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R과 만난 현대무용…경계를 허물고 연결을 말하다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2월 19일 13시 39분


코멘트

VR 기술 융합 공연 ‘이십삼각삼각’

‘이십삼각삼각’의 관객이 보는 VR(가상현실) 영상 속 한 장면. 무용수 이현석이 가상의 방에서 안무를 선보이고 있다. 국립현대무용단 제공


VR(가상현실) 기기를 착용하자 외딴 곳에 홀로 떨어진 것 같았다. 정처 없이 걷다 작은 집에 들어섰다. 창문 하나 달린 원룸이다. 시야각을 보아하니 가상의 나는 방바닥에 앉아있는 듯하다. 현실의 나도 덩달아 무대 바닥에 주저앉는다. 눈앞에 널브러진 과자 봉지와 옷가지 사이로 가상의 무용수가 등장한다. 그는 나와 부딪칠 듯 부딪치지 않으며 홀로 춤을 춘다. 고립된 느낌은 덜하지만 만질 수 없으니 온기는 느낄 수 없다.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에서 국립현대무용단이 24일부터 선보이는 VR 기술 융합 공연 ‘이십삼각삼각’의 일부다. 총 3막으로 구성된 공연 중 2막에서 관객 50명은 VR 기기를 쓰고 가상현실을 체험한다. 지난해 초연이 화제를 모으며 기존 4회로 예정됐던 올해 공연은 예매 시작 당일 전석 매진돼 총 5회로 늘렸다.

‘이십삼각삼각’은 관객과 무대 간 경계를 없앤 것이 특징. 공연이 열리는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 내 1층 객석을 전부 치우고 관객 50명이 무용수와 상호작용한다. 국립현대무용단 제공


‘이십삼각삼각’은 고립된 사람들이 연결되는 과정에 초점을 맞춘다. 팬데믹으로 경험한 상호연결의 의미를 표현하고자 관객-무용수, 무대-객석, 현실-가상 간 경계를 허문 것이 특징. 공연은 무대 중앙에 선 관객들을 무용수 8명이 둘러싸며 춤을 추는 것으로 시작한다. 2막 VR 영상에서 독무를 추던 무용수들은 관객과 3막에서 ‘진짜로’ 만난다. 나란히 앉아 눈을 맞추거나 가볍게 손을 잡고 걸으며 누군가와 연결될 때의 온기를 느끼게 해준다.

16일 리허설 현장을 찾아 송주원 안무가(50)를 만났다. 송 안무가는 도시 곳곳에 투영된 존재의 의미를 현대무용과 영상, 기술과 얽어 풀어내는 아티스트다. 그에게 VR 기술은 가상과 현실 간 경계를 지우는 단순 장치에 그치지 않는다. 송 안무가는 “VR 기술은 사람들이 통상 정면(180도)으로만 보는 세상을 360도로 보여주기 위함”이라며 “팬데믹은 이 세상이 사실 하나로 연결돼있으며 온라인 소통만으로는 고립감이 해소될 수 없음을 깨닫게 했다”고 말했다.

경계를 허물고자 전통적인 무대도 없앴다. 관객이 정면을 바라보도록 만들어진 무대 대신 자유소극장 1층 객석을 전부 치워 관객과 무용수 사이 장애물 하나 없는 공간을 만든 것. 관객은 텅 빈 공간에 앉거나 걸어 다니며 작품 속에 스며들게 된다. 이는 3부 엔딩에서 절정에 이른다. 조명이 꺼진 무대에 다같이 누워 정이십면체 모양 천장을 바라본다. 송 안무가는 “불안하고 고립된 삼각형 같은 순간들을 지나 원형의 세계에 이르는 것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이십삼각삼각’ 공연을 이끈 송주원 안무가(왼쪽)가 VR 영상 제작을 위한 촬영 작업을 하고 있다. 국립현대무용단 제공
2014년부터 영상작업을 지속한 그에게도 각종 경계를 넘나드는 ‘이십삼각삼각’은 쉽지 않은 작품이었다. 초연대비 VR 기기와 관객 수는 늘었고 무대 면적은 줄었다. 초연에서 20대였던 VR 기기는 올해 50대로 늘었다. 그는 “무대 위 안무뿐 아니라 VR 영상에서 무용수들이 어떻게 춤출 것인지, 카메라는 그에 맞춰 어떻게 움직일 것인지 등을 정교하게 계획해야 했다”며 “특히 바뀐 극장 환경에 맞춰 관객을 무대에 세우기 위해 공간 동선을 새로 짜는 것이 까다로웠다”고 말했다.

안무는 무용수 8명 개인의 경험을 바탕으로 구축했다. 살면서 고립을 느꼈던 순간을 이야기한 후 이를 토대로 캐릭터와 동작을 구성했다. 무용수별로 주어진 가상의 방 8개 역시 캐릭터에 맞춰 디자인됐다. 실제 원룸 한 곳을 빌려 무대 디자이너가 이불, 커튼 등을 매번 바꿔 꾸민 뒤 촬영했다. 송 안무가는 “배우와 제작진 도움 없이는 완성하지 못했을 어려운 작품”이라며 “향후 더 많은 관객에게, 더 오랜 기간 공연을 선보이고 싶다”고 말했다. 2월 24일~26일, 3만 원.

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