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막식 열리는 센강에서 수영을… 파리는 올림픽 경기장으로 변신 중[전승훈 기자의 아트로드]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7월 29일 01시 4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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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제33회 여름올림픽을 치르는 프랑스 파리는 현재 공사 중이다. 2019년 불이 난 노트르담 대성당은 거대한 크레인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오페라 가르니에 극장과 카루젤 개선문에도 가림막을 쳐놓은 채 외벽 보수 공사가 한창이다. 내년 7월 26일 개막하는 파리 올림픽과 패럴림픽의 주요 경기가 바로 파리의 도심 한복판에서 벌어지기 때문이다. 올림픽 개막을 딱 1년 앞두고 경기장으로 쓰일 파리의 유서 깊은 랜드마크를 돌아보았다.

루브르박물관 앞 공사현장에 설치된 거울 가림막.
루브르박물관 앞 공사현장에 설치된 거울 가림막.


● 센강에서 개막식과 수영 경기를
올림픽을 앞두고 보수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인 노트르담 대성당.
올림픽을 앞두고 보수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인 노트르담 대성당.
내년 파리 올림픽의 중심은 센강이다. 센강 변 노트르담 대성당 앞 광장에는 임시 계단이 설치돼 있는데, 수많은 관광객이 계단에 앉아 보수 공사 중인 성당의 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사진을 찍고 있었다.

파리 올림픽은 기상천외한 개막식을 준비하고 있다. 주경기장이 아니라 센강에서 열리는 개막식이다. 160여 척의 배가 각국 대표 선수단을 태우고 파리 동쪽 오스테를리츠 다리에서 출발해 서쪽으로 6㎞를 지나 에펠탑 건너편 트로카데로 광장까지 수상 행진을 벌인다. 루브르 박물관, 오르세 미술관, 에펠탑 등 배가 파리의 명소를 지날 때마다 수상교향악단, 곡예사, 댄서 등이 화려한 퍼포먼스를 펼친다. 센강 주변에 마련된 객석에서 60만 명이 넘는 관중이 무료로 개회식을 지켜보는 사상 최대의 올림픽 개막식이다.

2024 파리 올림픽 센강 개막식과 에펠탑 밑 비치발리볼 경기장 조감도. 프랑스 관광청 제공
2024 파리 올림픽 센강 개막식과 에펠탑 밑 비치발리볼 경기장 조감도. 프랑스 관광청 제공
파리시는 수천억 원의 돈을 쏟아부어 새로운 경기장을 짓는 대신 파리 도심 랜드마크 건물 앞에 임시 경기장을 짓는 방식을 택했다. 에펠탑 아래 샹드마르스 광장에는 1만2860석 규모의 비치발리볼 경기장이 들어선다. 파리 군사학교(에콜 밀리테르) 건너편에는 유도와 레슬링 경기장이 들어서고, 나폴레옹 묘역이 있는 앵발리드 북쪽의 잔디 공원에선 한국의 태극 궁사들이 금빛 과녁을 겨눌 예정이다.

센강에서는 야외 수영대회도 열린다. 그랑팔레와 앵발리드를 잇는 알렉상드르 3세 다리가 그 무대다. 황금빛 날개가 달린 페가수스상이 서 있는 알렉상드르 3세 다리는 파리에서 가장 아름다운 다리로 꼽히는 곳. 이 다리 밑에서 ‘철인3종 경기’(트라이애슬론)의 수영 경기가 펼쳐진다. 110명의 남녀 선수들은 센강 1.5km 구간에서 수영을 한 뒤, 사이클을 타고 샹젤리제 거리를 거쳐 개선문 구간까지 7바퀴(총 40km)를 달리고, 마라톤 10km를 달려 다시 알렉상드르 3세 다리로 골인하게 된다. 1923년 수질 오염으로 수영이 금지된 센강에서 100년 만에 다시 공식 수영 경기가 펼쳐지는 것이다. 파리시는 이를 위해 지난 7년간 14억 유로(약 2조 원)를 들여 하수처리장을 개선하고, 폐수 방류를 단속하는 등 대대적인 센강 수질 개선 작업을 펼쳐 왔다. 과연 올림픽 수영에 참가한 선수들의 피부 상태가 어떨지 궁금해진다.

알렉상드르 3세 다리 옆에 있는 그랑팔레(Grand Palais)는 1900년 파리 박람회 당시 전시관으로 쓰였던 건물. 에펠탑처럼 철골 구조물로 된 천장에 유리를 끼운, 당시로선 첨단 공법으로 지어졌던 이곳에서 펜싱과 태권도 경기가 펼쳐진다.

마라톤 경기 코스는 말 그대로 파리의 핵심 관광코스와 일치한다. 파리시청인 ‘오텔 드빌’에서 출발해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의 무대가 됐던 오페라 가르니에, 방돔 광장 등을 거쳐 베르사유 궁전을 찍고 앵발리드에 도착하는 코스다. 17세기 절대왕정의 상징인 베르사유 궁전에서는 승마와 근대 5종 경기도 펼쳐진다. 베르사유 운하 옆에서 진행되는 승마 경기는 올림픽이 아니라 영화 속 장면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샹젤리제 거리와 튈르리 공원을 연결하는 콩코르드 광장은 올림픽 기간에 어반 스포츠의 주무대로 탈바꿈한다. 프랑스 대혁명 당시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 왕비가 단두대에서 처형당했던 피의 광장이 역동적이며 현대적인 스포츠 경기장으로 변신하는 것이다. 스케이트보드부터 BMX프리스타일, 3×3 농구 그리고 이번 올림픽 때 처음으로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 브레이킹까지. 빠른 비트의 음악을 배경으로 한 젊고 새로운 스포츠의 무대로 바뀐다.

