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는 역사상 최초로 월드컵을 세 번 유치한 국가다. 1970, 1986년 대회를 단독으로 열었고 2026년 대회는 미국, 캐나다와 공동 개최한다. 한국 축구 대표팀이 2026 북중미 월드컵 조별리그 1차전(체코·12일)과 2차전(멕시코·19일)을 치르는 멕시코 과달라하라는 앞선 두 차례 ‘멕시코 월드컵’에서도 경기가 열린 도시다. 다만 두 대회 모두 멕시코 대표팀의 경기는 과달라하라에 배정되지 않았다. 그래서일까. 이 도시를 상징하는 축구 스타는 1970년 대회에서 통산 세 번째 우승을 이뤄낸 브라질의 ‘축구 황제’ 펠레(1940~2022)다. 펠레는 월드컵 역사상 우승 트로피를 3번(1958, 1962, 1970년) 들어 올린 유일한 선수다.
6일(현지시간) 멕시코 과달라하라 에스타디오 할리스코 경기장 앞에 브라질의 축구 선수 펠레 조형물이 세워져 있다. 높이 9.5m로 ‘라 카나리냐(La Canarinha, 남미 축구 국가대표팀을 지칭하는 별명)’ 라는 이름으로 세워진 이 조형물은 1970년 멕시코에서 열린 월드컵에서 브라질 대표팀으로 출전한 펠레의 모습을 본떠서 월드컵 기간 동안 경기장에 활기를 불어넣기 위해 설치됐다. 과달라하라=박형기 기자 oneshot@donga.com
7일 과달라하라 북부 할리스코 스타디움. 경기장 앞에는 등번호 10번을 단 펠레 동상이 우뚝 서 있었다. 9.5m 높이의 동상은 ‘삼바 군단’ 브라질을 월드컵 정상으로 이끈 펠레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지난달 세워졌다. 멕시코인 에마뉘엘 씨(43)는 “펠레는 과달라하라 시민들에게 특별한 존재다. 부모님은 지금도 펠레의 활약상에 대해 이야기한다”고 말했다.
1970 멕시코 월드컵 당시 펠레가 이끄는 브라질은 조별리그 1차전부터 준결승전까지 5경기를 모두 과달라하라에서 치렀다. 멕시코시티로 장소를 옮겨 열린 결승전에선 이탈리아를 4-1로 꺾고 우승했다. 펠레는 이 대회에서 결승전 선제골을 포함해 4골 6도움을 기록했다. 결승전 직후 이탈리아 수비수 타르치시오 부르니치(1939∼2021)는 “펠레도 나와 똑같이 살과 뼈로 만들어진 인간이라고 생각했는데 내 생각이 틀렸다”고 말했다. 축구에서 펠레가 신계(神界)로 올라선 계기가 된 발언이다.
6일(현지시간) 멕시코 과달라하라의 호텔 프란세스 로비 1층 벽면에 ‘도산 안창호 선생이 머문 곳’이라고 적힌 동판이 걸려있다. 해외 한인 대표기관인 대한인국민회 총회장이었던 안창호 선생은 미국에서 활동 중 한인들의 초청으로 10개월 간 멕시코를 방문했지만, 미국으로 돌아가기 위해 필요했던 일본 영사가 발행한 여행권을 거부하고 두 달 넘게 과달라하라에 호텔 프란세스에 머물며 방법을 찾았다. 과달라하라=박형기 기자 oneshot@donga.com펠레와 이 도시의 인연은 플라사 에헤쿠티보 호텔에도 남아 있다. 호텔 별관으로 향하는 벽면에는 펠레가 선베드에 누워 기타를 치는 사진이 걸려 있다. 그 아래에는 ‘1970년 이 호텔에 머물렀던 특별한 귀빈 펠레를 기리며’라고 적혀 있다. 호텔 매니저 라파엘 파리야 씨(69)는 “1970년 대회 당시 과달라하라 시민들은 브라질 대표팀을 마치 우리 대표팀처럼 응원했었다”고 회상했다.
과달라하라에 발자취를 남긴 또 다른 영웅은 독립운동가 도산 안창호 선생(1878~1938)이다. 월드컵 팬 페스티벌을 준비로 분주한 리베라시온 광장을 지나 골목 안으로 들어서자 1610년 문을 연 프랑세즈 호텔이 나타났다. 호텔 로비의 석조 기둥 사이로 안창호 선생이 이 호텔에 머문 적이 있다는 걸 알리는 동판이 보였다. 한국 정부는 2017년 호텔 측과 협의해 이 동판을 달았다.
6일(현지시간) 멕시코 과달라하라의 호텔 프란세스 로비 1층 벽면에 ‘도산 안창호 선생이 머문 곳’이라고 적힌 동판이 걸려있다. 해외 한인 대표기관인 대한인국민회 총회장이었던 안창호 선생은 미국에서 활동 중 한인들의 초청으로 10개월 간 멕시코를 방문했지만, 미국으로 돌아가기 위해 필요했던 일본 영사가 발행한 여행권을 거부하고 두 달 넘게 과달라하라에 호텔 프란세스에 머물며 방법을 찾았다. 과달라하라=박형기 기자 oneshot@donga.com1917년 대한인국민회 총회장이던 안창호 선생은 교민 초청으로 멕시코를 찾았다. 항일투쟁의 기반을 마련하기 위한 순회 활동을 마치고 이듬해 미국으로 가려던 그는 난관에 부딪혔다. 멕시코시티의 미국총영사관이 대한제국이 일본의 식민지라는 이유로 일본 여권 제출을 요구한 것. 이를 거부한 안 선생은 과달라하라에 두 달가량 더 머문 뒤 북부 노갈레스를 통해 대한제국 여권을 제시하고 미국으로 향했다. 서경덕 성신여대 창의융합학부 교수는 “안창호 선생이 끝내 일본 여권을 사용하지 않은 것은 당시 미주 한인사회에 큰 울림을 줬다”고 설명했다.
‘홍명보호’는 축구 영웅의 흔적과 독립운동의 역사가 생생히 살아 숨 쉬는 도시이자 한국 대표팀의 월드컵 베이스캠프인 과달라하라에 6일 입성했다. 7일에는 과달라하라 인근 사포판의 치바스 바예 베르데에서 800여 명의 현지 팬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공개 훈련을 실시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