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얼마 안 있으면 각종 카드와 지폐를 넣어 불룩해진 지갑을 포켓에 넣고 다니는 사람은 줄어들 것 같다. 주머니 속에 무거운 동전을 넣고 다닐 필요도 없을 것 같다.
카드 한장으로 일상적인 지급 결제를 모두 해결할 수 있는 크레디피아(Credipia)시대가 눈앞에 성큼 다가왔기 때문이다.
이런 시대에는 카드로 3백원짜리 껌 한통을 사더라도 미안한 마음을 가질 필요가 없다. 잔돈이 필요해 일부러 물건을 사고 지폐를 바꾸는 일을 이젠 하지 않아도 된다.
현금은 아니지만 현금과도 같은, 그래서 진짜 현금을 쓸 필요가 없는 그런 세상이 열리고 있다.
캐나다 남부 온타리오주 한 가운데에 있는 인구 10만명의 작은 도시 구엘프(Guelph). 이곳 주민은 지갑에 현금이 별로 없다. 현금 대신 몬덱스(Mondex)카드라고 불리는 전자화폐를 지갑에 넣고 다닌다. 자동차 부품업체에 근무하는 다릴 스미스(28)는 몬덱스카드 잔고를 확인하는 일로 아침 일과를 시작한다. 잔고가 부족하다 싶으면 집에 있는 전화기를 이용해 캐나다 로열뱅크에 있는 자신의 계좌에서 몬덱스카드에 돈을 이체한다.
지난 2월 구엘프시가 전자화폐 시범사용지역으로 선정된 이후 스미스는 집울타리를 벗어나 현금을 쓸 일이 별로 없게 됐다. 카페테리아에서 점심을 사먹거나 서점에서 책을 구입할 때도 현금 대신 몬덱스카드로 결제한다. 심지어 시내버스 요금, 공중전화 요금, 자동판매기 요금도 몬덱스카드가 해결한다.
스미스는 『처음에는 몬덱스카드를 현금처럼 사용할 수 있을까 반신반의했는데 가맹점이 늘고부터는 현금보다 훨씬 편리하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고 말했다. 현금은 분실할 위험이 높고 더욱이 동전은 갖고 다니기 불편하지만 몬덱스카드는 그런 부담이 전혀 없다는 것. 구엘프시에서는 지난 7월말까지 약 7천5백장의 몬덱스카드가 발급됐다. 주민 13명당 1명꼴로 몬덱스카드를 사용하고 있는 셈이다. 가맹점은 이 지역 상점의 90%에 달하는 5백70개. 공중전화기도 3대중 1대는 몬덱스카드로 통화가 가능하다. 몬덱스 캐나다사의 조 클라크 홍보담당국장은 『크고 작은 상점에서 몬덱스카드가 통용되면서부터 현금 사용량이 부쩍 줄어들었다』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 2월이후 6개월동안 몬덱스카드 회원에게 발급된 전자화폐 금액은 1백만캐나다달러(약 6억6천6백만원)에 달했다.
전자화폐의 원리는 간단하다. 신용카드의 기억장치 역할을 하던 자기띠(마그네틱 스트라이프)를 떼어내고 컴퓨터 칩(IC칩)을 내장하는 것. 마이크로프로세서를 장착한 전자화폐는 마치 컴퓨터처럼 돈을 빼고 더하는 계산기능에 익숙하다. 고객은 은행의 현금자동입출금(ATM)기나 전자화폐 겸용 전화기를 이용, 자신의 계좌에서 전자화폐로 현금을 이체하면 적어도 시범지역에서는 현금이 없어도 안심할 수 있다.
전자화폐를 도난당하거나 분실하더라도 「잠금장치」나 비밀번호를 활용하면 신용카드처럼 다른 사람이 대신 사용할 염려는 하지 않아도 된다.
특기할 만한 점은 전자지갑(Electronic Wallet)이 있으면 즉석에서 은행을 이용하지 않고 개인간 현금이체가 가능하다는 것. 즉 상대방의 전자화폐에 이체하는 방법으로 꾼 돈을 갚을 수 있고 자녀에게 용돈을 줄 수도 있다는 얘기다. 95년 영국에서 첫선을 보인 전자화폐 몬덱스카드는 현재 홍콩 호주 캐나다 미국 등 15개국에서 시범지역을 정해 소액거래에 화폐 대신 사용되고 있다. 비자카드인터내셔널과 함께 세계 신용카드 시장을 양분하고 있는 마스터카드인터내셔널은 지난 2월 몬덱스카드를 인수, 차세대 카드시장인 전자화폐 분야 장악을 꿈꾸고 있다.
이른바 선불형태인 몬덱스카드와 신용카드 직불카드를 한데 합친 「IC 원(One)카드」를 내년 7월경 상용화할 계획이다.
〈구엘프(캐나다)〓이강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