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끝나지 않는 전쟁… 이유는 따로 있다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2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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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소포비아’와 ‘안보위협’의 대결
현 상황, 美 여론전 밖에서 읽어야
◇우크라이나 전쟁과 신세계 질서/이해영 지음/336쪽·1만8000원·사계절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지 1년이 다 돼 가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선과 악은 어느 쪽일까.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미국을 포함한 서방세계는 선이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악일까. 한신대 국제관계학부 교수인 저자는 다분히 표면적으로 인식되고 있는 이번 전쟁 이면의 배경을 추적한다.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해 우리 귀에 익숙한 설명은 ‘영토 야욕에 눈이 먼 러시아가 극악무도하게 국제법을 위반하고 우크라이나의 수많은 생명을 앗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전쟁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기 전에 우크라이나가 먼저 일으켰다고 저자는 반박한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2021년 2월 친러시아 세력이 장악한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지역에 먼저 대규모 병력을 동원했다. 그는 또 지난해 2월 24일 러시아가 침공하기에 앞서 2월 16일 돈바스 지역에 포격을 시작했다. 유럽안보협력기구에 따르면 우크라이나는 지난해 2월 16일부터 7일 동안 7310회에 걸쳐 돈바스 지역을 포격했다. 저자는 국제법을 위반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도 지탄받아야 하지만 돈바스 지역의 자결권 또한 국제법상 인정받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는 1990년 독일 통일에 대한 동의를 소련에 구하면서 “나토의 관할권이 동쪽으로 단 1인치라도 확장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하지만 소련 붕괴 후 나토는 회원국을 늘려가며 동쪽으로 계속 확장했다. 서방의 오랜 루소포비아(러시아 혐오)가 반영된 결과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역시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 추진을 안보 위협이라고 인식하고 벌인 일이라는 것이다.

이 같은 사실은 좀처럼 부각되지 않는다고 저자는 말한다. 젤렌스키 대통령이 지난해 2월 돈바스 지역을 포격했을 때도 서방 주요 언론들은 침묵했다. 이는 현대 ‘하이브리드 전쟁’의 일환으로 해석할 수 있다. 전쟁은 총성이 울리는 전장에서만 일어나지 않는다. 경제 제재와 여론전, 선전전, 심리전이 복합적으로 벌어진다. 러시아 비난 일변도의 여론은 미국과 서방세계의 이해관계에 맞춰진 선전의 결과라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우크라이나 문제는 방법이 없어서 해결되지 않는 것이 아니다. 그것이 미국이 원하는 정답이 아니기 때문이다. 미국이 원하는 정답은 우크라이나의 평화가 아니라 우크라이나인이 죽도록 싸워 러시아를 약화시키는 것이다.”

미국 중심의 글로벌 단극 체제에 대한 러시아의 반발은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러시아와 중국의 연대로 이어지고 있다.

저자의 이 같은 분석이 수많은 생명을 앗아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정당화하지는 않는다. 미국 중심의 시각에서 벗어나 우크라이나 전쟁에 관해 새로운 시각을 접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읽을 만하다.


정성택 기자 neone@donga.com
#끝나지 않는 전쟁#안보위협#루소포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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