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최대 수용소서 태어난 아기 73살 돼서야 “신원조회 걱정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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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년 3월 31일 17시 4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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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옥씨가 31일 오후 제주4·3평화기념관 대강당에서 열린 제주4·3 제75주년 증언본풀이마당에서 증언하고 있다. 2023.3.31/뉴스1
강상옥씨가 31일 오후 제주4·3평화기념관 대강당에서 열린 제주4·3 제75주년 증언본풀이마당에서 증언하고 있다. 2023.3.31/뉴스1
31일 오후 제주4·3평화기념관 대강당에서 제주4·3 제75주년 증언본풀이마당이 열리고 있다. 2023.3.31/뉴스1
31일 오후 제주4·3평화기념관 대강당에서 제주4·3 제75주년 증언본풀이마당이 열리고 있다. 2023.3.31/뉴스1
제주4·3 사건 당시 최대 수용소에서 태어난 아기는 4·3이 지나온 세월만큼 나이를 먹었다.

평생을 연좌제 속에 살아온 그는 73살이던 2021년 아버지가 재심을 통해 무죄를 선고 받은 이후에야 “이제야 정말로 신원조회를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소회를 남겼다.

강상옥씨(75)는 31일 제주4·3평화기념관 대강당에서 열린 제주4·3증언본풀이마당에서 4·3의 역사와 함께한 75년 세월을 허심탄회하게 털어놨다.

강씨는 1949년 6월 주정공장에서 태어났다. 주정공장은 일제강점기 시절 도민을 수탈했던 장소였고, 공장 부속창고는 4·3 당시 최대 민간인 수용소로 쓰였다.

강씨 어머니는 4·3 광풍 속에 남편 강학반씨(당시 24세)와 함께 주정공장으로 끌려갔다. 강씨를 품은 만삭 상태였다.

“수용된 지 얼마 안 되고 내가 태어났지. 그런데 아버지는 갇혀 있고, 태어난 아기는 보고 싶으니 옆쪽에 있는 수형자들한테 자리 한 번만 바꿔달라고 사정하면서 몇십미터 떨어진 어머니한테까지 와서 나를 보고 간 거야.”

고초를 직감한 강씨 아버지는 아내에게 “나가면 아이들 잘 키우고, 고생해라”는 말을 남긴 채 군사재판에서 무기형을 받고 마포형무소로 끌려갔다.

아버지는 한국전쟁이 발발한 뒤 형무소 문을 연 북한군에 의해 의용군으로 끌려갔다. 최전선에서 살아남은 그의 아버지는 10년의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고향 제주로 돌아왔고, 어느새 중학생이 된 강씨와 재회한 지 3년 여만에 세상을 떠났다. 강씨는 “아버지는 돌아가실 때까지 관공서도 한 번 안가고, 어쩌다 경찰이라도 마주치면 곧장 도망가고 그렇게 살았다”고 떠올렸다.

그의 탄생부터 드리웠던 4·3의 그림자는 수십년의 세월이 흘러도 좀처럼 떨어지지 않았다.

농사를 짓던 그는 서른살이 되던 해 ‘도시에서 살아보자’는 소박한 꿈을 품고 방송국에 지원했다. 그러나 돌아온 답은 “신원조회를 했는데 문제가 있다”는 말이었다.

“여러 경로로 알아보니 신원조회를 하면 아버지가 반공법으로 무기형을 받았고, 형무소에서 옥사한 걸로 기록돼 있었다. 내가 연좌제에 걸릴 거라 생각이나 했나. 그런데 걸리고 나니 동생이나 자식들한테까지 문제가 있겠다 싶었지.”

연좌제의 덫에 걸린 그는 경찰서 보안심의 위원회에 아버지의 군복무 기록 등을 제출해 승인을 받고 나서야 어렵사리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었다고 기억했다.

그의 아버지는 2021년 군법회의 수형인에 대한 재심을 통해 무죄를 선고 받았다.

강씨는 “아버지는 입에 올리지도 못한 4·3 이야기를 이곳에서 할 수 있어 여한이 없다”며 “이제 정말 신원조회니 뭐니 하는 걸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웃어보였다.

‘4.3증언본풀이마당’은 2002년부터 4·3체험자들이 겪은 이야기를 풀어내는 마당으로 마련됐다. 4·3경험세대들의 체험담을 후세대들에게 알려주고, 체험자들에게는 당시의 경험을 이야기함으로써 수십년간 마음 속에 응어리졌던 억눌림을 해소하기 위한 목적이다.

한편 이날 열린 스물두번째 증언본풀이마당은 ‘4·3 재심과 연좌제-창창한 꿈마저 빼앗겨수다’는 주제로 진행됐다. 강씨 외에도 아버지의 재심을 통해 명예회복을 이룬 양성홍씨(76), 남편들까지 연좌제 피해를 당해야 했던 오희숙(86)·계숙(79)·기숙씨(77) 자매가 발언자로 나섰다.

(제주=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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