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팀 떠난 원년 멤버 마이크 포트노이, 2023년 귀환 선언
드림시어터 멤버로서 18년 만에 내한공연…“韓은 특별해”
화려한 드럼 기교, 음악 자체 집중하는 수단 “감정요소까지 아울러”
포트노이 복귀작 ‘나이트 테러’, ‘그래미 어워즈’ 후보
뉴시스
어떤 떠남은 돌아옴으로써만 비로소 완성된다. 여기, 자신이 짓던 거대한 성채를 스스로 걸어 나갔던 한 뮤지션이 있다.
무지막지한 명령 같은 야성미(野性美) 넘치는 과격한 합주로 금속성의 유려한 통쾌함을 선사하는 프로그레시브 메탈 상징인 미국 밴드 ‘드림 시어터’(DREAM THEATER·드림씨어터)의 드러머 마이크 포트노이(Mike Portnoy)가 13년이 지난 후에야 다시 그 문을 열고 들어왔다.
프로그레시브 메탈이라는 장르가 소리의 건축술이라면, 드림시어터는 가장 정교하고 웅장한 도면을 가진 설계자들이다.
포트노이는 그 건축물의 지반을 다지고 뼈대를 세우던 사람이었다. 그러니 그의 부재는 단순히 연주자 한 명의 공석이 아니라, 어떤 구조적인 결핍을 견뎌야 하는 시간이었을 것이다.
드림시어터는 미국 버클리 음악대학에 재학 중이던 존 페트루치(John Petrucci), 존 명(John Myung) 그리고 포트노이가 1985년 결성한 밴드 ‘마제스티(Majesty)’에서 출발했다. 1989년 밴드명을 드림시어터로 바꾸고 정규 1집 ‘웬 드림 앤드 데이 유나이트(When Dream And Day Unite)’를 발표하며 데뷔했다.
1992년 발매된 ‘이매지스 앤드 워드스(Images and Words)’는 ‘풀 미 언더(Pull Me Under)’, ‘어나더 데이(Another Day)’ 등 수많은 대표곡을 탄생시키며 전 세계적인 성공을 거뒀다. 이 앨범은 2017년 미국의 대표 음악 잡지 ‘롤링 스톤(Rolling Stone)’이 뽑은 ‘역대 가장 위대한 메탈 앨범 100선’에도 선정됐다.
드림시어터는 또한 2010년에는 빌리 조엘(Billy Joel), 머라이어 캐리(Mariah Carey), 토니 베넷(Tony Bennett) 등 전설적인 뮤지션들이 등재된 ‘롱 아일랜드 음악 명예의 전당(Long Island Music Hall of Fame)’에 이름을 올렸다. 2022년엔 미국 ‘그래미 어워즈’의 ‘최우수 메탈 퍼포먼스’ 부분을 수상했다. 클래식과 재즈의 정교한 구성미를 메탈에 접목한 독창적인 스타일로 프로그레시브 메탈 장르를 대표한다. 지금까지 전 세계 1500만 장 이상의 판매량을 기록 중이다.
포트노이가 2023년 가을, 이 밴드로 복귀한다는 소식이 들려왔을 때 팬들이 느낀 감정은 환호보다 안도감에 가까웠다. 창립 40주년. 불혹(不惑)을 넘긴 밴드는 이제 흔들리지 않는 것이 아니라, 흔들림까지도 리듬의 일부로 수용하는 법을 배웠다.
2024년 10월 영국 런던 O2 아레나(The O2 Arena)에서 열린 드림시어터 공연은 포트노이가 재합류한 이후 드림시어터의 첫 공식 라이브 무대이자, 이 밴드의 창립 40주년 기념 투어 시작을 알리는 첫 공연이기도 했다. 포트노이는 2010년 밴드를 떠난 지 약 14년 만에 다시 이 팀의 드럼 스툴에 앉았다.
최근 프라이빗커브를 통해 화상 인터뷰한 돌아온 포트노이는 인터뷰 내내 ‘집’과 ‘가족’에 대해 이야기했다. 과거의 그가 모든 소리를 통제하려 했던 전제 군주였다면, 지금의 그는 흐름을 존중하는 현명한 동반자의 얼굴을 하고 있다. 서로의 나이 듦을 인정하고, 각자의 삶을 존중하며 만들어내는 관계의 역학이다. 기술적 완벽주의라는 차가운 외피 속에 숨겨져 있던 뜨거운 메탈 맥박이 다시 뛰기 시작했다.
오는 2월 20~22일 서울 용산구 한남동 블루스퀘어 SOL트래블홀에서 우리는 포트노이의 완전한 귀환을 목격한다. 이것은 단순한 내한 공연이 아니다. 찢어졌던 페이지를 다시 이어 붙여 마침내 완성해 낸, 40년짜리 장편 소설의 결말을 확인하는 자리다. 드림시어터의 결성 40주년을 기념해 열리는 아시아·호주 투어의 일환이다. 드림시어터 내한은 3년 만이지만 포트노이와 함께 하는 이 밴드의 모습을 국내에서 다 같이 보는데 오래 걸렸다. 이번 공연은 드림시어터의 열 번째 내한공연이다.
