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초상권은 어떻게 허락 받아야할까[청계천 옆 사진관]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5월 6일 11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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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 사진 No.17

▶ 100년 전 신문에 실린 사진으로 요즘 사진에 대해 생각해보는 백년 사진입니다.
우리가 당연하게 봐왔던 이미지에 대해 다시 한번 되돌아보고 이미지의 원형 모습을 찾아가보는 코너입니다. 오늘은 100년 전 신문에 실렸던 어린이 사진을 골라봤습니다.

교당의 ‘어린이 날’기념 축하연회와 소년군의 선전서 배부 광경 = 1일 오후 3시.
교당의 ‘어린이 날’기념 축하연회와 소년군의 선전서 배부 광경 = 1일 오후 3시.

▶자료를 찾아보면 우리나라에서 어린이날이 처음 시작된 것은 1922년입니다. 그리고 다음 해인 1923년 5월 1일에 소파 방정환 선생과 소년운동협회가 ‘어린이 해방 선언’을 하셨습니다. 시간이 흘러, 올해 2023년 5월 1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는 ‘어린이 해방 선언’ 100주년 행사가 열렸습니다. 제가 속해 있는 동아일보 사진부 기자들도 행사를 촬영해 5월 2일자 신문에 게재했습니다. ‘어린이 해방 선언’이라는 역사가 수미쌍관식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걸 확인하니 뭔가 묘한 감정이 들었습니다.

▶기사 내용은 아래와 같습니다.
‘5월1일’의 ‘어린이날’을 기념하기 위하야 소년운동협회의 주최로 시내 3군데에서 열린 연설회와 연예회의 광경은 어떠하였는가. 연설이나 연예나 모두 ‘우리의 가시밭에서 길리어 오든 어린이를 해방하라’하는 소년운동의 처음일임으로 그 주장이 정당하고 그 계획이 새로운 것만큼 일반의 환영을 받아서 예상이상의 성화를 이루었다더라.

▶사진은 조금 특별한 방식으로 편집되어 지면에 배치되어 있네요. 연단 아래 청중의 모습 사진과 함께 한 여성이 어린이 대표로부터 선언문을 받는 장면, 이렇게 두 장의 사진이 함께 게재되어 있습니다.


▶신문에 어린이의 얼굴을 게재하는 것은 각별한 주의가 필요합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2009년 경험 이후 특히 어린이 사진에 대해 조심하고 있습니다. 서울 서초구 반포동에 ‘프랑스 마을’이 있습니다. 그 전까지 몇 년 동안 프랑스 국적의 어린이들과 마을주민 100여명이 어울려 한국 전통 추석 문화를 체험하는 행사가 열렸습니다. 한복을 입은 프랑스 국적의 어린이들이 송편빚기, 윷놀이, 제기차기, 떡메치기 등을 직접 체험합니다.

당시 구청에서 보도자료를 언론사로 보냈고, ‘볼거리’이기도 하고 ‘사진거리’기도 해서 사진을 찍으러 갔습니다. 몇 년째 당연하게 사진 찍고 지면에 사진을 게재하던 행사였는데 그 해에는 어떤 프랑스인 부모가 문제 제기를 했던 것 같습니다. 어린이들이 한국 문화 체험 행사를 하는 것과, 얼굴이 신문방송을 통해 세상에 알려지는 것은 다른 문제라는 취지였습니다. 그 때 현장에 있던 기자들이 내린 결론은, “어린이들의 초상권이 확보되지 않았고, 미성년자이므로 집에 있는 보호자들의 촬영 허락을 받아야 보도할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로부터 10여 년이 지난 요즘의 기준으로 보면 너무나 당연한 얘기입니다. 함부로 어린이들의 얼굴을 신문에 낼 수 없으며, 필요할 경우 미성년자인 어린이에게 허락 받는 게 아니라 보호자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는 점 말입니다.

▶ 설령 부모가 허락했다 하더라도 나중에 성인이 된 어린이 본인이 다른 판단을 하는 경우 잊혀질 권리 또는 초상 사용에 대한 권리를 주장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나라 사례는 아니지만 2021년 8월 미국에서는 자신의 어린 시절 알몸 사진에 대한 손해 배상을 요구한 경우가 있었습니다. 록그룹 너바나(Nirvana)의 ‘네버마인드(Nevermind)’ 앨범 표지 사진에서 알몸으로 수영을 하는 스펜서 엘든씨가 자신의 동의 없이 앨범 표지 사진으로 사용됐다고 주장한 일이었습니다. 이 사건은 엘든씨 부모가 촬영 당시 촬영의 댓가로 돈을 받았다는 점과, 엘든씨 본인이 그동안 스스로 이 사진을 자랑삼아 이야기했었다는 점 때문에 기각 판결을 받았지만, 부모가 아이의 초상권에 대해 권한을 갖고 있는지에 대한 화두를 던지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는 어린이 사진이 많은 편입니다. 현실보다 나은 미래에 대한 기대와 희망을 상징하기 때문 아닐까 막연하게 생각할 뿐 정답은 없습니다. 외국 정상이 한국을 방문할 때 서울 시내의 초등학생 수십 명이 거리에 나와 태극기를 흔들고 꽃다발을 주는 장면을 우리는 어색하게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물론, 외국 신문에서도 어린이가 등장하는 사진은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처럼 정치와 외교 현장에 어린이가 많이 출현하지는 않는다는 게 저의 생각입니다. 그나마 시위 현장에서 구호가 쓰인 피켓을 들고 있는 어린이 사진은 가능한 한 피하자는 공감대는 형성되어 가는 것 같습니다. 어린이의 정치적 입장과 부모의 정치적 입장이 동일하다고 보기 어렵기 때문이고 시위 현장에서 생길 수도 있는 안전문제 때문입니다.

▶정치와 사회 이슈 현장에 등장하는 어린이 모습 이외에 주의가 필요한 것이 SNS입니다. 올해 어린이날인 5일 보건복지부 산하 아동권리보장원은 온라인 콘텐츠 속 아동권리 침해를 예방하기 위한 체크리스트를 만들어 공개했습니다. 골자를 보면, 아동·청소년 출연자의 주체적 사고를 인정하고 의견을 존중한다, 제작자는 아동·청소년과 그 보호자에게 촬영과 출연으로 발생할 수 있는 초상권과 정서 문제 등 위험요소를 충분히 설명하고 동의를 받아야 하며 구체 내용과 범위, 기간 등을 계약서에 명시해야 한다, 성적 유희 대상으로 묘사하거나 성적 수치심을 일으킬 정도로 신체를 노출하는 행위는 안된다 등입니다.

▶어린이 사진에 대해 한 번 생각해봤습니다. 여러분은 100년 사진에서 뭐가 보이시나요?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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