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철주총, 외국인투자자 포진…발언권 당당히 요구

  • 입력 1999년 3월 17일 08시 17분


16일 오전 정기주주총회가 열린 포항제철 본사 대강당. 이날 주총장에서는 예년에 볼 수 없던 풍경이 연출됐다. 정부측 인사들이 으레 앉던 맨 앞자리가 파란 눈의 서양인 등 외국인들 차지가 된 것.

이날 참석한 외국투자자들은 10여명. 모건스탠리와 뉴욕은행 등 기관투자가를 중심으로 한 이들은 포철 전체 지분의 41%를 보유하고 있는 대주주들이다.

▽실세로 떠오른 외국투자자〓외국인 투자자들은 이날 주총 진행에 별다른 제동을 걸지는 않았다. 민영화 이후의 경영권 방어를 위한 전환우선주 도입과 이사회 경영권 강화 등 회사측이 마련한 정관변경안은 원안대로 통과됐다. 그러나 국내 투자자들끼리만 모여서 일사천리로 진행되던 작년까지의 주총과는 분명 달랐다.

가령 유상부(劉常夫)회장이 경영보고를 하던 중 델 릭스 ABN암로아시아증권 서울지점장이 발언권을 신청, “향후 배당정책에 대해 설명해달라”고 요구해 좌중을 긴장케 했다.

불과 10여명의 외국인들을 위해 회사측은 영어와 일어 동시 통역 서비스까지 제공했다.

주총시간은 작년보다 30분 가량 길어졌다.

포철이 외국인 주주들을 ‘실세’로 대접한 건 이뿐만이 아니다. 외국인들의 참석을 유도하기 위해 지난달부터 이들과 수시로 연락을 취했다.

주총 전날엔 유회장이 외국인과 국내 기관 주주 대표들을 따로 만나 경영방침과 정관 변경안에 대해 설명하고 이해를 구하기도 했다.

▽합격점 받은 유상부체제 1년〓주총이 열린 이날은 유회장이 취임한지 1년째 되는 날. 포철 주변에서는 유회장의 1년을 과감한 ‘자르기’로 요약한다. 전임 김만제(金滿堤)회장이 의욕적인 확장전략을 폈던 것과 대비한 것.

유회장은 김전회장 시절 벌였던 광양의 5고로와 1,2미니밀, 4냉연공장 등 국내외 15개 투자사업을 중단하거나 가동보류했다. 작년에 사상 처음으로 80여만t을 감산했으며 올해엔 이보다 1백만t 가량을 더 감산할 계획이다.

이같은 축소경영은 작년 사상최대 흑자(1조2천억원)로 귀결돼 일단 ‘합격점’을 받았다. 그 덕에 작년에 포철에 복귀하면서 받았던 ‘TJ(박태준·朴泰俊자민련총재)사단’이라는 시선도 상당부분 씻고 ‘철강전문가’로서의 명성을 확인했다.

〈이명재기자〉mj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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