국 벤처산업의 중심지로 자리매김하면서 21세기 한국경제를 이끌어갈 희망의 거리로 다시 태어나고 있다.

▽테헤란로의 탄생〓서울 지하철 2호선을 따라 강남구 서초역에서 삼성역까지 10km 남짓한 8차선 도로. 이곳은 72년 한양천도 578주년 기념으로 ‘삼릉로’로 명명됐다가 76년 ‘테헤란로’로 이름이 바뀐다. 당시 중동건설 붐에서 실리를 찾기 위해 테헤란 시장의 방한을 기념, 명명됐으며 그 후 테헤란로는 중동진출의 상징으로 떠올랐다. 83년부터 본격적으로 개발되기 시작해 80년대말에는 10층 이상의 고층 빌딩이 매년 수십개씩 솟아올랐다.

▽무역의 전진기지〓88년 삼성동 무역센터에 국내무역의 총본산이라고 할 수 있는 ‘한국무역협회’가 입주하면서 테헤란로는 당시 500∼600개 가량의 무역업체들이 들어선 ‘수출입국’의 상징이 됐다. 이들 업체가 테헤란로로 집결한 것은 무역관련 정보수집이 용이하고 임대료 할인혜택을 받을 수 있는 무역센터에 중소무역회사들이 집중적으로 이전했기 때문. 정부의 지속적인 ‘수출 드라이브 정책’과 테헤란로 일대 사무실 공급량이 늘어난 것도 테헤란로를 ‘무역의 전진기지’로 만든 요인으로 꼽힌다.

▽한국의 월스트리트〓90년대 중반 대기업 계열사와 유망중소기업들의 ‘강남러시’가 시작되면서 이들 기업과 거래하려는 금융업체가 테헤란로로 몰리기 시작했다. 후발 은행들의 시장공략에 위기감을 느낀 선발은행들이 이 지역에 경쟁적으로 지점을 낸 것도 테헤란로가 금융의 거리로 변신하게 된 중요 이유 중 하나. 여기에 보험사 파이낸스와 할부금융사들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테헤란로는 ‘일(一)빌딩 오 (五)금융업체’로까지 여겨졌다. 하지만 국제통화기금 관리체제 이후 금융권에 퇴출, 합병 바람이 불면서 지금은 금융업체수가 당시 1000여개의 20% 수준 이하로 떨어졌다.

▽벤처산업의 메카〓“사람은 서울로 보내고 벤처는 테헤란로로 보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테헤란로는 한국 벤처산업을 상징하는 ‘실리콘 밸리’로 자리잡고 있다. 벤처창업투자회사, 벤처기업 전문 홍보대행사, 벤처맨을 대상으로 하는 휴게시설, 야간 카페 등 벤처와 관련있는 업체만도 1만여개에 달할 정도.

초기에는 통신망 등 정보통신 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고 투자회사 등이 인접해 있다는 점 때문에 벤처기업들이 모여들기 시작했지만 지금은 벤처업계 정보의 보고(寶庫)로 더욱 가치를 높이고 있다.

정보통신부 산업기술과 김치동과장은 “테헤란로에는 정보통신 관련 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고 정부도 지속적인 벤처 지원책을 펴나갈 계획이어서 앞으로도 디지털 산업의 중심지로 자리잡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정훈기자> sunshad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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