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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1998년 6월 30일 19시 3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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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은행 플래카드가 대동은행 간판을 덮고 있다. 29일부터 이곳은 국민은행 광교임시점포다.
한 남자가 경찰 4명이 경비를 서고 있는 쪽문을 열고 황망히 들어섰다. 출입문은 철제셔터가 내려진 채 굳게 닫혀 있다. 이 남자는 잡담을 나누고 있던 인수팀 직원들 앞에 섰다.
“언제쯤 돈을 찾을 수 있나요.”
“글쎄요. 저희도 잘 모르겠어요. 당분간 찾을 수 없을 거예요.”
“당분간이라니 며칠쯤입니까.”
“알 수 없지요.”
김대룡(金大龍)국민은행 정릉동지점 부지점장은 이곳 인수책임자.
김씨는 “어제(29일) 중소기업 사장인 듯한 사람으로부터 문의전화가 왔어요. 30일 지급날짜인 대동은행 어음인데 어제 교환을 돌려 오늘 찾아 써야 하는데 어떻게 하면 좋으냐고 묻더군요. 직원들 월급을 줘야 하는 것처럼 들렸어요. 사장 정도 하는 사람이 그렇게 준비성이 없어서 어떻게 하느냐고 제가 물었더니 정부가 보장해 준다고 해서 마음놓고 있었다는 거예요.”
30일 오전 11시30분경 동남은행 광화문지점.
인수측인 주택은행의 하종기(河宗基)서대문지점 대리는 오전 3시까지 이곳 지점으로 돌아온 어음과 수표를 일일이 전화를 걸어 연장처리하고 아침 일찍 출근한 때문인지 다소 피곤해 보인다.
“찾아오는 고객이 많나요.”
“뭐 직접 찾아올 필요가 있나요. 전화를 하면 되지. 오늘은 어제보다 전화가 더 많이 오는 것 같아요.”
“오늘 아침에는 장사를 하려고 가게를 하나 빌리기로 했는데 잔금을 치르지 못해 계약금을 떼이게 됐다고 호소하는 전화가 왔어요. 실직하고 퇴직금으로 이 은행의 1천만원짜리 양도성 예금증서(CD)를 사뒀는데 만기가 7월1일이래요. 이 돈을 찾아 잔금을 치르지 못하면 계약금 3백만원을 떼이게 된대요. 실직자에게 3백만원이 적은 돈은 아니죠.”
기자가 “정부에서 예금을 수기(手記)로 지급할 수 있다고 했는데 어떻게 돈을 내줄 방법이 없나요”하고 묻자 하씨는 “잔액도 확인해야 하고 보증인도 세워야 한다는데 그게 어디 쉽나요”라고 답했다.
30일 오후 2시경 경기은행 서울지점.
경기은행과 월 7억∼8억원의 무역금융거래를 해왔다는 김모씨는 이틀째 업무중단으로 외환네고를 못하게 되자 또 다시 은행을 찾았다.
김씨는 “14만달러의 물품을 수출키로 계약하고 외환네고를 해야 하는데 은행업무가 중단돼 전신환 송달 여부조차 확인되지 않는다”며 답답해 하다가 허탈하게 발길을 돌렸다.
업무인수차 나와있는 한미은행 직원들도 답답하기는 마찬가지.
“우리도 대책이 없고 정부도 대책이 없습니다. 졸지에 회사를 잃게 된 사람들 입장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지만 어차피 이렇게 된 이상 인수업무에 협조해줬으면 좋겠어요.”
〈송평인기자〉pi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