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福슬福슬’ 명품 입은 흑토끼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1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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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제의 알티플라노 ‘토끼의 해’ 리미티드 에디션
피아제의 알티플라노 ‘토끼의 해’ 리미티드 에디션
《2023년은 검은 토끼의 해, 계묘년(癸卯年)이다.

새해를 맞아 유행에 민감한 패션 업계에서 토끼는 가장 핫한 캐릭터가 됐다.

토끼는 큰 귀와 짧은 꼬리, 깡충깡충 뛰어다니는 특징 때문에

귀엽고 친숙한 캐릭터로 꾸준한 사랑을 받아 왔다.

강한 번식력으로 다산과 풍요의 상징이 되기도 했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시계를 든 토끼나 피터래빗,

미피 등 동심 세계는 물론이고 플레이보이 잡지의 나비넥타이를 맨 버니까지

다양한 캐릭터 산업에 활용됐다.

설화나 속담에서 토끼는 작고 약해 보이지만

꾀가 많고 영리한 동물로 자주 등장했다.

‘별주부전’에서 자신의 간을 구하러 온 자라에게

간을 빼놓고 다닌다는 기지를 발휘해 죽을 뻔한 위기에서 벗어났다.

토끼는 숨을 수 있는 세 개의 굴을 파 놓는다는 뜻의 ‘교토삼굴’이란

고사성어는 위험이 닥치기 전 미리 준비하는 지혜로운 면모를 나타낸다.

경기 침체라는 암초를 만난 패션 업계가 토끼를 주목하는 또 다른 이유다.

불황으로 위축된 소비 심리를 전환시키고

이 위기 또한 극복할 수 있다는 희망의 캐릭터로 손색이 없다.》


아시아 시장 정조준 글로벌 명품 브랜드… ‘토끼 마케팅’


검은 토끼의 해를 맞아 세계적인 명품 브랜드들이 일제히 ‘토끼 마케팅’에 나서고 있다. 비정규 시즌 유행에 따라 제품 가짓수를 줄여 작은 규모로 발표하는 ‘캡슐 컬렉션’ 형태다.

구찌의 래빗 브로치
구찌의 래빗 브로치
이탈리아 명품 브랜드 구찌는 지혜, 건강, 장수를 상징하는 토끼 모티브를 재치 있게 담아낸 ‘구찌 래빗’ 캡슐 컬렉션을 선보였다. 구찌는 지난해에도 호랑이해를 기념한 타이거 컬렉션을 선보였는데 당시 실제 호랑이가 등장하는 광고로 인해 동물 보호 단체들로부터 “멸종 위기 동물을 상품화했다”는 비판을 받은 바 있다. 이를 의식한 듯 올해는 공식 홈페이지에 “독립 인증기관(뷰로 베리타스)이 광고 캠페인 촬영을 직접 모니터링하고 촬영에 등장하는 모든 동물들이 해를 입지 않았음을 확인했다”고 밝히는 등 동물복지에 더욱 신경 쓴 모습이다. 이번 컬렉션에서는 토끼 귀를 연상시키는 보 장식의 힐과 토끼 문양이 들어간 로퍼 등 신발부터 핸드백, 주얼리, 액세서리까지 다양한 제품을 통해 MZ세대(밀레니얼+Z세대) 감성을 효과적으로 표현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디올
프랑스 명품 브랜드 디올은 BTS의 무대 의상을 담당하기도 했던 유명 디자이너 킴 존스와 캘리포니아 패션 브랜드 ERL의 엘리 러셀 리네츠가 콜라보한 ‘디올 루나’ 캡슐 컬렉션을 선보였다. 토끼를 ERL 특유의 감성으로 담아내 마치 동화 속에 들어온 듯한 분위기가 특징이다. 빨간색 바탕에 하얗고 복슬복슬한 질감으로 귀여우면서도 정열적인 느낌을 자아낸다.

