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흐가 사랑한 도시 아를에 문을 연 이우환 미술관[전승훈의 아트로드]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5월 11일 20시 0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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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방스 여행(1) 아를 이우환 미술관

프랑스 남부 프로방스의 도시 아를 시내의 한복판. 한국의 미술가 이우환(87) 화백의 작품을 상설 전시하는 이우환미술관(Lee Ufan Arles)을 만날 수 있었다. 2022년 4월에 문을 연 따끈따끈한 미술관이다.

프랑스 남부 아를에 개관한 이우환 미술관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이우환 화백의 작품은 매년 서울 코엑스에서 열리는 KIAF(한국국제아트페어)와 화랑미술제를 비롯해 국내외 대표적인 아트페어에서 최고 가격으로 팔리는 핫한 작품이다. 우스갯소리로 “점 하나 찍으면 1억, 점이 2개 있으면 2억원”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단순한 점, 선으로도 인기가 높다. 한국 외에서도 특히 일본과 프랑스에서 인기가 높다. 2010년 일본 나오시마 섬에 ‘이우환 미술관’이 세워졌고, 2015년에는 부산 해운대구에 있는 부산시립미술관에 ‘이우환 공간’이 개관했다. 프랑스 아를에 세워진 이우환 미술관은 일본, 한국에 이어 세 번째 세워진 이우환 화백의 상설 작품 전시 공간이다.
2007년 프랑스 최고 권위의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받았던 이우환 화백은 2014년 파리 인근의 베르사유궁의 초청으로 야외정원에서 개인전을 열기도 했다. 제프 쿤스, 아니쉬 카푸어 등 세계적인 현대미술 작가들에 이어 초청받았던 것. 이 화백은 당시 돌과 철판을 재료로 한 ‘관계항’(Relatum) 연작 총 10점을 설치했다.

아를 베르농 저택을 미술관으로 개조하는 이우환 화백. Lee Ufan Arles 제공
그렇다면 이우환 화백은 프랑스에서도 왜 하필 아를에서 미술관을 개관한 것일까. 프로방스의 아를은 빈센트 반고흐가와 파블로 피카소, 장 콕토 등 예술가들이 사랑했던 도시로, 수많은 미술 애호가들이 찾는 도시이자 현대미술의 중심지로 떠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고흐는 아를에서 약 15개월간 머물면서 ‘해바라기’ ‘밤의 카페 테라스’ ‘별이 빛나는 밤에’ ‘노란집’ ‘꽃피는 아몬드 나무’ 등 200여 점의 자신의 대표작을 남겼다. 따스한 햇살이 비치는 프로방스의 자연 속에서 고흐는 바람과 별, 구름, 꽃, 나무를 찾아다니며 명작을 그릴 수 있었다. 한편으로는 지독한 외로움과 따돌림, 친구와의 다툼과 자해, 투병과 요양을 겪으며 인생의 가장 파란만장한 격동의 세월을 보낸 곳이기도 하다.

​ 아를은 고흐 이전에도 ‘프랑스의 로마’라고 불릴 정도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고대 로마 시대의 유적이 잘 남아 있는 도시다. AD 90년 아우구스투스 1세 시절 지어진 로마 원형경기장은 2만5000명이 관람할 수 있는 엄청난 크기인데, 지금도 투우경기장과 콘서트장으로 사용되고 있다. 4월 초에 아를을 찾았을 때 코로나19 이후 오랜만에 열린 투우 페스티벌의 열기로 온 도시가 들썩였다. 또한 1세기경에 세워진 1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아를 고대극장이 있고, 로마인 공동묘지 ‘알리스캉’도 잘 남아 있다.

이우환 미술관이 된 아를 오텔 베르농
또한 2021년 아를에는 초현대식 뮤지엄인 ‘루마(LUMA) 아를’이 개관해 전세계의 이목이 집중됐다. 빌바오의 구겐하임 미술관을 설계했던 프랑크 게리의 신작이다.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에’를 모티브로 한 루마 아를은 요즘 유럽 최고의 핫플레이스다. 이러한 프로방스의 미술 여행의 중심지로 떠오른 아를 시내 한복판에 이우환 작가의 미술관이 생겼다는 점에서 무척이나 고무적인 일이다. 이우환 화백은 인터뷰에서 “아를은 로마 제국 이래로 깊은 역사를 가지고 있다”며 “이 역사와 내 작품이 만나 서로 부딪히고 새로운 울림을 만들어내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아를의 이우환 미술관이 들어선 곳은 16~18세기에 지어진 ‘오텔 베르농(Hotel de Vernon)’ 저택이다. 로마시대 고대 원형경기장과 고흐가 ‘밤의 카페 테라스’를 그린 포룸광장 사이 골목길에 있는 대저택이다. 이 건물은 25개의 방이 있는 옛 3층 주택으로, 연면적 1350㎡ 규모다. 일본 나오시마 섬에 있는 이우환 미술관은 일본의 세계적인 건축가 안도 다다오(82)가 설계했는데, 아를의 이우환 미술관도 안도 다다오가 참여했다.

