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캉드쉬의 訪韓12시간]힘없는 정부와 냉정한 협상

  • 입력 1997년 12월 4일 07시 44분


미셸 캉드쉬 국제통화기금(IMF)총재는 3일 오전 7시35분 부인과 함께 싱가포르 항공편으로 김포공항에 도착했다. 공항에서 그는 부드러운 미소를 머금은 채 『한국인들이 조금만 인내심을 갖고 기다려준다면 좋은 소식을 듣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한마디가 이날 하루 국민을 목메어 기다리게 만들 줄은 아무도 몰랐다. 공항에서부터 그는 『협상과 관련, 아무런 할 말이 없다』며 답변을 회피하기 시작했다. IMF협의단이 캠프를 차린 힐튼호텔에 여장을 푼 캉드쉬총재는 임창열(林昌烈)부총리와 협상에 들어갔으나 예정된 타결시간을 넘겼다. 재정경제원은 오전중 최종협상이 쉽게 타결될 것으로 보고 오후 2시반에 기자회견을 갖겠다고 해놓았다가 이를 허겁지겁 연기했다. 연기 이유에 대해 임부총리는 『좀더 지켜봐야겠다』며 어두운 표정이었다. 캉드쉬총재의 첫 타깃은 현재와 미래의 대통령. 그는 세종로 정부종합청사를 나와 청와대로 향했다. IMF자금지원을 받겠다고 말하는 김영삼(金泳三)대통령에게 『역사에 훌륭한 인물로 남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역시 부드러운 미소와 함께. 오후에는 미래의 대통령들의 반응이 나오기 시작했다.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후보는 오후 1시경 대구유세를 위해 서울을 떠나면서 김포공항에서 재경원 강만수(姜萬洙)차관을 만나 합의문을 이행하겠다고 서명했다. 국민회의 김대중(金大中)후보도 이번 대선에서 집권할 경우 우리 정부와 IMF간 협약 내용을 준수하겠다는 공한을 김대통령 앞으로 보내기로 했다. 정치권을 「아우르고」 힐튼호텔로 돌아왔던 캉드쉬총재가 오후 2시반 다시 세종로 정부종합청사로 향했고 지루한 막판 협상이 시작됐다. 협상은 오후 6시40분으로 예정된 비행기 출발시간을 넘겨가며 계속됐다. 이경식(李經植)한국은행 총재가 정부종합청사로 협정체결 의향서에 서명하기 위해 달려와 회의장으로 들어간 것이 바로 오후 6시 40분. 약 1시간 뒤 캉드쉬총재가 임부총리와 함께 기자회견장에 나와 짤막한 성명을 발표했다. 기자들의 질문을 받지 않겠다는 조건이었다. 그는 『한국이 IMF가 요구하는 프로그램을 이행하면 한국경제가 안정과 성장을 얻을 수 있게 될 것』이라는 말을 남기고 일본 도쿄행 비행기를 타기 위해 공항으로 향했다. 그가 서울에 있는 12시간여 동안 일국의 대통령과 대통령후보들, 부총리와 중앙은행총재 등이 그의 따뜻한 말 한마디를 기대하는 눈치였으나 그는 자기가 하고 싶은 말만 하고는 총총히 한국을 떠났다. 〈백우진·이용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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