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자기 안에 생명과 우주가 있다” 이능호 박성욱의 ‘굽과 합’[전승훈 기자의 아트로드]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3월 11일 18시 20분


2023년 8월. 전북 부안의 노을명소인 변산해수욕장. 제1회 ‘부안 무빙팝업시네마’ 영화제가 열리는 해변 한쪽에 도예가 이능호 작가의 설치작품 ‘집’ 30점이 전시됐다. 바닷가에 늘어선 커다란 몽돌 모양의 도예작품은 노을지는 파도 해변의 풍경 속에 녹아들었다.

전북 부안 변산해수욕장에 설치된 이능호 작가의 ‘집’.


영화를 보는 관객들은 미술작품이라고 생각하지 못하는 듯했다. 도예작품에 기대고 있는 사람, 연인끼리 함께 앉아서 영화를 보는 사람, 작품 위에 누워서 쉬는 사람 등 저마다 편안하게 작품을 즐겼다.

특히 햇볕에 달궈진 검은색 몽돌처럼 생긴 도예작품은 앉거나 누우면 찜질하는 효과를 얻을 수 있어 많은 사람들이 찾아왔다. 이능호 작가의 ‘집’ 시리즈는 경기 용인의 호암미술관 숲 속에도 설치되기도 했던 작품이다.

전북 부안 무빙팝업시네마 관객들이 이능호 작가의 도예작품 ‘집’에 앉아서 영화를 관람하고 있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전북 부안 무빙팝업시네마 관객들이 이능호 작가의 도예작품 ‘집’에 앉아서 영화를 관람하고 있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작품에 작가이름과 작품명을 쓴 안내문을 설치하지 않았어요. 사람들이 해변과 숲 속에 놓인 이 돌덩이 같은 것이 작품인 줄 모르고 즐기는 게 너무 편안해보였습니다. 신기한 게 관람객들이 작품이 생긴 모양대로 쉬더군요. 기대고, 눕고, 앉으면서…. 저마다 색다른 맛을 느끼며 즐기는 모습이 좋았습니다.” (이능호 작가)



도예가 이능호 작가와 박성욱 작가가 각각 전통옹기와 분청사기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도예작품을 선보이는 2인전을 열고 있다. 14일까지 열리는 서울 종로구 평창동 복합예술공간 ‘수애뇨339’에서 열리는 ‘굽과 합’ 전시회.

두 사람은 전통옹기를 제작하는 방식인 ‘타렴질’과 분청사기를 만드는 ‘덤벙기법’을 깊이 연마한 끝에 전혀 새로운 현대적인 도자기를 만들어냈다. 때로는 설치 조각작품처럼, 때로는 단색화 계열의 현대회화처럼 보이는 작품이다. 깊은 명상과 수행 끝에 도달한 합일의 경지가 두 사람의 손끝에서 느껴지는 전시회다.

이능호의 ‘집’과 그 이후
전시장에 들어서면 검은 쇳덩어리나 바위처럼 보이는 이능호 작가의 ‘집’ 작품이 군데군데 덩어리로 놓여 있다. 검은 쇳덩이 바위는 창 밖의 북한산을 배경으로 놓여 있기도 하고, 벽돌 담장 위에 소나무가 자라고 있는 야외정원에도 놓여 있다.





도자기로 만들어진 바위 위로 흰 눈이 쌓이기도 하고, 빗방울이 방울방울 떨어지기도 한다. 마치 장독대 항아리 위에 소복히 쌓인 눈처럼 곱고 하얀 눈이다. 두들겨 보지 않으면 도자기 작품인 줄도 모를 정도다.



이능호 작가의 ‘집’은 전통옹기 제작 기법인 타렴질로 흙가래를 차곡차곡 쌓아 올리며 두들겨 빚은 작품이다. 보통 옹기는 위가 열려 있어 된장, 고추장, 간장 등을 담을 수 있는 항아리로 사용된다. 그런데 이 작가의 ‘집’은 위가 막혀 있다. 그릇이 아니라 커다란 씨앗이나 알의 형상이다. 두들겨 보면 속은 텅비어 있어 그 안에 무엇이 들었을까 궁금해진다. 씨앗이든, 알이든 생명을 품고 있다면 우주를 가득채울 수 있는 희망이 담긴 것이라는 상상이 펼쳐진다.



