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없는 그림책이 말 걸어오는 세계, 이것이 바로 나의 언어”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3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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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지 그림책 작가, 첫 에세이 출간
오랫동안 블로그에 써왔던 글 엮어
“그림책은 오독할 수 있어 멋진 것
아이들이 정답에 얽매이지 않길”

이수지 작가는 26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에세이 출간 기자간담회에서 “작가가 많은 얘기를 할수록 작품 세계가 풍부해진다고 믿는다. 에세이를 통해 할 수 있는 이야기를 독자들과 나누고 싶다”고 했다. 뉴시스
이수지 작가는 26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에세이 출간 기자간담회에서 “작가가 많은 얘기를 할수록 작품 세계가 풍부해진다고 믿는다. 에세이를 통해 할 수 있는 이야기를 독자들과 나누고 싶다”고 했다. 뉴시스
“제가 쓴 디지털 세계의 글이 영원히 있을 것 같았어요. 그런데 갑자기 글이 모두 사라질 거란 두려움이 찾아왔죠.”

이수지 작가(48)는 26일 에세이 ‘만질 수 있는 생각’(비룡소) 출간 기자간담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블로그에 오랫동안 썼던 글이 얼마 전 블로그 회사가 문을 닫으면서 종이책을 펴냈다는 것이다. 그는 “그림책은 어린이 손에 쥐어지는 물리적으로 단단한 물건”이라며 “책을 묶으며 그동안 내가 해 온 작업이 그렇게 떠다니는 글을 모아 물리적 실체로 만드는 작업이라는 걸 깨달았다”고 했다.

그는 2022년 한국인 최초로 ‘어린이책의 노벨문학상’으로 불리는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상 그림작가 부문 수상자로 선정됐다. 국내 그림책 작가 중 처음으로 제36회 인촌상 언론·문화 부문 수상자로도 선정됐다. 그의 대표작은 ‘파도야 놀자’(2008년), ‘거울속으로’(2009년), ‘그림자놀이’(2010년)다. 제본선을 활용해 ‘경계 3부작’으로 불리는 이 시리즈는 바다와 모래사장, 현실과 거울 등의 경계를 시각화한 작품이다. 책의 물성을 예술로 승화시켰다는 평을 받는다.

신간 역시 책의 물성을 독특하게 살려냈다. 큰 사각형 안에 작은 사각형을 넣은 표지는 그가 작품에서 자주 쓰는 ‘책 안의 책’ 특성을 그대로 보여 준다. 초판은 실로 꿰맨 책등이 보이는 ‘누드 제본’으로 제작됐다. 그는 “그림책 작가는 책을 쓸 때 판형이 어떻고, 무게가 얼마고, 종이를 뭘 쓰는지를 생각하는 예술가”라며 “그림책은 손에 든 순간부터 책 읽기가 시작된다”고 말했다.

신간에는 그가 서울대 서양화과를 졸업한 뒤 영국 런던 캠버웰예술대에서 북아트 석사 학위를 받을 당시의 일이 담겼다. 초창기 작업 노트나 외국 편집자와 일한 경험처럼 작가로서의 면모뿐 아니라 엄마로서 아이들과 보냈던 순간에 대한 이야기도 가득하다. 그는 “그림책이 기본적으로 어린이 책이라고만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며 “아이들에게 그림책을 읽어주다가 그림책 세계에 빠져드는 독자가 많다”고 말했다.

신간에서 그는 ‘말 없는 그림책이 내게 말없이 말 걸어오는 내밀한 세계. 이것은 완전히 다른 언어이며, 이것이 바로 나의 언어구나’라고 썼다. 글을 최소화하고 그림만으로 이야기를 전달하는 작품 세계에 대한 개인적 감상을 고백한 것이다. 이날 그는 “오독(誤讀)할 수 있는 그림책은 얼마나 멋지냐”며 “아이들이 그림책 안에서라도 정답만 얘기하면서 살지 않았으면 한다”고 했다.

다음 달 8일 발표되는 안데르센상 글 부문 수상 후보에 이금이 작가(62)가 포함됐다. 한국 그림책이 발전하기 위해선 무엇이 더 필요할까.

“그림책을 읽어주는 사람의 태도요. 어른에겐 이 이야기가 정말 멋있어, 너랑 같이 이걸 느끼는 게 너무 좋다는 태도가 필요해요.”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이수지#그림책 작가#에세이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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