다음은 포트노이가 기교를 넘어선 삶의 태도, 그리고 음악이라는 집으로 돌아오는 여정에 대해 털어놓은 일문일답이다.
-밴드로 복귀한 지 시간이 꽤 흘렀지만, 먼저 복귀를 축하드리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복귀 이후 매우 좋은 활동을 이어오고 계신 것으로 보입니다. 예전 활동 시기와 지금을 비교했을 때 어떤 차이가 있다고 느끼시나요?
“예전보다 나이가 들고 머리카락도 희어졌지만, 마음만은 여전히 그때와 같은 아이들입니다. 다만 밴드 내의 역학 관계가 달라졌어요. 2010년 밴드를 떠날 당시 전 모든 부분과 모든 결정에 대해 강하게 통제하려는 성향이 있었습니다. 13년이라는 공백 동안 밴드는 각자의 방식으로 발전해 왔고, 다시 합류한 지금은 그 흐름을 존중하고 적응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느꼈어요. 그 결과 현재의 팀워크는 그 어느 때보다도 훨씬 좋아졌다고 생각합니다. 나이를 먹으며 모두가 더 성숙해지고 차분해졌으며, 협업과 상호 존중에 대해서도 이전보다 깊이 이해하게 됐습니다.”
-이전에 드림 시어터로 돌아오는 것을 ‘집으로 돌아오는 느낌’이라고 표현하셨는데, 이 ‘집’이 있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요?
“우리에게 드림시어터는 단순한 밴드를 넘어선 존재입니다. 대학 시절 10대 때 처음 만나 활동을 시작했고, 어느덧 40년이 훌쩍 지난 시점에 와 있죠. 이 활동을 지금까지 이어올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큰 영광이며, 오랜 시간 함께해 온 멤버들과 여전히 무대에 설 수 있고 관객 또한 계속해서 늘어나고 발전해 나가고 있다는 점에 깊은 감사를 느끼고 있습니다.” -앞선 또 다른 인터뷰에서는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인생과 영혼의 일부인 음악을 연주하지 않기에는 인생이 너무 짧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다시 밴드에 합류한 지금, 삶은 어떻게 달라졌고 더 충만해졌다고 느끼시나요?
“드림시어터는 단순한 밴드가 아니라 가족이에요. 우리는 함께 성장했고, 비슷한 시기에 결혼했으며, 같은 시기에 부모가 됐죠. 그렇기 때문에 이번 복귀는 단순히 밴드로 돌아온 것이 아니라 가족의 품으로 돌아온 느낌에 가깝습니다. 인생에서 중요한 수많은 순간을 함께해 왔고, 드림시어터라는 이름으로 이뤄낸 모든 것 역시 멤버들이 함께 만들어 온 결과죠. 몇 년간 자리를 비웠던 시간도 있었지만, 이곳은 여전히 가족이자 집과 같은 곳입니다.”
-이처럼 오래 지속되는 밴드가 되기 위해서는 음악적 목표뿐 아니라 인생의 방향성도 맞아야 할 것 같습니다. 복귀 이후 음악이 아닌 주제로 멤버들과 가장 많이 나눈 이야기는 무엇인가요?
“솔직히 말하면, 여전히 음악 이야기를 가장 많이 나눕니다. 투어 기간에는 매일 무대에서 약 세 시간을 보내지만, 나머지 시간은 대기실과 투어 버스, 비행기 등에서 함께하죠. 그 과정에서 서로의 삶에서 겪은 경험을 자연스럽게 공유합니다. 다섯 명 모두 결혼해 자녀를 두고 있으며, 이제는 아이들 역시 성인이 됐죠. 그만큼 가족 이야기나 최근 보고 있는 TV 프로그램과 영화 등 일상적인 대화를 나눕니다. 그리고 무대 밖에서는 함께 식사를 하며 보내는 시간이 많죠.”
-당신의 드럼 연주는 단순한 기교 과시가 아니라 음악 자체에 집중하는 수단처럼 느껴집니다. 기술적 완성도와 음악적 감성을 균형 있게 유지하기 위해 특별히 신경 쓰는 부분이 있나요?
“드림시어터는 항상 음악적 균형을 중요하게 여겨왔다. 프로그레시브한 테크니컬 요소뿐 아니라 메탈 특유의 무게감과 강렬한 리프, 그리고 멜로디와 감정적인 요소까지 모두 아우르려 합니다. ‘어나더 데이(Another Day)’, ‘벤드 더 클락(Bend the Clock)’, ‘더 스피리트 캐리스 온(The Spirit Carries On)’과 같이 멜로디 중심이면서 감성적이고, 감정으로 이끌어내는 곡들 역시 드림시어터 음악에서 중요한 요소죠. 많은 이들이 드림시어터를 기술적이고, 프로그레시프한 밴드로 인식하지만, 이는 밴드의 여러 음악적 측면 중 하나에 불과합니다.”