아를 이우환미술관 관계자는 “이우환 화백의 절친인 건축가 안도 다다오가 저택을 개조해 미술관으로 만드는 작업에 참여했다“며 ”오래된 역사를 지닌 베르농 저택을 정제된 예술작품의 공간으로 바꾸는 작업에 안도 다다오와 이우환 화백이 깊은 의견을 나누면서 작업을 했다“고 밝혔다.

베르농 저택 내 안도 다다오의 작품. Lee Ufan Arles 제공
아를 이우환 미술관 입구에 들어가면 가장 먼저 만나는 것은 안도 다다오의 작품이다. 다다오의 트레이드마크인 노출 콘크리트로 된 벽 사이로 들어가면, 달팽이처럼 빙글빙글 돌며 안으로 들어가게 된다. 가장 안에 있는 중심부에는 발바닥에 하늘이 있다. 어떻게 발밑에 하늘이 보이지? 하고 잠시 어리둥절한 순간, 자세히 보니 영상이었다. 하늘을 찍은 영상을 바닥에 틀어놓은 것이었다. 어두운 달팽이 콘크리트 벽 안에서 만난 낯설면서도 신비스러운 느낌이었다.


입구의 콘크리트부터 1층은 온통 돌의 향연이다. 1층에는 이우환 화백의 돌과 철로 된 작품 10점이 전시되고, 2층에는 이 화백의 회화 작품 30점이 전시된다. 1936년 경남 함안에서 태어난 이우환은 서울대 미대를 중퇴하고 일본에 건너가 일본대 철학과를 졸업했다. 그는 사물과 세계의 관계에 천착하면서 일본 아방가르드 운동 ‘모노하’를 주도했다. 모노하는 1960~70년대 콘크리트, 유리판, 강철 등 산업 재료와 돌과 나무를 결합한 작품을 선보인 미술 운동이다.
이우환이 돌과 철, 유리판을 특정한 공간에 놓아 두는 설치 작품은 ‘관계항’(Relatum)이다. 그는 평범해 보이는 돌과 철판, 유리를 공간 속에 다양한 형태로 놓아둠으로써 관객들이 새로운 의미를 느끼게 한다. 라틴어인 ‘Relatum’은 철학 용어로 관계를 맺는 주체를 뜻한다. 예술작품이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작품과 관객이 공간의 변함에 따라 새로운 관계를 생성하게 되는 것이다. 공간에서는 관객도 하나의 작품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이우환은 사람들이 “아를이라는 역사적인 공간에서 내 작품이 사람들과 어떤 관계를 맺는지를 보고 싶다”고 말한다. 그에게 있어서 예술가란 작품의 매개자이자 중개자 역할을 하는 사람일 뿐이며, 최종적으로 작품을 완성하는 것은 관객인 셈이다.

“길가의 녹슨 병뚜껑을 보고도 가슴이 뭉클해질 수 있다.
우리 삶에 있어서의 많은 예기치 않은 순간들,
찬란하거나 아름답거나 슬프거나 더러운 순간들이
반짝 나타났다가 사라짐을 반복한다.” (이우환)

돌 사이에 강철 막대가 엇갈려 있는 모습에서 나는 무엇을 느꼈는가. 우리의 대화는 엇갈림 속에서 서로 소통하지 못하고 다른 곳을 향하고 있지 않는가.

벽의 액자를 바라보는 돌멩이는 액자 속에 들어 있어야할 그림을 깔고 앉아 있다. 우리는 정작 중요한 것은 깔고 앉아 있고, 텅빈 액자 속만을 바라보며 사는 것이 아닐까.

돌멩이에 꽂힌 철사가 벽에 뭔가 그리고 있다. 물음표?

천정에 달린 조명 빛이 커다란 접시에 담긴 물에 반사된다. 물빛이 흔들릴 때마다 천정에는 알 수 없는 표정이 새겨진다. 고흐가 그린 아를의 밤하늘에 떠 있는 별빛 같기도 하고, 해골이 눈물을 흘리는 것 같기도 하다. 슬프면서도 찬란한 빛이 변화무쌍하게 공간을 가득 채운다.

