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치와 소련 점령기 동독에서 태어나 전후 유럽의 혼란스러운 사회상을 표현해 세계 미술계에 큰 영감을 준 예술가 게오르그 바젤리츠가 별세했다. 향년 88세.
바젤리츠와 20년 넘게 함께 일한 타데우스 로팍 갤러리는 30일(현지 시간) 그가 자택에서 평온하게 세상을 떠났다고 밝혔다. 바젤리츠는 위 아래를 거꾸로 뒤집은 회화로 유명하다. 이 작품들은 단순히 구도를 뒤집는 것을 넘어 거칠고 활력있는 붓터치, 탁월한 색감을 무기로 갖고 있다. 덕분에 그 앞에 서면 관객은 낯설고 어지러우면서도 그림에 매료되는 이중적인 경험을 하게 된다.
게오르그 바젤리츠의 1975년 작품 ‘침실’. 요헨 리트케만, 타데우스로팍 갤러리 제공 바젤리츠는 1938년 독일 작센 지방 도이치바젤리츠에서 태어나 나치 독일의 엄격한 규율 속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청소년기에는 전쟁 후 폐허와 이데올로기 강요가 뒤섞인 소련 점령기를 겪었다. 소련의 압박이 심해지던 1975년, 미술대학에서 제적을 당하고 석탄 광산으로 강제 노역을 갈 위기에 처하자 서독으로 탈출했다.
그러나 서독에서는 1963년 연 첫 개인전이 외설적이라는 이유로 강제 폐쇄를 당하고 그림이 압수되는가 하면 경찰로부터 벌금형을 받았다. 2년 뒤 장학금을 받고 이탈리아 피렌체로 유학을 가고 이곳에서 대표작인 ‘영웅’ 시리즈를 그린다. 거꾸로 그린 그림들이 탄생한 것은 1960년대 후반이며 이 때부터 세계 미술계에 강력한 영향력을 끼쳤다.
안녕하세요 쿠르베씨(1965). 울리히 게치, 타데우스로팍 갤러리 제공 바젤리츠는 생전 인터뷰에서 스스로를 “파괴된 질서, 파괴된 풍경, 파괴된 사람들, 파괴된 사회 속에서 태어났다”고 표현했다. 그러면서 “질서를 다시 세우고 싶지 않다. ‘질서’를 충분히 보았기 때문이다. 내 삶은 모든 것을 의심하고 원점에서 다시 시작하는 일들의 연속이었다”고 말했다.
오래된 체제들이 무너지기 시작한 20세기 후반에 개인이 겪는 혼란과 그 속에서 만들어지는 새로운 생명력을 표현한 그의 예술 세계는 프랑스 파리 퐁피두미술관(2021), 미국 워싱턴 허쉬혼미술관(2018), 독일 프랑크푸르트 슈테델미술관 등 순회전(2016) 등 여러 주요 미술관 개인전을 통해 조명됐다. 2019년에는 프랑스 미술 아카데미 회원으로 선출됐다.
유족 측은 시인 로버트 이사프가 쓴 부고를 통해 “바젤리츠는 전후 유럽이 겪은 시대적 풍파를 온몸으로 체득하고 표현한 인물이었으며 이는 그가 남긴 수많은 예술 작품뿐 아니라, 그가 살았던 정직하고 끈질기며 훌륭했던 삶으로도 증명된다”고 밝혔다.
저런, 부끄럽다!(Oh Schande), 2014년 작품. 요헨 리트케만, 타데우스로팍 갤러리 제공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