벽에는 이능호 작가의 신각인 ‘집-그 이후’가 걸려 있다. 씨앗이 발아하거나 알이 깨지면서 새로운 생명체로 움트는 단계를 형상화한 작품이다. 도자기 덩어리 일부를 파내는 ‘투각’ 기법으로 만들어진 이 작품에서는 심장의 박동 소리가 들리는 듯하고, 금방이라도 날아오를 듯한 가벼움도 느껴진다.

북한산이 보이는 서울 종로구 평창동 복합예술공간 수애뇨에서 만난 이능호 작가.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검은색 바위같은 도자기를 만드는 작업은 어떻게 진행되나요.

“전통 옹기를 제조하는 방식으로 합니다. 모양이 비정형이기 때문에 물레로 돌리기 보다는, 타렴을 통해 만들어냅니다. 옹기를 만들 때는 소나무로 깎아서 만든 도개와 수레라는 도구를 이용해 두드려서 모양을 잡는데요. 외벽은 기다란 방망이인 ‘수레’로 두드리고, 내벽은 둥근 나무인 ‘도개’로 다듬습니다. 그렇게 양손으로 치면서 형태를 잡아 기벽을 올립니다. 옹기를 만드는 행위 자체가 정말 재밌어요. 소리도 좋고, 온몸으로 박자를 맞추면서, ‘창창’하는 소리와 함께 두드리는 울림이 매력적이죠.”



-타렴이란 무엇인가요.

“흙을 가락(흙타래)으로 만들어 코일처럼 쌓아올려 기벽을 만드는 방식입니다. 경기도 지방은 이렇게 타렴해서 한 개씩 코일링 해서 올리는데, 아랫 지방은 판을 밀어서 붙여서 치고 하는 방식으로 만들죠. 흙타래로 켜켜이 단을 돌려서 만들면서 마지막에 구멍을 좁게 해서 완전히 막습니다. 굳는 과정에서 계속 두드려서 형태를 잡기 때문에 밀도가 굉장히 강합니다. 그리고 1260도 고온에서 굽기 때문에 강도가 엄청나가 강해집니다.”



이 작가는 충북 청주에 있는 운보공방에서 타렴질과 수레, 도개로 두드려 만드는 전통옹기 제작기술을 전수받았고, 2014년부터는 현재처럼 뚜껑이 완전히 닫혀 있는 조형물같은 옹기 작업을 시작했다. 전통 옹기를 재해석해 현대적인 스토리와 감성을 담은 미술 작품으로 만들어낸 것이다. 바위를 닮은 ‘집’은 의자처럼 앉을 수도 있고, 그냥 실내와 야외에 오브제로 놓고 감상할 수도 있다.



그의 작품은 바닷가에 놓여 있으면 섬처럼 보인다. 집 안이나 정원에 있어도 전혀 이물감 없이 풍경 속으로 스며든다. 이 작가는 “최대한 단순하게 만들어낸 형태감에서 편안함과 명상의 기분을 느끼게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옹기로 만든 ‘집’은 무엇을 표현한 것인가요.

“겉은 검은 돌모양이지만, 속에는 우주를 품고 있는 씨앗같은 형태를 상상해서 만든 것입니다. 자세히 보면 둥그스름한 형태의 작품 끝이 모서리처럼 날이 서 있습니다. 씨앗은 움트기 직전, 발아할 부분에 이렇게 모서리가 생깁니다. 이 곳이 툭하고 터지면서 새싹이 돋아나죠. 씨앗에서 싹이 나오거나, 나무에서 새순이 나올 때는 생명의 기운이 가득합니다. 그런 좋은 기운이 들어 있다는 의미를 갖고 도자기 작업을 합니다. 어렵고 힘든 현실에서 씨앗의 좋은 기운을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작업을 하고 싶었습니다.”



-도자기 작품인데, 사람들이 올라가서 앉거나 기대도 깨지지는 않나요?

