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겨운 숨소리까지 음악의 일부로…사카모토 류이치의 103분간 작별 인사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12월 10일 16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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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류이치 사카모토: 오퍼스’ 리뷰

영화는 피아노 주변을 부유하며 연주하는 고인의 여러 모습을 찍는다. 관객들의 시선은 카메라 무빙을 따라 검버섯 핀 그의 얼굴과 지휘하는 듯한 손짓, 가시처럼 마른 손에 오래 머물기도 한다. 엣나인필름 제공.

피아노 앞에 앉은 남자의 야윈 등이 보인다. 올해 3월 작고한 일본의 세계적 음악 거장 사카모토 류이치(坂本龍一·1952∼2023)가 남긴 103분간의 작별 인사는 이렇게 시작한다.

세계 최초로 한국에서 27일 개봉하는 영화 ‘류이치 사카모토: 오퍼스’는 고인의 마지막 연주를 담았다. 밴드 ‘옐로우 매직 오케스트라(YMO)’에서 활동하던 시절부터 영화 음악, 마지막 정규 앨범 ‘12’ 수록곡까지 음악 인생을 아우르는 곡들로 채웠다. 생의 끝을 직감한 그가 ‘한 번 더 납득할 만한 작품을 만들고 싶다’는 의지로 지난해 9월 8일부터 15일까지 총 8일간 촬영했다. 고인이 일본에서 가장 좋은 소리를 내는 곳이라 생각했던 NHK 509 스튜디오에서 하루에 3곡 정도를 2, 3번씩 촬영했다.

곡 ‘lack of love’를 시작으로 모두 20곡이 연주된다. 고독한 느낌의 ‘solitude’, 밝은 분위기의 ‘ichimei-small happiness’, 애수에 찬 ‘the last emperor’로 이어진다. 고인이 직접 선곡하고 편곡한 곡들로, 깜깜한 어둠에서 새벽과 낮을 지나 다시 밤으로 가는 하루의 시간을 표현했다고 한다.

영화는 고인의 연주와 표정에 집중한다. 그의 아들인 소라 네오 감독은 흑백으로 화면을 처리해 관객이 연주에 몰입하도록 연출했다. 그 덕에 언뜻언뜻 들리는 고인의 힘겨운 숨소리와 악보 넘기는 소리 모두 음악의 일부처럼 느껴진다.

그러다 딱 한 번, 고인은 연주를 멈춘다. 곡 ‘aqua’를 연주하던 그는 탐탁치 않은 숨을 내쉬다 “다시 합시다”라며 건반에서 손을 뗐다. 이어 밴드 ‘옐로우 매직 오케스트라’ 시절 만든 곡 ‘tong poo’까지 연주를 마치곤 한 마디를 더 얹었다.

“잠시 쉬고 하죠. 힘드네. 무지 애쓰고 있거든.”

내내 굳게 다문 입으로 온 신경을 집중하던 사카모토였지만, 후반부 곡 ‘happy end’를 연주하면서는 간간이 입가에 미소를 띠었다. 영화 ‘전장의 크리스마스’ OST ‘Merry Christmas Mr. Lawrence’를 거쳐 그가 마지막으로 준비한 곡은 ‘opus’. 엔딩 크레딧과 함께 자동 연주 재생됐다.

고인이 떠난 피아노는 홀로 건반을 움직이며 곡을 완주한다. 마치 사카모토의 삶이 끝나도 연주는 이어진다는 듯. 생전 사카모토는 완성된 편집본을 본 후 “좋은 작품이 되었다”는 말을 남겼다.

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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