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에 ‘한국 전통 문양 연꽃무늬 쿠션’을 입력하자 빨강, 초록 등 색색깔 이파리가 수놓인 둥근 쿠션이 순식간에 떠올랐다. 여러 겹으로 표현된 꽃잎 둘레로 알알이 구슬을 꿴 듯한 장식은 마치 통일신라 시대의 연화문(蓮花紋) 수막새를 연상케 했다. 입력 내용을 바꿔 ‘한국 전통 문양 매화무늬 병풍’을 써넣으니 조선시대 화가 조희룡의 ‘홍백매화도’와 닮은 매화가 금세 병풍에 그려졌다.
국가유산진흥원 등 4곳이 컨소시엄을 구성해 최근 시범 개발한 전통 문양 생성형 AI 모델을 활용하자 이렇게 손쉽게 한국 전통 문양을 다양하게 얻을 수 있었다. 국립중앙박물관, 한국문화정보원 등에서 제공받은 방대한 전통 문양을 학습한 결과다. AI가 문양의 크기, 개수, 디테일을 달리해 생성할 수 있는 가짓수는 무한대에 가깝다.
연구진은 AI 학습을 위해 국보 청자 기린형뚜껑 향로, 보물 금동여래입상 등 실제 우리나라 문화유산, 건축물, 생활소품에 사용된 문양 데이터 총 2만4536세트를 수집했다. 이를 인물, 동물, 문자 등 총 8개 형태로 분류한 뒤, 다시 용도와 재질, 시대에 따라 세분화해 메타데이터(유물이나 문양을 설명·묘사하는 언어 데이터)를 구축했다.
이번 전통문양 생성형 AI는 꾸준히 논란이 된 ‘생성형 AI의 전통문화 왜곡’을 막기 위한 취지로 기획됐다. 예컨대 AI에 ‘한복을 만들어달라’고 주문하면 중국 전통 의상인 치파오, 일본의 기모노 등이 뒤섞인 ‘동아시아풍’ 의복이 튀어나오는 경우가 부지기수기 때문이다. 심정택 국가유산진흥원 데이터팀장은 “AI는 웹사이트상 데이터를 자동 수집하면서 학습하는데, 영어권 및 서구권 데이터가 압도적으로 많고 한국의 시각 자료는 현저히 적다”며 “우키요에 판화 등 일본 전통 예술은 오랜 시간 잘 알려져 서구권 데이터에도 흔히 등장하고, 중국은 인구가 많으니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시중 유통되는 데이터 자체가 많아 불균형이 심하다”고 설명했다.
구축된 전통 문양 데이터는 콘텐츠 개발, 제품 디자인 등에 활용할 수 있도록 올해 상반기 중 온라인을 통해 공개된다. 이번 연구개발 과정에 자문한 양정석 수원대 사학과 교수는 “전통 문양을 공식적으로 데이터화한 첫 시도라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며 “AI를 끊임없이 학습시킴으로써 오류를 최소화하고 완성도를 높일 필요가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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