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에게 실망할 때… 더 나은 내가 될 수 있는 기회”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1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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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미디언-유튜버 문상훈, 첫 산문집
일기장에 끄적인 ‘탈피의 과정’
출간과 동시에 3만부 넘게 팔려
구독자 7년만에 1만배 늘어

첫 산문집 ‘내가 한 말을 내가 오해하지 않기로 함’(위너스북)을 최근 출간한 유튜브 크리에이터 겸 코미디언 문상훈 씨. 그는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빨리 휘발되는 영상이 아니라 오래 천천히 넘겨볼 수 있는 책에 내 마음과 생각을 남기고 싶었다”고 했다. 
빠더너스 제공
첫 산문집 ‘내가 한 말을 내가 오해하지 않기로 함’(위너스북)을 최근 출간한 유튜브 크리에이터 겸 코미디언 문상훈 씨. 그는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빨리 휘발되는 영상이 아니라 오래 천천히 넘겨볼 수 있는 책에 내 마음과 생각을 남기고 싶었다”고 했다. 빠더너스 제공
아버지는 아들이 ‘번듯한’ 직장에 취직하길 바랐다. 영상을 만들고 싶다 했을 땐 “방송국 PD가 돼라”고 했다. 코미디언이 되고 싶다고 했을 땐 ‘공채 개그맨 합격증’을 보여 달라고 했다. 하지만 아들이 원하는 건 이름표가 아니었다. “어떤 매체든 저는 그저 사람을 웃기는 사람이 되고 싶었지, 이름표를 달고 싶은 게 아니었어요.”

구독자 136만 명을 보유한 코미디 유튜브 채널 ‘빠더너스(BDNS)’의 크리에이터이자 코미디언 문상훈 씨(33)가 2일 서울 마포구의 한 카페에서 이렇게 말했다. 문 씨는 유튜브 크리에이터란 말이 떠오르기도 전인 2016년 5월 유튜브 채널을 열었다. 지리강사 문쌤, 문상 기자, 복학생 문당훈…. 천연덕스럽게 다채로운 얼굴로 변모하며 ‘부캐’의 시대를 연 그는 아버지의 기대를 저버린 날 일기장에 이렇게 끄적였다. “누군가에게 실망감을 안겨주었을 때 내가 먼저 해야 하는 것은 기대에 못 미친 나도 나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 스스로에게 실망할 때가 더 나은 내가 될 수 있는 기회가 된다.”

문 씨는 자신이 수년간 일기장에 끄적인 글을 모아 최근 첫 산문집 ‘내가 한 말을 내가 오해하지 않기로 함’(위너스북·사진)을 출간했다. 책엔 자신조차 믿지 못했던 때를 지나온 한 소년의 성장통이 담겼다. 문 씨는 “작가나 코미디언이 자기를 검열한다는 건 창작에 발목을 잡는 일”이라며 “자기 검열에서 벗어나기 위해 갑각류가 탈피하듯 나를 깨고, 또다시 깨는 과정을 반복해 왔다”고 말했다.

일기장은 그가 가장 솔직해질 수 있는 탈피의 공간이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엄마랑 분리불안 있었던 거 알지?”, “기회만 있으면 남 탓하는 거, 너도 알지?” 문 씨는 ‘내 모든 결핍들에게’라는 제목의 일기에서 자신의 실수와 결핍까지 숨기지 않고 드러낸다. “나의 잘못과 결함까지 구체적으로 인지하고 싶어서”, “결함을 꺼내 보일 때 비로소 그 결함으로부터 졸업할 수 있어서”다. “나의 결함을 받아들여야 다른 사람을 탓하지 않는 어른이 될 수 있어요. 저는 어른이 돼서도 누군가를 탓하기보다, ‘미안하다’ 말할 수 있는 가장 어린 시절의 소년으로 남고 싶거든요.”

누굴 탓하지도, 누군가의 기대에 자신을 끼워 맞추지도 않았던 그는 “‘빠더너스’를 운영하며 자기 확신을 갖게 됐다”고 했다. 첫 2년간 구독자 수가 늘지 않던 때에도 영상 업로드를 거른 적은 없었다. 그러자 100명 남짓했던 구독자 수가 1000명, 1만 명이 되더니 7년 만에 1만 배 넘게 불었다. 무엇보다 그가 쓴 대본과 연기가 사람들을 웃겼다. 슬랩스틱이나 분장으로 웃기는 것이 아니라 일상의 인물을 관찰한 각본으로 사람들의 ‘뇌를 웃기는’ 그의 코미디가 통한 것. 문 씨는 “참고서나 해설서 없이 내가 찾은 답이 맞아떨어졌을 때의 기분”이라며 웃었다.

“학창 시절 선생님의 도움 없이 스스로 찾은 해답은 그 풀이 과정을 절대 안 까먹잖아요. ‘빠더너스’가 몸소 부딪혀 찾은 이 해답은 까먹지 않을 자신이 있어요.”

문 씨의 인기를 증명하듯 책은 출간과 동시에 3만 부 넘게 팔렸다. 문 씨는 덤덤한 얼굴로 “저처럼 자기 자신이 되고 싶은 이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며 이렇게 덧붙였다. “제 책을 참고서처럼 여겨주세요. 원래 자기가 스스로 찾은 답이 가장 오래 기억에 남거든요.”


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산문집#내가 한 말을 내가 오해하지 않기로 함#문상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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