돌을 유리판 위에 올려 놓다가 깨졌는데, 우연하게 금이간 유리판은 그대로 하나의 예술이 된다. 내 삶의 단 한번의 선택도 내 인생에 커다란 금을 가게 할 수 있다. 깨진 금은 어디로 쫙 갈라져 나갈지 예측할 수 없다. 그것도 하나의 인생의 지문으로 남을 것일 뿐.

1층 전시장 마지막 작품. 이우환이 손녀를 위해 만든 작품이라고 한다. 바닥에 앉아 있는 돌멩이는 손녀이리라. 할아버지는 벽에 아무것도 그려 넣지 않은 하얀색 캔버스를 걸어놓았다. 손녀가 바라보는 할아버지의 작품은, 눈으로는 보이지 않는 것이라는 뜻일까. 아니면 하얀색 도화지에 손녀가 자신만의 관계항을 그려, 자신만의 인생을 만들어 나가라는 뜻일까.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에 걸려 있는 도예 작품. 흙으로 빚은 판에 손가락을 깊게 찔러 넣은 자국으로 점을 하나 찍어 놓았다. 점과 선에 천착해 온 자신의 세계를 2층에서 본격적으로 보여주리라 하는 의도인 듯하다.

이우환 화백은 1973년쯤 부터 ‘점으로부터’ ‘선으로부터’ 연작을 시작했다. 그는 점을 찍은 뒤 붓끝의 안료가 없어질 때까지 선을 긋는 작업을 반복했다. 수묵화에서 먹을 묻힌 후 물기가 날아가면 거칠어진 선이 남게 되는 ‘비백’ 효과를 서양화에서도 도입한 듯이 보인다.

그런데 이우환 화백의 그림을 본 아를의 한 소년은 “비행기가 날아갈 때 하늘에 남은 하얀 흔적같다”고 말했다고 한다.

제트기 수십대가 함께 편대비행을 한 자국일까.

구부러진 선도 나타난다.

이번엔 점이다.

점이 두 개다.

점 하나 찍었다. 설마 이 작품은 얼마일까?


자유분방한 점들.

점 하나가 좀더 커지고, 길어졌다.

점이 화분 모양이 된다. 동양화처럼 농담의 차이가 있는 점이다. 애플 로고처럼 단정하다. 밝은 조명 아래에서는 3D 효과가 난다.

점이 여러개로 변한다.

점이 동그란 원을 이룬다.

점의 행렬이 뒤로 갈 수록 농도가 옅어진다. 왼쪽 방향으로 헤엄치는 올챙이들 같기도 하고, 매트릭스 영화에 나오는 컴퓨터 화면 픽셀 같기도 하다.

점이 컬러로 변한다. 붉은색과 푸른색 점이 포옹을 하면서 겹치며 한몸이 되고, 계단을 이루기도 한다.

이우환이 1층 야외 정원과 방에 돌과 철, 유리로 설치해놓은 ‘관계항’을 보고 난 후에 2층에 있는 회화 작품을 보니 비로소 그의 작품 세계가 무슨 의미인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듯했다. 이우환은 돌과 철로 ‘관계항’ 작품을 할 때는 야외나 방이라는 3차원 공간을 캔버스 삼아서 작업을 한 것이다. 이러한 돌과 철은 2차원 평면의 회화 작품에서는 붓으로 그린 점이 되고, 선이 되는 것이다. 집 안에 돌과 철과 같은 무거운 작품을 가져다 놓을 수 없으니, 회화 작품을 벽에 걸어놓고 점과 선의 관계항을 명상해보라는 뜻인 듯했다. 그의 점은 돌이고, 선은 쇠막대였다. 그의 캔버스는 입체적인 방이고, 공간이 되는 것이다.

아를에서 이우환의 작품을 한꺼번에 감상할 수 있었던 것은 행운이었다. 세계 어떤 미술관이나 아트페어보다 가장 많은 작품을 보았던 것 같다. 부산시립미술관의 ‘이우환 공간’에서도 야외와 실내에서 작품을 보았지만, 아를이 작품이 더 다양하고 많았다. 이 정도 크기의 이우환 작품을 이렇게 많이 모아놓다니. 과연 가격이 얼마나 될까 상상이 되지 않는다. 이우환은 아를 미술관에 자신의 작품을 대여해주었다고 한다.


전승훈기자 raphy@donga.com
#아를#프로방스#이우환#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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