프랑스 파리는 1855년부터 1937년 사이에 8차례의 만국박람회를 개최하면서 세계적인 도시로 탈바꿈했다. 324m의 에펠탑(1889년) 등 당시에 지어진 건축물은 지금도 파리를 상징하는 랜드마크다. 1924년 파리 올림픽 이후 100년 만에 열리는 이번 올림픽도 파리의 업그레이드된 아름다움을 TV 생중계를 통해 전 세계에 알리는 장으로 삼겠다는 포부다.

● 백화점, 미술관으로 복원된 옛 건축물
올림픽을 앞둔 파리에서는 옛 건축물을 현대적으로 복원한 명소들도 속속 문을 열고 있다. 파리 1구 퐁피두센터 근처인 레알 지역에 있는 ‘라 부르스 드 코메르스(la Bourse de Commerce)’는 건축가의 아이디어가 어떻게 도시의 옛 유적을 현대적인 감각의 미술관으로 탈바꿈시켜 주는지를 보여준다.

프랑스 파리의 상품거래소 건물을 안도 다다오가 현대미술관으로 리모델링한 ‘라부르스 드 코메르스’.
프랑스 파리의 상품거래소 건물을 안도 다다오가 현대미술관으로 리모델링한 ‘라부르스 드 코메르스’.
로마의 판테온처럼 돔과 돌로 지어진 건물은 원래 16세기 이탈리아에서 시집온 카트린 드메디시스 왕비의 저택이었다. 18세기에는 곡물거래소, 19세기에는 원자재 상품거래소, 20세기에는 파리 상공회의소로 쓰이기도 했다. 밀과 같은 곡물을 저장하기 위해 강철 구조물과 유리로 만든 돔과 넓은 내부 공간이 인상적이다. 이 건물은 3년간의 공사 끝에 미술품 경매사 크리스티, 명품 브랜드 구치, 프랭탕 백화점 등을 소유하고 있는 프랑수아 피노(케링 그룹 대표)의 5000여 점에 이르는 근현대 예술품을 전시하는 미술관으로 새롭게 문을 열었다.

리모델링을 맡은 일본의 건축가 안도 다다오는 역사적인 건물 내부에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인 노출 콘크리트로 만든 높이 10m, 지름 30m의 원통 모양의 구조물을 집어 넣는 실험적인 디자인을 감행했다. 원통 모양의 구조물 내벽은 자연스럽게 미술품 전시장이 되고, 외벽엔 계단이 설치돼 5층 높이의 각 층 전시장으로 연결된다. 천장까지 올라가면 돔 유리창 밑에 파노라마처럼 펼쳐져 있는 프레스코화를 감상할 수 있다. 1889년 화가 알렉시조제프 마즈롤이 미국과 아프리카, 아시아, 지중해, 북유럽, 러시아 등 전 세계의 민속과 무역의 현장을 그린 그림은 산업화와 기술적 진보를 담은 시대의 유산을 그대로 담고 있다.

15년 만에 문을 연 사마리텐 백화점 5층에 복원된 아르누보 양식 공작새 프레스코화.
15년 만에 문을 연 사마리텐 백화점 5층에 복원된 아르누보 양식 공작새 프레스코화.
파리 센강의 가장 오래된 다리인 퐁뇌프 앞에 있는 사마리텐 백화점도 15년간의 보수 공사를 마치고 다시 문을 열었다. 150여 년 전에 지어진 아르데코, 아르누보 양식의 기둥과 손잡이, 천장의 벽화까지 하나하나 원래대로 복원을 끝낸 것이다. 2005년 붕괴 위험이라는 안전상의 이유로 강제 폐점된 지 15년 만이었다. 이 백화점을 인수한 루이뷔통모에에네시(LVMH그룹)는 백화점 문을 닫고 1조 원가량을 쏟아부어 대규모 복원 사업에 착수했다. 아르누보 양식의 명작으로 꼽히는 5층 유리 천장 밑 공작새 프레스코화와 파사드를 비롯해 철제 기둥을 리벳으로 연결한 에펠 구조물, 계단과 문 손잡이 하나까지 모두 세심하게 복원했다. 총 280개 업체와 3000명이 넘는 각 분야 전문가들이 참여한 리노베이션 작업이었다. 또한 기존 건물 옆에는 우아한 파도처럼 물결치는 유리 외관을 자랑하는 현대적인 건물인 리볼리관도 새롭게 공개됐다.

수백 년 전의 오래된 유적이 아니라 근대 산업화 시대의 유산을 이렇게 심혈을 기울여 복원해 내는 것은 프랑스인이 아니면 쉽게 상상하기 힘들다. 이 백화점에서 럭셔리 브랜드 쇼핑을 하지 않더라도, 5층에 올라가 보아주 레스토랑에서 샴페인 한잔을 마시며 아르누보 양식 유리 지붕과 공작새가 그려진 프레스코 벽화를 감상하는 것만으로도 좋은 여행이 된다. 사마리텐 백화점은 1970년대 영화 ‘킹콩’을 소재로 한 광고로 인기를 끌었는데, 관광객의 동영상을 촬영해 광고에 합성해 주는 코너도 있다. 킹콩의 손에 붙잡힌 사람이 몸을 흔들며 ‘도와줘요∼’ 하고 외치는 연기를 실감나게 해주는 것이 좋은 기념 영상을 얻는 비결이다.


파리=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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