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호산구증후군 환아에 동일 공여자 간·조혈모세포 이식 성공
김혜리 서울아산병원 교수 “근본 치료와 면역관용 유도 동시에 달성”
김혜리 서울아산병원 소아청소년종양혈액과 교수가 환자를 진료하고 있다. 서울아산병원 제공
희귀 난치성 질환을 앓던 환아가 동일 공여자인 어머니의 간과 조혈모세포를 순차적으로 이식받아 면역억제제를 중단한 첫 사례가 나왔다.
서울아산병원은 김혜리 소아청소년종양혈액과 교수, 오석희 소아청소년과 교수, 남궁정만 소아외과 교수팀이 과호산구증후군(Hypereosinophilic Syndrome, HES)으로 간경변증이 진행된 13세 환아에게 어머니의 간과 반일치 조혈모세포를 차례로 이식해 면역억제제를 완전히 중단하는 데 성공했다고 26일 밝혔다.
과호산구증후군은 백혈구의 한 종류인 호산구가 비정상적으로 증가해 간, 심장, 폐 등 주요 장기를 손상시키는 희귀 질환이다. 해당 환아의 경우 호산구가 간을 지속적으로 공격하면서 간세포가 딱딱해지는 간경변증과 간부전으로 이어졌고, 결국 간이식이 필요한 상태에 이르렀다.
문제는 간만 이식해서는 질환의 근본 원인을 해결하기 어렵다는 점이었다. 비정상적인 호산구를 만들어내는 골수의 이상이 남아 있으면 새로 이식한 간도 다시 손상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의료진은 2024년 8월 어머니의 간을 이식한 뒤, 지난해 2월 동일 공여자인 어머니로부터 반일치 말초혈 조혈모세포 이식(Haplo-PBSCT)을 추가로 시행했다.
조혈모세포는 혈액과 면역세포를 만드는 뿌리 세포다. 간 이식 후 같은 공여자의 조혈모세포를 이식하면 환자의 면역 체계가 새롭게 재구성되면서, 이미 이식된 장기를 ‘외부 장기’가 아닌 ‘자기 조직’으로 인식하게 된다. 이 상태를 ‘면역관용(Immune Tolerance)’이라고 하며, 면역세포가 이식 장기를 공격하지 않아 면역억제제 복용을 중단할 수 있다.
성인 환자에서는 간과 조혈모세포 순차 이식을 통한 면역관용 유도 사례가 일부 보고된 바 있으나, 면역 반응이 더 예민하고 합병증 위험이 높은 소아 환자, 특히 과호산구증후군과 같은 희귀 난치성 질환에서 성공한 사례는 국내에서 처음이다.
환아는 2017년 과호산구증후군 진단 이후 소장 천공으로 인한 장루 조성술 등 여러 차례 수술을 받았고, 2023년에는 식도정맥류 출혈, 2024년에는 복수 등 간부전 합병증이 발생했다. 이후 간·조혈모세포 순차 이식을 거쳐 지난해 10월 면역억제제 복용을 완전히 중단했다. 최근 시행한 간 조직검사에서는 정상 소견이 확인됐다.
또 환자의 혈액세포가 공여자인 어머니의 세포로 100% 대체된 ‘완전 공여자 키메리즘’ 상태가 확인됐다. 이는 더 이상 비정상적인 호산구가 생성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환아의 어머니는 “면역억제제를 복용해야 해 식사나 일상생활에 제약이 많았는데, 이제는 약 없이도 일상을 보낼 수 있게 됐다”며 “아이에게 새로운 삶을 선물해 준 의료진에게 감사하다”고 말했다.
김혜리 교수는 “이번 사례는 희귀 난치성 질환의 근본 치료와 이식 후 면역관용 유도를 동시에 달성한 경우”라며 “비슷한 질환으로 치료에 어려움을 겪는 환아들에게 하나의 치료 가능성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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