버버리 래빗 비스코스 울 블렌드 자카드 카디건·펜슬 스커트
버버리 래빗 비스코스 울 블렌드 자카드 카디건·펜슬 스커트
영국 브랜드 버버리도 토끼해를 맞아 가방과 의류 등에 토끼 문양을 넣었다. 토끼들이 서로를 등지고 앉아 하트 모양으로 귀를 모은 패턴과 브랜드 설립자 토머스 버버리의 이니셜인 TB 로고 위에 토끼를 겹친 유쾌한 디자인이 눈길을 끌었다.

스페인 브랜드 로에베는 기존 인기 가방인 ‘버니백’에 매듭 장식으로 유대감을 표현한 제품을 내놨다. 가방 위 부드럽게 늘어지는 가죽으로 토끼 귀를 형상화하고 토끼의 둥근 꼬리가 연상되는 귀여운 폼 장식 등을 통해 입체감을 높였다. 가방 외에도 토끼 모양의 주사위와 캔들, 토끼 종이접기 세트까지 준비했다.

서구 명품 브랜드들, 아시아 겨냥한 설날 12간지 마케팅


서양 문화권에 뿌리를 둔 글로벌 명품 업체들이 새해 동양 풍습 기반의 동물을 모티브로 한 상품을 내놓는이유는 중국 등 아시아 시장의 존재감 때문이다. 상징적 동물들로 새로운 해를 기념하는 동아시아의 12간지 문화를 패션에 입혀 현지 마케팅을 강화함과 동시에, 봄여름(SS) 시즌이 시작되기 전 비수기인 1월 설 명절 특수로 새로운 쇼핑 수요를 창출하겠다는 전략이다.

MCM Park 비세토스 래빗 드로우스트링 백
MCM Park 비세토스 래빗 드로우스트링 백
글로벌 컨설팅업체 베인앤드컴퍼니는 2030년까지 세계 명품 시장에서 중국 소비자의 비율이 39%로 확대될 것으로 전망했다. 중국은 지난해 제로 코로나 방역 조치 영향으로 성장세가 주춤했지만 여전히 미국 유럽과 함께 명품의 최대 판매처다. 여기에 음력설 문화를 공유하는 한국과 일본 등 아시아권 시장을 합하면 전 세계 명품 시장에서 가장 큰 규모가 된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의 1인당 명품 소비액은 325달러로 2021년보다 24% 증가했다. 중국의 1인당 55달러, 미국의 280달러보다 많다. 돈 많은 중국 소비자들이 선호하는 일본 시장 역시 최근 엔화 약세로 관심도가 상승하고 있다.

MCM Park 비세토스 래빗 드로우스트링 백
MCM Park 비세토스 래빗 드로우스트링 백
MCM 루나 뉴 이어 스타크 사이드 스터드 비세토스 백팩
MCM 루나 뉴 이어 스타크 사이드 스터드 비세토스 백팩
매스티지(대중 명품) 브랜드들은 보다 과감하고 개성 넘치는 토끼 디자인을 선보이며 희소성과 색다름을 중시하는 MZ세대를 정면 겨냥했다. MCM은 자체 고안한 장난꾸러기 토끼 캐릭터 ‘하루’를 반영한 업사이클링 한정판 캡슐 에디션을 출시했다. 지난해 타이거 컬렉션 반응이 좋아 올해도 12간지 아이템을 내놓은 것. MCM의 상징인 코냑 비세토스 패턴이 들어간 스테디셀러 제품에 하루를 넣어 새로운 감성을 연출했다.

토리버치 Carrot Key Fob
토리버치 Carrot Key Fob
토리버치 Plush Rabbit Good Luck Trainer
토리버치 Plush Rabbit Good Luck Trainer
삼성물산 패션부문이 운영하는 브랜드 토리버치 역시 특별 제작한 토끼 캐릭터 ‘리바’를 포인트로 내세웠다. 행운과 기쁨을 상징하는 빨간색 바탕에 토끼를 모자이크로 배치해 젊은층 취향을 공략했다. 카디건, 버킷백, 스니커즈뿐 아니라 토끼 하면 떠오르는 당근을 형상화한 액세서리까지 토끼 마케팅에 적극 나서고 있다. 멀버리는 유명 토끼 캐릭터 ‘미피’와 협업해 키링, 여행용 액세서리, 가죽 소품, 가방 등에 미피의 모습을 새겨 넣었다.

