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리저리 내몰려도 무너져선 안되는 삶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6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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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석순 단편소설집 ‘모피방’

모피방. 기본 골조 외에 아무것도 없는 방을 말한다. 창문도, 전등도, 문턱도, 심지어 초인종도 없다. 모피방은 기본 자재를 뜯어내고 고급스럽게 인테리어를 하려는 부자들에게 인기를 끌다가 점차 가난한 사람들이 찾기 시작했다. 아무 옵션도 안 들어가 싸게 매매되기 때문이다. 단편소설집 ‘모피방’(민음사)의 저자 전석순 작가(39·사진)는 1일 전화 인터뷰에서 “모피방은 원래 모든 것이 다 될 수 있는 방이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모든 가능성이 다 닫혀있는 사람들이 선택하는 방이 됐다”고 말했다.

지난달 20일 출간된 ‘모피방’의 주인공들 역시 선택권이 없어 열악한 공간으로 밀려난 빈곤층이다. 단칸방에서 월세, 전세로 가기 위해 수십 년간 위험한 건물 철거 현장에서 일한 가장을 다룬 ‘수납의 기초’부터, 임종을 앞둔 어머니를 돌보기 위해 인근 호텔방에서 생활하는 부부를 다룬 ‘때 아닌 꽃’까지. “방이라고 볼 수 없는 곳으로까지 내몰리는 사람들이 많더라고요. 그들을 주인공으로 삼고 싶었어요.”

표제작인 ‘모피방’은 아버지가 평생 일해온 세탁소가 시청의 부지 확장으로 철거되는 상황을 겪은 저자의 경험이 녹아 있다. 주인공은 세탁소 철거를 원치 않는 아버지와, 아기가 태어나기 전에 조금이라도 싸고 넓은 모피방으로 이사 가자는 아내 사이에서 신음한다.

“주인공은 아버지와 아내 사이에서 혼란스럽지만 무너져서는 안 돼요. 간신히 균형을 맞추려는 감정을 세탁소와 모피방을 통해 표현했죠. 그 아슬아슬한 균형을 우리 모두 경험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경제적 문제로 좁은 집으로 이사를 가야 하거나, 삶의 터전이 재개발로 철거되는 상황을 많은 사람들이 겪고 있으니까요.”



김재희 기자 jetti@donga.com
#모피방#전석순#재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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