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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문화

남의 집 에어컨을 닦다가… 반짝반짝 詩를 얻다

입력 2022-07-06 03:00업데이트 2022-07-06 0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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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전청소업체 운영 조수형 시인
다양한 사연 모은 에세이집
‘마음을 쓰는 일, 몸을 쓰는 시’ 펴내
“현실에서 만난 시가 더 공감 얻어”
에어컨을 청소하는 조수형 시인. 그는 “가전제품을 깨끗이 청소하고 고객의 마음까지 안마해드리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했다. 조수형 시인 제공
“냉장고 선반을 욕실에서 닦으면 어떻게 해요?”

조수형 시인(51)은 냉장고 출장 청소를 하다 고객에게 이런 말을 들었다. 냉장고는 ‘총체적 난국’이었다. 음식 찌꺼기가 젤리처럼 굳고, 검은 때가 진득하게 달라붙어 있었다. 선반의 묵은 얼룩을 지우려 욕실에서 세척을 했는데 고객이 화를 낸 것이다.

고객은 조 시인이 욕실에서 청소하는 장면을 말없이 지켜보다 나중에야 이를 지적했다. 조 시인은 고객의 요구대로 무료로 욕실 청소까지 했다. 고객은 “현금이 없으니 냉장고 청소비는 계좌로 송금하겠다”고 했다. 화가 치밀었으나 참았다. 먹고사는 일은 다 구차하니까. 하지만 고객은 돈을 보내지 않았다. 최근 조 시인이 펴낸 에세이 ‘마음을 쓰는 일, 몸을 쓰는 시’(눌민·사진)에 담긴 일화다.

조 시인은 3일 동아일보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한국은 육체노동을 천시하는 이가 많아 고객과 작업자 사이에 ‘갑을 관계’가 형성되는 경우가 흔하다”며 “타인의 집 안으로 들어가서 일하는 출장 청소는 육체노동이자 감정노동”이라고 했다. 그는 2015년부터 아내와 함께 가전제품청소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냉장고, 에어컨, 세탁기 등 가전제품을 청소합니다. 2인 1조 작업 기준으로 2∼4시간이 걸리고 10만 원 안팎을 받습니다. 청소가 끝난 뒤 냉장고가 기울어졌다고 우기거나, 작업하러 들어가자 집에 있는 에어컨을 꺼버리는 고객을 만날 때면 몸을 쓰는 일이 왜 천대받는지 되묻게 되죠.”

‘진상 고객’만 만나는 건 아니다. 세탁기를 청소하던 그는 찌꺼기 거름망에서 금목걸이 조각을 찾았다. 조각을 보고 고객이 털어놓은 건 남편과의 추억이었다. 세상을 떠나기 전 드럼세탁기와 목걸이를 선물했던 남편과 고객의 사연을 듣고 그는 시를 썼다. ‘사라졌던 노란 18금 실 목걸이/물속 어딘가를 떠돌다/아직은 다 빨지 못한 그이를/빨래찌꺼기 속에서 데려온다’(‘아직…’ 중)

“고객의 속살과도 같은 가전제품을 청소하다 보면 시가 되는 이야기를 만나기도 하죠. 가만히 앉아서 쓰는 글보다 현실에서 건져 올린 시가 사람들의 공감을 더 얻지 않을까요. 그런 마음으로 청소하고, 시 씁니다.”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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