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금융공황은 막아야

  • 입력 1997년 5월 23일 20시 06분


기업의 대량 부도사태가 더이상 방치해선 안될만큼 심각하다. 지난 4월 한달 어음부도액이 사상 최대인 1조9천억원에 달했고 1천3백여개의 기업이 쓰러지는 등 재계가 부도 공포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올해들어서만도 한보 삼미 진로 대농 삼립 등 재벌그룹이 줄줄이 부도를 내거나 구제금융으로 연명하는 가운데 30위 내외의 내로라하는 대기업의 추가부도설까지 끊이지 않는다. 재계에는 6월에 가면 일대 금융대공황이 올지 모른다는 위기감이 확산되고 있다. 불경기와 구조조정 과정에서 경쟁력 없는 기업이 시장경제원리에 따라 도태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러나 금융시스템의 불안정이나 정책부재에서 오는 자금압박으로 건실한 기업이 대거 도산하는 상황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지금이라도 정부와 금융권은 회생 가능한 기업의 연쇄부도방지 대책을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 체질강화를 위한 경제구조조정이 옥석(玉石)을 가리지 않는 기업 부도로 해석되는 경향은 경계해야 한다. 그럼에도 최근 정부와 정치권은 경제에 관한 한 손을 놓고 있는 모습이다. 여당 야당 할 것 없이 정치권은 민생이나 경제상황은 외면한 채 온통 대선(大選)에만 매달려 있다. 수많은 기업이 쓰러지고 실업자가 급증해도 정치인들은 관심이 없다. 정부도 마찬가지다. 정권말기에 접어들면서 경제정책을 추스르고 경제를 활성화하려는 공무원들의 모습은 찾아보기 어렵다. 기업의 대량부도가 확산되는데도 금융정책 주무부서인 재정경제원은 중앙은행독립 금융감독권 등 밥그릇 싸움에만 몰두해 왔다. 이런 가운데 금융시장은 한심하게 돌아가고 있다. 한달전 졸속 시행된 금융단의 부도방지협약은 멀쩡한 기업을 부도로 몰아가는 등 금융혼란을 가중시켰다. 협약체결 이후 부실징후기업 리스트가 금융가에 나돌면서 대출금이 묶일 것을 우려한 제2금융권이 경쟁적으로 자금을 회수하거나 신규대출과 어음할인을 중단, 그런대로 돌아가던 기업마저 부도위기에 몰린 곳이 적지 않다. 이런 비정상 상태가 지속되면 몇몇 재벌그룹의 추가 부도와 중소기업 연쇄부도는 불을 보듯 뻔하다. 이대로 두어서는 안된다. 정부와 은행 등 금융권이 앞장서서 오늘의 부도위기를 해소해야 한다. 부도를 부채질하는 부도방지협약을 대폭 보완하거나 앞당겨 폐지해서라도 자금흐름을 조속히 정상화해야 한다. 금융기관들이 시중의 루머에 휩쓸려 자금을 일시에 회수, 견딜 수 있는 기업까지 도산으로 몰고가는 잘못된 관행에 제동을 걸어야 한다. 정부가 뒤늦게 제2금융권 단속에 나섰으나 제도적 보완장치마련 등 실효있는 종합대책이 시급하다. 거듭 강조하거니와 시장원리에 의한 부실기업의 도태와 건실한 기업의 억울한 도산은 구분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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