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보다 남자’로 뮤지컬 첫발… “이번엔 쓸쓸한 겨울나그네”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12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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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최인호 작가 10주기 ‘겨울나그네’ 무대 서는 이창섭
매일 11시간 연습후 집에서 복습
첫 공연은 긴장돼 항상 위경련
힘들지만 매력적… 계속 도전

뮤지컬 ‘겨울나그네’에서 민우 역을 맡은 이창섭은 “극 중 정서가 양극단으로 치닫는 배역을 언제 맡아 보겠나 싶어 민우를 
택했다”며 “개인적으로는 극적인 삶을 사는 민우보다는 평범하고 순탄하게 현태처럼 사는 게 꿈”이라고 말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뮤지컬 ‘겨울나그네’에서 민우 역을 맡은 이창섭은 “극 중 정서가 양극단으로 치닫는 배역을 언제 맡아 보겠나 싶어 민우를 택했다”며 “개인적으로는 극적인 삶을 사는 민우보다는 평범하고 순탄하게 현태처럼 사는 게 꿈”이라고 말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이토록 쓸쓸하고 비극적인 인물을 과연 이창섭이 소화할 수 있을까. 관객이 품은 의문일 테고, 저조차도 확신이 안 섰죠. 다만 제가 연기하는 극 중 민우처럼 우리는 스스로 결정하고 책임지면서 어른이 돼요. 걸맞은 연기를 보여드리고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차가운 겨울비가 내린 11일, 서울 강남구의 한 스튜디오에서 만난 뮤지컬 ‘겨울나그네’의 주연 배우 이창섭(32)이 말했다. 서울 서초구 한전아트센터에서 15일 개막하는 ‘겨울나그네’는 1983년 동아일보에 연재된 고 최인호 작가(1945∼2013)의 동명 소설을 토대로 만든 뮤지컬이다. 풋풋하고 올곧은 의대생 민우가 운명 같은 사랑에 빠진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범죄에 휘말리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다. 뮤지컬 ‘영웅’ ‘명성황후’ 등을 제작한 에이콤이 1997년 초연하고 2005년 재공연한 후 올해 최 작가 10주기를 맞아 18년 만에 새롭게 선보인다.

대중에게 밝은 이미지로 각인된 이 씨는 최근 뮤지컬 ‘멤피스’(휴이 역), 유튜브 채널 ‘전과자’에서 개구쟁이 같은 모습을 보여줬다. 한데 민우 역은 더없이 외롭고 어둡다. 이 씨는 “보기보다 내향적이라 평소 성격은 휴이보다 민우에 가깝다. 잔잔한 연기를 해보고 싶던 차에 운 좋게 출연 제의를 받았다”며 미소 지었다. 민우 역은 이창섭과 SF9의 김인성, 아스트로의 MJ, 렌이 돌아가며 연기한다. 민우의 선배 현태 역은 가수 세븐, 슈퍼주니어 려욱, 아스트로 진진이 맡았다. 민우와 사랑에 빠지는 다혜 역은 한재아, 임예진이 연기한다.

소설 ‘겨울나그네’는 1980년대 배우 강석우 씨와 손창민 씨가 각각 민우 역을 맡은 동명 영화와 드라마로 제작돼 큰 인기를 누렸다. 이 씨는 기존 작품들과 거리 두기를 한다고 했다. 그는 “관객이 원작을 알고 있든, 모르든 모두가 공연을 이해하려면 오직 대본에 충실하게 연기해야 한다고 생각해 일부러 다른 버전을 보지 않았다”며 “이창섭이 보여줄 민우는 학생에서 어른이 될 때의 변화, 즉 선택과 책임의 무게감을 표현하는 데 방점을 뒀다”고 했다.

2012년 그룹 비투비로 데뷔한 그는 2017년 ‘꽃보다 남자 더 뮤지컬’로 뮤지컬 무대에 첫발을 디뎠다. 가수로서의 경험이 안무를 금방 익히는 데는 도움이 되지만, 첫 공연 날이면 어김없이 얼어붙어 위경련에 시달린다고 했다. 그는 “근육이완제를 먹어도 소용이 없다. 너무 아파서 인터미션이 되자마자 대기실에 주저앉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객 앞에서 내가 아닌 다른 사람으로 2시간을 사는 것만큼 매력적인 일이 없기에 자꾸 도전하게 된다”고 고백했다.

연습은 매일 오전 11시부터 꼬박 11시간 동안 이어진다. 하지만 오후 10시가 지나도 그의 연습은 끝나지 않는다. 집에서 대본을 꼼꼼히 살펴보며 실수를 복기하고, 대본에는 없는 민우의 인생 전체를 상상하며 일기 쓰듯 빈칸을 빼곡히 채웠다. 다른 배우들이 어떤 각도로 무대에 섰을 때 멋있었는지 되짚어보며 자신의 것으로 체화하기도 한다. 그는 “한밤중이라도 좋은 생각이 떠오르면 동갑내기 김민영 연출가에게 대뜸 전화를 건다. 원작 소설이 더욱 빛날 수 있도록 모든 걸 쏟아붓고 있다”고 했다.

“공연장을 나설 땐 관객 한 명 한 명이 겨울 나그네가 되길 바랍니다. 따뜻함이 감도는 연말이지만 최대한 쓸쓸하게요. 언젠가는 연극 ‘에쿠우스’처럼 강렬함과 묵직한 질문을 던지는 연기도 해보고 싶어요. 고독하거나 기괴하게…. 그래야 관객 마음에 오래 남을 수 있으니까요.(웃음)”

내년 2월 25일까지, 6만∼15만 원.



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故최인호 작가#겨울나그네#이창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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