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미술’에 가려졌던 구상회화의 재발견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4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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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민미술관 ‘히스테리아: 동시대 리얼리즘 회화’展 내일 개막
최진욱-이수경 등 13명 100여점
“세상을 회화에 담는 방식 탐구”
소재-작법에 집중한 작품들 주목

현대 미술에서 추상과 구상의 구분은 더 이상 큰 의미를 갖지 않지만, 한국 미술사에서는 여전히 중요한 분류로 여겨진다. 1980년대 이후 한국 미술사에서 추상은 미니멀리즘 회화 혹은 단색화로, 구상은 역사적 리얼리즘 혹은 민중미술로 생각돼 온 경향이 강했다. 구상 회화를 민중 미술로 구분했던 인식에서 벗어나 구체적인 형상을 표현한 회화를 재조명하는 전시가 일민미술관에서 열린다.

서울 종로구 일민미술관에서 14일 개막하는 ‘히스테리아: 동시대 리얼리즘 회화’전은 구상 회화를 다루는 국내 작가 13명의 작품 100여 점을 선보인다. 윤율리 일민미술관 학예팀장은 “최진욱 이수경 정수진 노충현 작가는 세상을 회화에 담아내는 방식을 탐구해 온 중견 작가지만 민중미술 중심의 리얼리즘 회화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제대로 조명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런 문제의식을 갖고 마련한 전시는 구상 회화의 여러 양상을 보여준다.

서울 종로구 일민미술관의 ‘히스테리아: 동시대 리얼리즘 회화’전은 구상 회화를 다루는 국내 작가들의 작품을 선보인다. 위쪽 
사진부터 최진욱 ‘그림의 시작’(1990년), 정수정 ‘교미’(2021년), 이수경 ‘오, 장미여! 그러고는 달을 향해 힘차게 
뛰어 올랐어요’(2022년). 일민미술관 제공
서울 종로구 일민미술관의 ‘히스테리아: 동시대 리얼리즘 회화’전은 구상 회화를 다루는 국내 작가들의 작품을 선보인다. 위쪽 사진부터 최진욱 ‘그림의 시작’(1990년), 정수정 ‘교미’(2021년), 이수경 ‘오, 장미여! 그러고는 달을 향해 힘차게 뛰어 올랐어요’(2022년). 일민미술관 제공
1층 전시장의 문을 여는 것은 최진욱의 작품 ‘그림의 시작’(1990년)과 ‘자화상’(1992년)이다. 윤 팀장은 “최 작가는 작품 소재를 주변에서 찾기 위해 애쓴다”며 “가장 가까운 곳인 작업실을 담은 ‘그림의 시작’부터 거리를 그린 ‘하교길2’를 통해 작가가 사회로 나아가는 모습을 가늠해 볼 수 있다”고 했다.

2층 전시실 가장 안쪽 방에는 이수경 작가의 회화 작품이 걸려 있다. 이 작가는 깨진 도자 파편을 이어 붙인 ‘번역된 도자기’로 유명하다. 처음에 자신의 대표작인 도자기가 아닌 회화 작품을 전시한다는 제안을 받아 작가는 망설였다고 한다. 그러나 2008년 작품부터 지난해 그린 것까지 6개 작품이 전시돼 이 작가의 색다른 면모를 살펴볼 수 있다.

전시에서는 노상호 손현선 이재석 임노식 정수정 함성주 김민희 조효리 김혜원 등 젊은 작가의 작품도 함께 배치했다. 이들의 작품에서는 현실 속 풍경을 넘어 온라인이나 대중매체에서 차용한 이미지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양상이 두드러진다. 온라인의 밈(meme)을 집착에 가까울 만큼 많은 양을 수집한 뒤 섞어 작품에 활용하거나(노상호), 게임과 애니메이션 분위기가 나는 이미지와 전통 회화 방식을 엮는 식(정수정)이다.

국제 미술사에서는 추상과 구상의 구분을 넘어 1980년대 형상성을 회복한 ‘신표현주의’가 등장했다. 현재 미술의 양상은 회화적 기법보다는 다양한 사회·정치적 이슈와 맞물려 전개되고 있다. ‘히스테리아’전은 구상 회화에서 그리는 방식이나 소재에 집중한 것이 두드러진다.

윤 팀장은 “작품들을 보면 작가들이 그린 대상들 중 어느 하나가 중요하다고 여기는 것이 아니라 모두 균등하게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고 했다. 그는 “이번 전시를 준비하며 참여 작가들이 중견 작가임에도 공공미술관 전시가 많지 않았다는 사실에 놀랐다”며 “그만큼 이들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했다. 이에 그동안 논의되지 못한 회화 담론을 살필 기회를 마련하려 했다는 것이다.

전시와 관련된 프로그램도 펼쳐진다. 5월에는 인문학 프로그램 ‘역자후기26’과 ‘아티스트 토크’가 열린다. 전시 기간 중 매주 수·일요일 오후 3시에는 현장 신청자를 대상으로 도슨트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6월 25일까지. 5000∼7000원.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구상회화#일민미술관#히스테리아#동시대 리얼리즘 회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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