“저는 ‘블랙 마운틴’이라는 흙을 씁니다. 서양에서 조형작업할 때 쓰는 점토인데요. 다 구워지면 쇳소리가 날 정도로 강도가 높습니다. 커다란 망치를 가지고 때리지 않는다면, 사람 손으로는 깨지 못할 겁니다(웃음). 닫혀 있는 형태감도 그렇고, 고온에서 구웠기 때문에 변형도 생기지 않습니다.”

이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처음으로 투각 작품인 ‘집-그 이후’도 선보였다. 나뭇잎의 잎맥처럼 보이기도 하고, 버섯처럼 보이기도 하고, 때로는 심장을 둘러싸고 있는 혈관처럼 펄떡이는 느낌을 주기도 한다.



-‘집-그 이후’는 무엇을 표현한 것인가요.

“ 그동안 만들어온 작품이 씨앗 자체라면, ‘집-그 이후’는 씨앗이 막 움터서 확장되는 모습을 표현한 것입니다. 민들레도 보면 꽃씨가 터져서 날개를 펴고 확장해 나가잖아요. 그대로 벽에 걸어놓아도 좋고, 테이블 위에 놓고 과일을 담거나, 꽃을 꽂아놓아 놓는 사람도 있더군요.”



굽과 합’은 카다 크리에이티브 랩(KADA Creative Lab)의 전혜정 대표가 기획한 2인전이다. 한국 전통 기법을 바탕으로 현대화 작업을 선보이는 두 작가의 작품들을 통해 저마다의 삶을 지탱하며 떠받드는 ‘굽’ 그리고 혼자서는 살 수 없는 인간의 삶이 깃든 ‘합’의 가치를 재조명한다.



박성욱 작가의 분청사기 ‘편’


전시장 맞은 편에는 박성욱 작가의 분청사기 작품이 있다. 그런데 더욱 파격적이다. 분청사기의 깨진 작은 조각인 ‘편(片)’을 이어붙여서 회화처럼 만들어낸 작품이기 때문이다.

​분청사기는 고려말 조선초에 유행했던 자기다. 백자의 재료인 고령토가 확인되기 전, 청자 제작기법에 백토로 표면을 분장한 조선초 최첨단 하이브리드 도자기 제작기법이었다. 청자의 태토 위에 백토를 입혀 말그대로 ‘분’을 바른 것처럼 하얗게 화장을 했다. 그 분칠 위에 다양한 방법으로 자유분방하고, 활달하고, 파격적인 무늬를 새겨넣었다. 특히 백토 물에 덤벙 담가 꺼낸 듯한 ‘덤벙분청사기’의 부드러운 아름다움은 백토분장의 백미였다.

박성욱 작가.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사금파리로 불리는 ‘편(片)’은 도자기의 깨어진 작은 조각이다. 도자기를 구울 때 도공은 가마 속에서 제대로 형상을 갖추지 못한 그릇을 과감하게 깨어버린다. 자신의 기준에서 명품이 되지 못하고, 약간이라도 일그러진 그릇이 세상을 돌아다니는 것을 용납하지 않기 때문이다. 미완성 작품에서 안주하고, 과감히 깨어버리지 못한다면 더 높은 경지에 다다를 수 없기 때문이다.



박성욱 작가는 바로 ‘덤벙 기법’으로 분청한 도자의 깨어진 작은 조각을 가지고 작품을 만들어낸다. 흙을 수집해 반죽하고, 도판을 만들어 작은 조각으로 자르고, 조각 조각을 화장토로 분장한 후에 장작가마로 오랜 기간 소성하는 작업이다.

이능호 작가의 옹기작품도 마찬가지지만, 박성욱 작가의 분청사기도 ‘도자기=그릇’이라는 고정관념을 깨뜨린다. 전시장에서 처음 만나는 작품은 줄무늬가 인상적인 키 큰 자작나무 숲이다. 길쭉한 분청사기 조각을 덤벙 기법으로 화장을 한 뒤 자연스럽게 생기는 줄무늬를 연결해 세워놓은 작품이다. 줄무늬가 있는 조각은 자작나무가 되고, 줄무늬가 없는 조각은 자연스럽게 나무 사이의 빈 공간이 된다.



-자작나무의 줄무늬는 어떻게 만들어진 건가요?

