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멀쩡한 그 사람은 어쩌다 음모론에 빠졌을까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4월 6일 01시 4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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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대선-코로나 백신 접종 관련 등 음모론 정의-유형-확산 과정 다뤄
비합리적 믿음도 나름의 이유 있어
경멸보단 소통해 사회 분열 막아야
◇음모론이란 무엇인가/마이클 셔머 지음·이병철 옮김/404쪽·2만2000원·바다출판사

저자는 음모론에 빠진 이가 늘면서 사회관계를 파탄 낼 수 있는 위험성이 높아지고 있다고 말한다. 사진은 ‘2020년 미국 대선은 
부정선거’라는 음모론에 빠진 이들이 2021년 1월 미 의사당을 점거할 당시의 모습. 워싱턴=AP  뉴시스
저자는 음모론에 빠진 이가 늘면서 사회관계를 파탄 낼 수 있는 위험성이 높아지고 있다고 말한다. 사진은 ‘2020년 미국 대선은 부정선거’라는 음모론에 빠진 이들이 2021년 1월 미 의사당을 점거할 당시의 모습. 워싱턴=AP 뉴시스
2016년 12월 4일 미국 워싱턴의 ‘코멧 핑퐁’ 피자가게. 소총으로 무장한 20대 남성이 들어와 총기를 난사했다. 그는 ‘힐러리 클린턴이 이끄는 조직이 워싱턴의 코멧 핑퐁 피자가게 지하실에서 아동을 성적으로 학대하는 범죄를 저지르고 있다’는 황당한 음모론에 빠져 있었다. 해당 가게에는 작은 식자재 창고만 있을 뿐 지하실은 없었다. 음모론에서 언급된 사탄숭배자나 소아성애자도 없었다. 미국 사회를 충격에 빠뜨린 이른바 ‘피자 게이트’다.

다행히 피자 게이트에선 인명 피해가 없었다. 하지만 2021년 1월 ‘2020년 미국 대선은 부정선거’라는 음모론에 빠진 이들이 미 의사당을 무력으로 점거했다. 당시 폭도와 경찰관 등 5명이 사망했다. 지금까지도 미국 공화당의 연방 하원의원 중 일부는 “2020년 대선은 조작된 사기극”이라는 주장을 펴고 있다.

이 책은 음모론의 정의와 유형, 확산 과정 등을 체계적으로 연구한 내용을 담고 있다. 과학적 회의주의 사상가로 회의주의 잡지 ‘스켑틱’ 편집장인 저자는 멀쩡해 보이는 사람들이 왜 음모론에 빠지는지 답을 제시한다.

저자는 음모론에 빠지는 경로를 크게 3가지로 분석한다. 우선 경험적 진실이나 역사적 배경이 실제 진실을 대신하는 ‘대리 음모주의’다. 코로나19 백신을 맞으면 빌 게이츠가 우리를 조종할 것이란 음모론이 대표적이다. 거대 제약사의 증거 조작 등 부정과 비윤리적 실험 등이 과거 실제로 벌어졌기에 이 같은 음모론이 먹힐 수 있었다는 것. 두 번째는 ‘부족 음모주의’다. 음모론을 믿는다고 공개적으로 밝히며 같은 집단(부족)의 구성원들에게 충성심을 드러내고, 유대감을 얻는다. 끝으로 음모론을 믿는 게 유리한 선택일 수 있다는 ‘건설적 음모주의’다. 풀숲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를 들을 때 사실은 바람 소리인데, 위험한 맹수라는 생각에 빠졌다고 가정해 보자. 이는 맹수인데 바람 소리라고 가정하는 것보다 생존에 유리하다. 이처럼 최악의 상황이나 음모가 실제로 있다고 가정하는 게 번식과 생존에 유리하다는 인류의 경험이 음모론에 빠지게 할 수 있다.

저자는 음모론에 빠질 만한 저마다의 이유가 충분히 있기에 음모론자들을 단순히 어리석고, 비합리적인 사람으로 치부해 경멸해선 안 된다고 강조한다.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을 인정해야 극단적인 사회 분열을 막을 수 있다는 것. 저자는 “감정이 오가게 하지 말라” “사실의 변화가 반드시 세계관의 변화를 의미하지 않는다고 보여줘라” 등 음모론자와의 13가지 대화법도 알려준다. 그러면서 음모론의 확산을 방지하기 위해 언론의 자유 확대, 지식의 투명한 공개 등 사회적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다양한 음모론이 불거져 사회 갈등이 커지고 있는 한국 사회에도 유용한 참고서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美 대선#음모론#정의와 유형#확산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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