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童心(동심)과 함께 산 平生(평생)
他界(타계)한 尹克榮옹
『반달』 『고드름』 『따오기』 등 주옥 (珠玉) 같은 동요 남겨■15일 타계한 원로 동요작사작곡가 尹克榮선생은 「반달 할아버지」로 널리 알려진 우리나라 어린이문화운동의선구자였다.
고인은 1903년 서울태생으로 경성법학전문학교를중퇴하고 日本으로 건너가 東京음악학교 동양엄악학교에서 성악을 전공했다. 우리말과 노래를 빼앗긴 채 암울한 현실 속에서 살아가는 어린이들을 위해 23년에는 소파 방정환(小波 方定煥)선생과 함께 東京에서 우리나라 어린이운동의효시인「색동회」를 발족시켰다. 그당시 「씩씩하게 참되게 그리고 아름답게 서로서로 도와갑시다」라는 것을 주제로 내세웠다.
24년에 귀국하여 동요단체인 「다알리아회」를 조직、우리노래 보급운동에 나섰는데 이때 작곡한 동요가 『반달』 『까치까치 설날』 『할미꽃』 『고드름』 『따오기』 등 오늘날까지 어린이나 어른등 모든 국민의 사랑을 받고 있는 주옥같은 노래들이었다. 한때 간도(間島)에서 교편생활을、「하얼빈」에서 예술활동을 하기도 했다.
그의 한평생은 『반달』과 떼어놓고 얘기할수 없는 삶이었다. 그는 “『반달』은 내가 만든 것이지만 언제부터인가 나를 완전히 지배해왔다”고 말하기도 했는데 6·25 동란중 피난시절에는 생활이 어려워 『반달』을 담보로 은행에서 돈을 빌어썼다는 에피소드도 있다.
음악전문교육을 받고 동요작사 작곡에 일생을 바쳐온 선생은 작사 작곡을 병행해온데 대해 “가락이 없는 詩가있을수없고 시의 리듬을 잡지못하는 노래가 있을 수 없다. 작곡과 작사는 손의 안팎과 같은 관계”라고 얘기하곤 했다.
선생은 동요 4백여곡、동시1백 여편을 남겼지만 어린이운동에 전념해 왔을 뿐 별다른 직업이 없이 안빈낙도(安貧樂道)의 자세로 평생을 살아왔다.
그는 감투라고는 윤번제로하는 색동회회장 이외에 써본 일이 없는데 이름 석자도 과분하다고하여 아호(雅號)도 몇 번 지었다가 버렸다고 한다.
건강이 허락하기까지 매일새벽 2、3시경에 일어나 원고청탁이 있건 없건 간에 항상 책상 앞에 앉아 원고지를 마주 했으며 동요에 관심을 가진 젊은이들이 모인「友林會」에서 강연을 하고 이들과 어울려 동심회복운동과 동심문화교육을 펼쳐왔다.
56년 제1회소파상을 수상했으며 63년 서울교육대학이 제정한 「고마우신 선생님」에 추대됐다.
대한민국국민훈장 목련상을 받았으며 86년10월「동요의 날」 초대 대상을 았다. 「반달」노래에서 그가 가장 아끼는 구절인 ‘샛별이 등대란다 길을 찾아라’처럼 선생은 먼길을 떠났다.
〈高美錫기자〉/ 1988년 11월 16일자 동아일보(석간)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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