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퇴」지점장들 부실대출 속앓이…『퇴직금 몇푼남나』우려

  • 입력 1998년 3월 10일 19시 01분


“그게 어떻게 내 잘못이란 말이오. 이것 저것 빼고나면 몇 푼 남지도 않겠네….”

“사정은 딱하지만 규정상 회사가 모두 다 떠안을 수는 없잖아요.”

은행들이 몸집 줄이기 차원에서 대규모 명예퇴직을 실시하면서 불거진 퇴직 지점장들의 부실대출 문제를 처리하느라 골치를 앓고 있다.

10일 금융계에 따르면 각 은행은 지점장이 본점 심사부의 승인을 받지 않고 처리한 여신중 부실화한 부분의 책임소재를 가리기에 한창이다.

2월말 현재 19개 시중은행과 지방은행이 명예퇴직시킨 직원은 모두 1만2천여명. 이 가운데 지점장급인 1,2급은 1천4백88명이다.

지점장 전결 대출은 보통 건당 1천만∼3천만원으로 큰 액수는 아니지만 1인당 부실대출이 한건씩이라도 전체 금액은 줄잡아 3백억원에 이른다.

1월31일자로 총 1천4백92명을 내보낸 서울은행은 아직까지 1,2급 직원 10여명을 무보직 상태로 대기시키고 있다. 은행과 개인책임 지분산정이 끝나지 않았기 때문.

퇴직절차를 마무리하지 못한 한 은행원은 “퇴직금을 받아 창업자금으로 써야 하는데…”라고 푸념하면서 “매일 출근해 하는 일 없이 앉아있기도 미안해 얼마가 남든 빨리 돌려달라고 요청했다”고 털어놓았다.

은행권 가운데 가장 많은 1천8백49명을 1월에 명예퇴직시킨 제일은행도 1,2급 1백14명에 대한 부실대출 검사가 덜 끝나 퇴직금은 일단 절반만 주고 나머지는 검사국의 심의가 끝난 뒤 주기로 했다.

막상 지점장들의 잘못을 가리는데 있어 은행의 입장은 비교적 관대한 편. 한 시중은행 임원은 “20여년간 고락을 함께 했는데 하루 아침에 냉정하게 ‘법대로 하자’고 할 수 있겠느냐”며 “명백한 고의나 과실이 있을 때만 퇴직자들의 책임을 묻기로 했다”고 말했다.

〈정경준기자〉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