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등 유전자’ 번식 막으려는 연구
나치 장애인-유대인 학살로 이어져
◇태어나는 문제/에릭 L 피터슨 지음·김하현 옮김/372쪽·2만1000원·낮은산
오늘날 우생학은 공개적으로 ‘사이비’로 취급받는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는 “우생학적 사고는 완전히 뿌리뽑히지 않았다”고 강조한다. 기술 발전으로 선천적 장애와 질병으로부터 해방되고 싶다는 욕구가 ‘벨벳 우생학’이란 새로운 우생학으로 명맥을 이어가고, 암암리에 사회의 ‘부적합자’들을 제거하려는 시도는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태어나는 문제’는 우생학이란 유사과학의 역사를 깊이 추적한 책이다. 고대 그리스부터 그 기원을 발견할 수 있는 우생학은 ‘퇴화’에 대한 공포에서 비롯된다. 빈곤자, 범죄자, 그리고 타 인종(주로 비백인) 등 열등한 족속이 빠르게 번식하면서 위대한 사회, 더 나아가 인간이란 종이 쇠락한다는 논리다.
이런 두려움은 열등 유전자의 신체적 표지를 찾으려는 시도로 이어져 오다가 근대에 들어 ‘우생학의 아버지’ 프랜시스 골턴(1822∼1911)이 생물학과 통계학, 사회학을 엮으며 학문의 지위를 얻게 됐다. 그리고 우생학은 사회와 인류 개선을 명분으로 첨단 과학이 돼 폭주했다. 특히 미국에선 권력자와 자산가가 열렬히 호응했다. 주마다 단종법(斷種法)을 제정하고 이민을 제한하는 한편 인종개량협회와 같은 우생학 연구 단체를 지원하고 국제 우생학 대회를 열어 세계에 우생학을 확산시켰다.
미국 우생학의 가장 훌륭한(?) 제자가 독일이었다. 나치 정권의 계획적 장애인 학살인 ‘T4 작전’은 향후 홀로코스트로까지 이어졌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도 우생학은 새로운 정당성을 갖춘 채 연명했다. 공산주의 확산 저지, 환경 보호를 위한 인구 통제처럼 이질적인 주제를 하나로 묶으면서.
결국 빈곤과 범죄, 불평등 같은 사회 문제를 교육과 공공 인프라 투자로 해결하려는 의지는 없이, 효율성과 진보를 내세우며 오만했던 과학계와 인종주의에 빠진 정치 경제 엘리트가 결합해 20세기를 현대적 야만의 시대로 만들었다고 저자는 분석한다. 오늘날에도 간간이 드러나는 강제 불임수술과 과도한 유전과학에 대한 환상은 ‘신(新)우생학’에 대한 저자의 경고에 무게를 더해 준다. 원제 ‘The Shortest History of Eugenic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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