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에 나올만한 이상화된 양치기”…고전美에 충실한 소녀상

  • 동아일보
  • 입력 2026년 1월 8일 15시 20분


[샌디에이고 특별전 맛보기] 〈7〉 부그로 ‘양치기 소녀’


양들이 한가로이 풀을 뜯는 들판에 맨발의 소녀가 서 있다. 고동색 곱슬머리와 흘러내리는 옷 주름, 목가적 풍경이 섬세한 붓질과 부드러운 색채로 표현돼 고상한 느낌을 준다. 당당한 눈빛으로 관람자를 응시하는 이 소녀는 당장이라도 액자 밖으로 걸어 나올 듯 생동감이 넘친다.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세종미술관의 ‘르네상스에서 인상주의까지’에서 볼 수 있는 ‘양치기 소녀’는 19세기 후반 프랑스 파리 살롱에서 가장 성공한 작가 중 하나로 꼽히는 윌리엄 아돌프 부그로(1825~1905)의 작품이다. 소장처인 미국 샌디에이고미술관 측 표현을 빌리면 “비슷한 시기 활동한 밀레나 쿠르베 같은 사실주의 화가들이 그린 ‘흙내 나는 농부’가 아닌, 고전적인 목가시(牧歌詩)에 등장하는 이상화된 양치기”가 화폭에 담겼다.

‘양치기 소녀’는 비슷한 크기로 나란히 전시된 호아킨 소로야(1863~1923)의 그림과 비교하면 그 차이를 확연하게 느낄 수 있다. 스페인 인상주의 화가인 소로야의 ‘라 그랑하의 마리아’ 속 여인은 과감하고 경쾌한 붓질로 그려졌다. 이와 달리 프랑스 아카데미 종신회원이었던 부그로는 고전적인 미(美)의 기준에 충실하게 소녀를 완성했다. 신체는 해부학적으로 정확히 묘사됐고, 빛과 그림자는 세밀하게 표현됐다.

흠잡기 어려운 기술과 서정성을 갖춘 화가지만, 부그로가 활동한 19세기 후반 그에 대한 평가는 크게 엇갈렸다.

생전 르네상스 미술의 거장 라파엘로를 존경했다는 부그로는 여신이나 요정, 성모 마리아 등 주로 역사, 종교, 신화 관련된 소재를 그렸다. 고전적 그림은 국가 기관과 상류층 수요가 꾸준했기에 미술 시장에서 비싼 가격에 팔렸다. 인상파 화가들의 그림이 종종 폄하되고 시장 가격이 불안정하던 상황과 대비된다.

그러나 유럽에서 인상주의가 확산되고 미술계에 새로운 흐름이 만들어지면서, 부그로는 ‘과거에 갇힌 기교파 화가’ 취급을 받기도 했다. 발레리나 그림으로 잘 알려진 에드가 드가는 매끄럽고 인위적인 그림을 묘사할 때 경멸적인 뉘앙스를 담아 ‘부그로풍(Bouguereauté)’이라는 단어를 쓰기도 했다. 부그로가 파리 아카데미 줄리앙에서 교편을 잡던 시절, 제자인 앙리 마티스가 그의 화풍과 훈련법에 반기를 들었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하지만 오늘날엔 그에 대한 재평가가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미국 비영리 교육기관인 ‘아트 리뉴얼 센터’는 부그로를 두고 “사회적 변화로 인해 불운하게 저평가된 화가”라고 했다.

#윌리엄 아돌프 부그로#양치기 소녀#고전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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