“제가 이제 의도해서 만들어진 무늬는 아닙니다. 도자기 편을 덤벙작업을 하고 종이 위에 올려놓으면, 종이도 같이 마르면서 약 20%가량 쭈그러들어요. 그러면 쭈그러진 종이 때문에 뒷면에 화장토의 흔적이 남습니다. 완전히 마른 다음에 초벌구이를 하게 되면, 줄무늬가 있는 면이 있고, 없는 면이 생기게 되죠. 시유할 때 줄무늬가 있는 면을 살릴 것인지, 없는 면을 살릴 것인지 정하는 겁니다. 장작 가마 안에서도 위치에 따라 색이 다르게 나옵니다. 앞에 있는 것은 조금 더 화이트하게 나오고, 뒤, 옆 등 위치에 따라 환원에서 중성으로 가는 색깔도 있고, 다양하게 나옵니다.”



-어쩌다 도자기 깨진 조각(편)을 가지고 작품을 만들게 됐나요.

“약 30년 전인 대학시절에 우리나라 옛 도요지를 답사하는 수업이 있었어요. 가마터에서 제가 호미를 들고 사금파리(사기그릇의 깨진 조각)를 캐고 있었어요. 가마가 있던 땅 속에는 도자기 구울 때 받치는 도침, 덩어리가 된 그릇들도 많이 나왔어요. 그런데 신기하게도 분청사기도 있고, 백자도 보이는 거예요. 분청사기는 15,16세기 때 것이고, 백자는 17세기부터 근대까지 만들어졌지요. 백자와 분청사기는 시대가 달랐을텐데, 동시에 발견하니 너무 신기했어요. 그 때 시간의 흐름을 느꼈어요. 현시대 제 발밑에서 15세기, 16세기, 17세기부터의 시간이 중첩돼 있다니 짜릿한 떨림을 느꼈습니다. 도자기 파편을 교수님 연구실에 가지고 가서 가지런히 놓고 보는데 너무 멋있었습니다. 그래서 ‘편’이라는 제목으로 제 졸업작품 전시회를 가졌죠. 당시에는 조금 더 크고 다양한 편(조각)으로 작업했습니다. 이후 작게도, 길게도, 다양하게 편을 작업해봤고 현재 있는 양평 작업실로 오고 나서 형태를 조금 더 단순화시켰습니다.”

-분청사기의 매력은 무엇인가요.

“제 졸업논문의 주제는 ‘분청사기 주전자’였는데요. 분청사기 그릇에 대해 공부를 하면서 자유분방한 매력에 빠져들었어요. 백자에도 자연스러움이 있고, 분청도 자연스러움이 있습니다. 그런데 분청은 자유분방함의 깊이가 달라요. 분청은 세종대왕이 쓰시던 화려한 어기부터 서민적인 작품까지 자유로운 스타일이 있어요. 문양을 넣는 기법도 귀얄, 귀얄, 철화, 상감, 박지, 조화, 인화 등 다양하죠. 그런데 분청사기 중에 어찌보면 가장 밋밋한 스타일이 바로 제가 하고 있는 ‘덤벙 분청’입니다. 청자 흙으로 구운 다음에 하얀색 화장토에 덤벙 담갔다가 빼는 것이죠. 그런데 분청사기의 자유분방함 맛의 가장 정점에 ‘덤벙 분청’ 있다고 생각합니다. 너무나 단순하고, 밋밋하고, 심플한 스타일인데 그 안에서의 섬세하고, 부드럽고, 자유분방한 아름다움이 느껴지더라고요.”

분청사기 조각을 연결하니 하얀색 자작나무 숲이 됐던 작품은, 푸른색 우주공간에 황금빛 달무리 모양으로도 변신한다. ‘편-MOON 22301’은 도자기 편을 모아 달을 형상화한 작품이다. 다양한 색깔의 편을 모아 반짝임을 구현한 이 작품은 도자 과정의 무작위성을 기반으로 삼는다. 도자 원료인 흙 성분에 따라 색상이 달라지면서 다양한 빛깔의 편들로 탄생하는 것들을 모은 작품이다.



