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영 스님은 “우리는 원하는 것을 이루지 못해 괴로워하기보다, 원하는 그 마음을 내려놓지 못해 고통스러운 경우가 더 많다”라며 “인생이란 게 정답은 없지만, 적어도 자신을 혹독하게 몰아붙이면서 살지는 않았으면 한다”라고 말했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살다 보면 나약할 때도, 괴로울 때도, 슬플 때도 있어요. 하지만 그게 영원히 지속되진 않지요.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그렇다고 죽을 순 없잖아요.”
22년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를 기록하고 있는 한국. 오죽하면 최근 국회에서 시민들이 직접 참여하는 자살 예방 문화운동 ‘명대로 삽시다’까지 출범했을까. 최근 ‘그렇다고 죽을 수는 없잖아’(불광출판사)를 출간한 원영 스님(대한불교조계종 청룡암 주지)은 4일 동아일보와 만나 “불경에 ‘사자신충(獅子身蟲)’이란 말이 있다”라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 책은 바람이 통하게 창틈만 조금 열어도 찜통 같은 방안에서 견딜 수 있듯이, 삶을 극단적으로 몰아가지 말고 조금만 흘려보내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사자신충, ‘사자 몸속의 벌레’란 뜻인지요.
“백수의 왕인 사자를 감히 어떤 짐승이 해치고 먹어 치울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사자가 죽으면 그 시체를 모두 먹어 치우는 건, 외부의 짐승이 아니라 사자 몸 안에서 생긴 벌레지요. 혹시 혼자서 화가 날 때 그런 자신을 지켜본 적이 있습니까?”
―제가 저 자신을요?
“네, 대체로 처음에는 작은 생각에서 시작하지요. 그런데 점점 더 에스컬레이터 되면서 나중에는 심지어 내가 화내는 소리에도 화를 내요. 스스로 고립시켜 놓고, 막 혼자만의 생각에 빠져 착각하는 거죠. 그래서 죽겠다고 찾아오는 사람 중 많은 분이 위로 조금, 용기 조금 북돋아 주는 것만으로도 나아져서 돌아갑니다.”
원영 스님은 “우리는 원하는 것을 이루지 못해 괴로워하기보다, 원하는 그 마음을 내려놓지 못해 고통스러운 경우가 더 많다”라며 “인생이란 게 정답은 없지만, 적어도 자신을 혹독하게 몰아붙이면서 살지는 않았으면 한다”라고 말했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정말 죽을 만큼 고통스러운 일도 있지 않겠습니까.
“그런 일도 있겠지요. 하지만 앞이 보이지 않는 이가 힘겹게 낮은 나뭇가지를 붙잡고 있는 것 같은 경우도 참 많아요. 손을 놓아도 위험하지 않다고 옆에서 이야기해도 그 말을 믿는 게 쉽지 않은 거죠. 손을 놓으면 끝없이 깊은 벼랑 밑으로 떨어질 것 같아 점점 더 세게 잡고요. 그러다가 결국 지쳐서 좌절과 상실로 얼룩진 괴로움에 몸부림칩니다. 저도 그랬어요.”
―극단적인 선택을 생각한 적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화를 삭이지 못하고 쌓아두기만 했던 시기가 있었지요. 속은 부글부글 끓고, 화가 치밀어 이를 악물거나 주먹을 불끈 쥘 때도 있었고요. 그런데 수행자다보니 누구에게 말도 못 하고, 남들에게는 늘 웃는 얼굴로 대했고요. 그렇게 제 안의 화가 자꾸 저를 갉아먹던 어느 날, 문득 저도 모르게 한 마디가 입 밖으로 나오더라고요. ‘그렇다고 죽을 순 없잖아’라고요. 희한하게 이 생각이 분노로 응어리진 제 마음을 희망으로 바꾸더라고요.”
―너무 힘들면 포기하라고 하셨습니다만….
“오해하면 안 되는데, 조금 하다가 힘들면 포기하라는 게 아니에요. 최선을 다했는데 안 된다면, 끝까지 그걸 움켜잡고 괴로움 속에 있을 필요는 없다는 거죠. 모든 걸 포기하란 뜻도 아닙니다. 어떤 건 포기해도 괜찮다는 거죠. 그 어떤 게 내게 분노나 괴로움, 더 나아가 극단적인 생각까지 들게 한다면 우선 내려놓고 마음을 식힐 필요가 있어요. 바람이 통하게 비워두고 열어놓으면, 힘든 일도 때가 되면 자연스럽게 지나갈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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