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악과 게임의 만남… 비장한 OST를 대금산조 ‘축제’로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2월 13일 03시 00분


국악원, 게임음악 27곡 편곡 앨범
유명 작곡가-음악감독 등 참여
“국악을 보다 친숙하게 여길 것”
게임사도 ‘국악 버전’ 마케팅 활용

지난해 11월 13일 부산 벡스코에서 열린 ‘2024 대한민국 게임대상’ 오프닝 공연에서 부산국악원 기악단이 연주를 하고 있다. 이날 선보인 곡들은 국립국악원과 게임사가 협업해 편곡한 국악 버전 게임 배경음악이다. 리그오브레전드(첫번째 사진)와 배틀그라운드(두번째 사진) 등 유명 게임의 친숙한 노래들이 국악기를 활용해 독특하면서도 신선한 느낌으로 바뀌었다. 국립국악원 유튜브 캡처·라이엇게임즈, 크래프톤 제공
세계적으로 팬층이 두꺼운 게임 ‘배틀그라운드’는 그 인기만큼 배경음악(OST)인 ‘더 퍼스트 서바이버(The First Survivor)’도 널리 사랑받는다. 그런데 지난해 12월 국내에서 편곡한 ‘더 퍼스트 서바이버’는 원곡과 느낌이 무척 다르다. 국립국악원이 게임사 크래프톤과 협업해 내놓은 ‘국악 버전’이기 때문이다.

원곡이 피아노와 드럼 등을 활용해 비장한 분위기를 풍겼다면, 편곡한 버전은 국가문화유산 대금산조 보유자 이생강 명인의 연주를 차용해 흥겨운 축제 느낌을 강조했다. 대금과 피리의 애절한 소리가 드럼, 베이스 등과 어우러지며 신선한 조화를 이루는 점도 매력적이다.

국악원이 지난해부터 진행하고 있는 ‘게임 사운드 시리즈’가 게임 애호가는 물론이고 국악 팬들의 관심을 받고 있다. 국악이 젊은 세대들이 열광하는 게임과 조우해 해외로도 친숙하게 다가갈 기회란 측면에서 또 다른 한류의 확장이란 평가도 나온다.

● 이질감 없으면서도 신선한 국악 사운드

국악원은 지난해 두 차례에 걸쳐 유명 게임 배경음악을 국악으로 편곡해 만든 디지털 음반을 발매했다. 지난해 5월 처음으로 메이플스토리와 모두의마블, 검은사막 등의 OST를 편곡한 15곡을 음반에 담았다. 배틀그라운드를 포함해 리그 오브 레전드(LOL), 나이트크로우 등의 음악을 활용한 12곡의 음반은 지난해 12월에 내놓았다.

몇몇 관현악단이 게임 음악을 활용해 선보인 클래식 공연은 이전에도 없지 않았다. 하지만 게임 음악을 국악으로 편곡해 음반으로 발표한 건 처음 있는 시도다. 국악원 국악진흥과 박규담 주무관은 “게임은 영화, 가요 등과 함께 세계인들의 관심이 높은 한국 콘텐츠”라며 “국악을 활용한 게임 음악으로 젊은 세대들에게 다가가고자 했다”고 했다.

편곡에 참여한 아티스트 라인업이 탄탄하다. 영화 ‘올드보이’와 ‘건축학개론’ OST를 작곡한 이지수 작곡가, 대중음악 작곡에도 능숙한 김진환 음악감독, 국악 작곡가 양승환 등 대중적으로 인지도 높은 음악가가 다수 참여했다. 연주는 국악원 정악단과 창작악단이 맡았다. 박 주무관은 “그저 게임 음악을 국악처럼 만든 게 아니라 수준 높고 자연스러운 음악을 만들기 위해 서양 음악과 전자 음악, 국악에 대한 이해도가 고루 갖춰진 작곡가들을 섭외했다”고 설명했다.

● 실제 게임에서 국악 버전 흘러나와

하지만 작업은 말처럼 쉽지 않았다. 국악은 12음계와 화성으로 이뤄진 서양 음악과 체계가 다르다. 음을 1 대 1로 대입하기도 어렵다. 모든 음을 연주하는 게 불가능한 국악기도 있다.

LOL의 ‘슬픈 미라의 저주(The Curse of the Sad Mummy)’는 원래 신시사이저에 보컬이 입혀진 몽환적인 곡이다. 국악 버전은 생황과 해금을 활용해 고독한 느낌을 살렸다. 편곡을 맡은 이 작곡가는 “원곡과 차별화하면서도 기존 게임 유저들의 공감을 사기 위해 적정한 선을 찾으려 노력했다”고 말했다.

모두의마블의 ‘모두의 마블송’은 마당놀이 판소리로 흥겨운 느낌을 살렸다. 김 작곡가는 주사위를 던져 말을 움직이는 게임 방식이 한국 윷놀이와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김 작곡가는 “새로 만든 음악을 듣고 주선율을 담당한 악기를 궁금해하다 보면 국악을 좀 더 친숙하게 여길 것”이라고 기대했다. 양 작곡가도 “단순히 서양 악기를 국악기로 바꾸는 게 아니라, 국악의 시김새(음을 꾸미는 장식음)를 잘 살리려 신경썼다”고 했다.

게임사들도 마케팅에 국악을 활용하고 있다. 검은사막은 맵 ‘아침의 나라: 서울’을 업데이트하며 국악원 창작악단이 연주한 국악을 배경음악으로 넣었다. 화면엔 국악원의 전신인 장악원(掌樂院·조선시대 궁중 음악을 담당한 관청)을 보여줬다. 제작사 펄어비스의 김지윤 오디오실장은 “포괄적인 동아시아풍 선율이 아닌 국악만의 특징을 상상해 멜로디를 구현한 게 강점”이라고 했다. 배틀그라운드 측도 최근 국악원과 협업한 음원을 활용해 새해 이벤트 영상을 제작했다.

#국립국악원#게임 음악#국악 버전#음악 편곡#롤#배틀그라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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