푸른색 계열의 다양한 편은 언뜻보면 김환기의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의 ‘환기 블루’ 빛을 연상케하는 회화작품처럼 보인다. 그런데 박 작가는 수없이 다른 푸른색 도자 조각을 이어붙여 우주를 만들어냈다. 물감으로 하나하나 칠해도 손이 많이 가는 작업일진데, 분청사기 조각을 구워서 하나하나 붙여나가가도면 6개월이 훌쩍 지난다고. 거대한 도서관에 책한권씩 꽂아가다보면, 어느 순간 팔만대장경을 이루는 것을 꿈꾸는 구도자의 수행(修行)과 같은 작업이다.



-달을 그리려고 한 것인가요.

“달을 그리려고 했던 것은 아닙니다. 편이 하나씩 연결되면 이렇게 보여진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편을 놓을 때는 그냥 놓는 것 같지만, 옆에 있는 색깔의 편에 맞춰 하나하나 선택해서 찾아서 넣는 과정에 의미가 있습니다. 예술은 노동을 넘어 수행하는 마음으로 해야한다고 할까요.”



-다양한 푸른색 편은 어떻게 만들어내나요.

“분청자기에서 푸른색을 내는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어요. 유약에 코발트를 섞기도 하고, 화장토에 코발트를 넣어 파란색 화장토를 쓰는 방법도 있습니다. 저는 흙 자체에 코발트를 집어 넣습니다. 유약을 칠한 것도 아니고, 화장한 것도 아니죠. 흙에 코발트를 넣는 양에 따라 옅은 푸른색(코발트 비율 0.1~1%), 보통 푸른색(코발트 3~5%), 검푸른색(코발트 5~20%) 등 다양한 푸른색이 나옵니다. 가마에서 굽는 동안 열이 닿는 위치에 따라 더욱 다양한 푸른색이 나오죠. 거기에 덤벙작업을 하기도 하고, 재벌구이를 한 다음 금을 입히기도 합니다. 영국에서 수입한 도자기용 수금인데요. 그래서 제 작품은 삼벌구이인 경우가 많습니다. ”



그의 작품 아랫쪽 구석에는 분청사기로 만든 탑들이 세워져 있다. 수백개의 분청사기 탑은 형태가 자유분방하다. 우리나라 전통 3층 석탑만 있는 것은 아니고, 서양의 종탑이나 기념비, 터키의 초승달 문양이 새겨진 탑 등 다양한 탑들이 놓여 있다. 마치 등산길에 소원을 빌며 사람들이 빼곡하게 세워놓은 돌탑처럼 보이는 풍경이다.



- 분청사기 탑을 만들게 된 이유는?

“편 작업을 쭉 해오다가 갑자기 무기력해지고, 힘들어지는 슬럼프 시기가 왔었어요. 세월호라든가, 9.11테러, 코로나19 같은 뉴스를 볼 때도 그랬죠. 정말 아무 것도 못하겠더라고요. 적막한 작업실에 앉아서 할 수 있는게 아무 것도 없어서 시작한 거예요. 탑을 만들 생각도 없었어요. 책상에 앉아서 앞에 있는 편을 하나씩 하나씩 쌓아본 겁니다. 그러다 보니까 탑이 되더라고요. 사람이 뭔가 마음이 공허할 때가 분명히 있거든요. 그럴 때가 가장 순수한 마음의 상태가 되는 것 같아요. 산길의 돌탑처럼 대단한 뭔가를 바라는 것은 것이 아니고, 그저 정성을 다하는 마음에서 쌓는 탑입니다.”



박 작가는 그동안 평면적인 편작업을 벗어나 입체적인 작품도 시도하고 있다. 다음엔 연탄을 덤벙으로 분청하고, 도자기처럼 구워낸 작품도 준비 중이라고 한다. 환경위기를 생각하는 작품이다.

“대학시절 교수님이 ‘도자기 안에 우주가 있다’라고 말씀하셨어요. 하도 어떻게 그릇 안에 우주가 있지? 하도 인상적인 말이라 일기장에 적어놨습니다. 선생님이 그 말을 했던 날의 분위기도 기억을 합니다. 그런데 제가 30년 넘도록 작업을 하다보니까, 정말 도자기 안에 우주가 있더라고요.”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