-세 시간 동안 이어지는 공연에서 고난도의 연주를 유지하는 것은 상당한 체력 소모가 있을 것 같습니다. 컨디션을 유지하는 비결이 있나요?
“나이가 들수록 공연을 소화하는 일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어요. 현재 멤버들은 50~60대에 접어들었고, 세 시간에 달하는 공연은 육체적으로 상당한 부담이 됩니다. 특히 드러머와 보컬에게는 더욱 그렇죠. 특별한 비결이 있다기보다는 페이스를 조절하고 가능한 한 충분한 휴식을 취하려고 노력해요. 사운드 체크와 팬 미트앤그리트(Meet & Greet)를 포함해, 오프닝 없이 바로 공연을 진행하는 일정의 경우 하루 일정이 매우 빡빡하죠. 공연이 끝나면 거의 탈진 상태가 되곤 합니다. 휠체어에 태워서 끌고 가야 할지도 모르겠어요. 개인적으로는 가능한 자주 마사지 받으려고 해요. 특히, 제임스 라브리는 휴식과 식단 관리를 매우 철저히 하고 있습니다. 결국 건강 관리와 페이스 조절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당신이 드림시어터 멤버로서 한국 공연을 한 지 18년이 지났습니다. 2016년에 내한하신 적이 있지만 그건 ‘와이너리 독스(Winery Dogs)’ 멤버로서였고, 그마저도 10년 전이네요. 긴 시간이 흐른 뒤 이번에 한국에 오는 소감과, 한국에 대한 인상은 어떤지 궁금합니다. “한국은 언제나 특별한 곳이에요. 밴드 멤버 중 한국인(존명)이 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깊죠. 심지어 공연을 하기도 전에 아마도 1994년에 처음으로 프레스와 인터뷰를 위해 한국을 방문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정말 뜻깊은 방문이었던 것이, 90년대 초반에는 내한공연이 흔치 않았던 걸로 알고 있어요. 그리고 조던 루디스가 함께한 첫 공연이 심지어 한국이었습니다. 1999년으로 기억하는 페스티벌(‘인천 트라이포트 록 페스티벌’)에서 딥 퍼플(Deep Purple)과 함께했었는데, 엄청난 태풍이 몰아쳤던 걸로 기억해요. 2002년에는 한국에 머무르던 중 앨리스 인 체인스의 레인 스테일리 사망 소식을 접했던 기억도 있습니다. 90년대부터 이어져 온 한국과의 인연은 매우 깊으며, 언제나 즐거운 공연하기 좋은 나라라고 생각해요.”
-팀 복귀 발표 이후 팬들의 반응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다면요?
“복귀 발표 이후의 반응은 정말 감동적이었어요. 이걸 말로 표현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예를 들어 유명 아티스트가 세상을 떠났을 때 수많은 헌사와 사랑이 쏟아지는 모습을 보게 되는데, 그들은 직접 볼 수 없잖아요? 하지만 우리가 재결합을 발표했을 때 전 살아 있는 상태에서 그런 사랑을 직접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전 세계 팬들이 보내준 환영과 감정의 물결을 직접 읽고 느낄 수 있었다는 점이 정말 의미 깊었습니다. 그 사랑을 체감할 수 있었다는 것 자체가 정말 큰 의미죠.”
-복귀 이후 발표된 첫 곡 ‘나이트 테러(Night Terror)’는 드림시어터의 정체성을 잘 담아낸 곡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이 곡을 복귀 후 첫 싱글로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이 곡은 멤버들이 다시 스튜디오에 모여 처음으로 완성한 곡이기 때문에 당연히 처음으로 들려줄 곡이라고 생각했다. 작업하는데 며칠이 채 안 걸렸고, 매우 자연스럽게 진행됐다. 현재 멤버들의 케미스트리가 자연스럽게 드러났고, 드림시어터 특유의 클래식한 요소들이 잘 담겼다고 느꼈다. 그 결과 이 곡이 재결합의 출발점이 돼야 한다고 판단했습니다. 공개 이후 반응 역시 매우 긍정적이었고, 그래미 어워즈 후보(‘베스트 메탈 퍼포먼스(Best Metal Performance)’ 부문)에 오르며 더욱 의미를 더하고 있죠. 복귀를 알리기에 더없이 적합한 곡이었다는 평가예요.”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드리고, 그래미에서 좋은 결과 있길 바라겠습니다! 그럼 한국 공연에서 뵙겠습니다.
“우리도 공연을 기대하고 있어요. 3일이라니. 그리고 저도 세트리스트 구성에 참여했기 때문에 최선을 다할 예정입니다. 각 공연마다 다르게 무대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3일의 공연이 정말 멋질 것으로 기대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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