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로만『벤처육성』…정부-지자체 지원책만 무성

  • 입력 1999년 4월 12일 19시 51분


벤처기업 지원책이 겉돌고 있다.

정부와 서울시 등 각 지방자치단체가 “이제 경제는 벤처기업에 달렸다”며 앞다퉈 육성책을 내놓고 있지만 현장에선 여전히 “현재의 지원체제로는 어림도 없다”고 입을 모은다.

아이디어 하나로 승부를 거는 벤처기업인들은 한결같이 △정보통신 인프라(기반시설)미비 △비효율적인 자금 지원 △탁상공론식 육성대책 등을 문제점으로 지적했다.

▼ 기반시설

“오늘도 또 인터넷이 완행버스구만….”

12일 오전 서울 송파구 잠실6동 송파구청 별관. 10층 건물의 7층에 입주해 있는 한 벤처기업 직원들이 컴퓨터 앞에 모여 앉아 불만을 터뜨렸다. 송파구청은 지난해 9월 별관 7∼10층을 ‘벤처타운’으로 조성해 비교적 싼 값에 임대했다.

그러나 아직도 벤처기업에 필수적인 인터넷 전용선을 제대로 깔지 않았다. 7층에 입주한 10여개 벤처기업은 할수없이 전용선 하나를 공동으로 끌어다 나눠 쓰고 있다. 그러다 보니 전송속도가 느리고 툭하면 접속이 끊기기 일쑤다.

서울 관악구 신림2동 오성벤처타워빌딩도 사정은 비슷하다. 말만 벤처타워지 근거리통신망(LAN) 등 정보통신 인프라를 갖추지 못하고 있다.

입주업체인 S텔레콤 사장 양모씨는 “관악구청이 마련한 벤처타워라고 해서 기대를 갖고 입주했는데 막상 와보니 일반 사무실과 다를게 없다”고 말했다.

▼ 자금지원

최근 정부가 잇따라 내놓은 벤처기업 자금 지원책도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다. 지원절차가 워낙 복잡하기 때문이다.

현재 벤처기업 확인서를 받으려면 △창업투자회사 등이 자본금의 20%이상을 출자했거나 △전년도 총매출액의 5% 이상을 연구개발비에 투자했다는 근거서류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신생 벤처기업에 출자를 할 금융기관이 있을리 없다.

결국 담보를 제시하고 은행에서 돈을 빌려야 한다. 물적 담보가 없는 경우엔 기술을 담보로 기술신용보증기금에서 돈을 빌리는 방법이 있긴 하다. 그러나 이 역시 현실과는 거리가 멀다.

한 벤처기업인은 “사업성이 있는 기술이라고 인정을 하면서도 매출실적을 요구하고 그게 없으면 담보를 요구하는 실정”이라고 한숨지었다.

▼ 탁상공론식 육성대책

정부와 각 지방자치단체가 내놓은 벤처기업 지원책 중에는 실효성이 없는 생색내기용 중복 발표가 적지 않다. 서울시는 3월초 강남 서초지역을 ‘서울 소프트웨어 타운’으로 조성하고 관악 구로 당산 구의 지구 등 지하철 2호선을 따라 ‘서울 소프트웨어 벨트’를 구축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이 계획은 연초에 이미 정보통신부가 발표했던 내용이다.

직접 벤처기업을 운영중인 서울대 공대 이면우(李冕雨)교수는 “서류작성에 능한‘엉뚱한 벤처기업들’이 행정적인 지원을 독차지하고 있다”며“행정당국은 현장의 세밀한 고충을 들여다봐야 한다”고 말했다.

〈김경달·이명건기자〉da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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