멀버리×미피 미니 베이스워터 론 그린 스몰 클래식 그레인
멀버리×미피 미니 베이스워터 론 그린 스몰 클래식 그레인


스위스 럭셔리 시계에서도 매년 한정판 동물 시계 선보여


명품 시계 브랜드들에도 시간의 흐름과 관련된 12간지 문화는 매력적인 마케팅 요소다. 쇼파드, 피아제, 바쉐론 콘스탄틴 등 스위스 럭셔리 브랜드들은 올해도 어김없이 서로 다른 특색을 가진 토끼 모티브 시계를 선보였다.

수공예 기술이 돋보이는 쇼파드의 L.U.C XP 우루시 ‘토끼의 해’ 타임피스.
수공예 기술이 돋보이는 쇼파드의 L.U.C XP 우루시 ‘토끼의 해’ 타임피스.
매년 음력 12간지를 기념하는 럭셔리 시계 시리즈를 선보이고 있는 쇼파드는 섬세한 일본식 수공예 기술로 가공한 토끼 시계를 선보였다. 이름은 L.U.C XP 우루시 토끼의 해 타임피스. 일본의 옻칠 공예 장인들이 제작한 다이얼에는 그레이와 레드 컬러의 토끼 두 마리가 보름달이 뜬 풍경에서 노닐고 있다. 날카로운 눈과 쫑긋 선 귀를 가진 토끼들은 성공과 성취를 상징하는 아시아 토종 관목 달빛 올리브 나무 풍경을 배경으로 활력 있게 묘사됐다.

화려한 장식의 주얼리와 2mm 두께의 초박형 기계식 손목시계로 유명한 피아제는 두 마리 토끼를 그려 넣은 알티플라노 시계를 공개했다. 피아제가 토끼 시계를 만들기 위해 선택한 방법은 그랑 푀 클루아조네 에나멜 기법이다. 그랑 푀는 금속판 위에 곱게 간 에나멜 가루를 뿌린 뒤 고온의 가마에 반복해서 구워내는 기법을 뜻한다. 클루아조네는 가느다란 금실로 윤곽선을 만들고 그 안에 도료를 채워 넣는 방식으로 고급스럽고 우아한 멋이 일품이다. 에나멜링 장인 아니타 포르셰는 다이아몬드 78개를 세팅한 직경 38mm의 좁은 케이스 안에서 벨벳처럼 부드러운 토끼의 피부를 은은하게 구현해냈다. 38점 한정 제작됐다.

바쉐론 콘스탄틴의 메티에 다르 더 레전드 오브 차이니스 조디악
바쉐론 콘스탄틴의 메티에 다르 더 레전드 오브 차이니스 조디악
바쉐론 콘스탄틴은 메티에 다르 더 레전드 오브 차이니스 조디악 시리즈에 플래티넘과 핑크골드 버전으로 제작된 2종의 토끼 시계를 추가했다. 다이얼 중앙 양각으로 정교하게 조각된 토끼 주변으로 중국 도상학에서 영감을 받은 나뭇잎 장식이 새겨져 있다. 파랗고 붉은 배경은 그랑 푀 에나멜 기법으로 구현했고 4개의 작은 디스크는 각각 시, 분, 날짜, 요일을 나타낸다. 버전당 9점씩 한정 출시한다.

바쉐론 콘스탄틴의 메티에 다르 더 레전드 오브 차이니스 조디악
바쉐론 콘스탄틴의 메티에 다르 더 레전드 오브 차이니스 조디악
한 명품업계 관계자는 “한국과 중국 등 아시아 명품 시장의 규모가 커지면서 현지 상황을 고려한 마케팅이 중요해지고 있다”며 “지난해 상징인 호랑이와 달리 귀엽고 사랑스러운 모양의 토끼 아이템은 남녀노소 누구나 부담 없이 활용할 수 있어 찾는 고객이 더 늘었다”고 말했다.

신동진 기자 shin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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