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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문화

은퇴 후 취미·전공 살려…베이비붐 세대, ‘제2의 업’ 찾다

입력 2022-05-22 13:18업데이트 2022-05-22 1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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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년퇴직, 갑작스런 회사의 퇴사 통보, 사업의 부도…. 평생 몸담았던 일에서 물러나야 하는 순간은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2020년을 기점으로 고령층(65세 이상)에 진입하기 시작한 베이비붐 세대(1955~1963년)는 젊음을 바쳤던 일을 뒤로하고 ‘제2의 삶’을 개척해야 하는 과제와 마주했다. 20일 출간된 ‘은퇴하고 즐거운 일을 시작했다’(동녘라이프)는 퇴직 후 새로운 직업을 찾은 아홉 명의 베이비붐 세대의 이야기를 담았다.

삼성물산에서 정년퇴직해 와인칼럼니스트 겸 와인바 사장이 된 김욱성 씨(65), 한진중공업 필리핀 지사장에서 청소년상담가가 된 문두식 씨(69), 중소기업에 다니다 귀농해 도시농부가 된 김재광 씨(68)를 20일 전화로 인터뷰했다.

와인칼럼니스트 겸 와인바 사장이 된 김욱성 씨(65)


김욱성 씨는 취미로 즐겼던 와인이 두 번째 직업이 됐다. 삼성물산에 입사해 신라호텔 해외영업·마케팅 팀장을 맡은 그는 국가 행사 케이터링 등을 진행하며 본격적으로 와인을 공부했다. 사내 와인동호회를 만들었고, 퇴근 후 프랑스어학원을 다니면서 프랑스어능력시험(DELF) 자격증도 취득했다. 그가 읽은 와인관련 서적은 30권이 넘는다. 2012년 정년퇴직한 후 2015년 국제와인기구와 몽펠리에대학에서 운영하는 와인 석사과정에 합격해 프랑스 파리로 떠났다. 그의 나이 58세 때 일이었다. 16개월 동안 25개국 400개 이상의 와이너리를 돌았다. 그는 “20여 명의 동기들은 프랑스에서 와인을 가업으로 이어받는 집안의 20대 중반 자제들이었다. 한국에서 온 환갑의 아저씨는 나 혼자였다”고 회상했다.

유학생활을 통해 전문성을 쌓은 그는 귀국 후 2018년 서울 성동구 ‘서울숲 와인아울렛’에서 부사장으로 일하면서 고객에게 와인을 판매하고, 정규 와인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지난해에는 딸, 사위와 힘을 합쳐 동네에 와인바를 열었다. 딸의 권유로 시작한 ‘김박사의 와인랩’이라는 유튜브 채널은 구독자 2만 명을 넘었다. 그는 취미가 업이 되기 위해 ‘1만 시간의 법칙’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김 씨는 “취미가 미래의 업이 되려면 적어도 하루에 1시간씩 10년 동안은 제대로 공부해야 한다. 나에게 흥미 있는 주제를 잘 잡아서 집중적으로 파고들어야 하고, 상당한 시간과 노력 투자, 전문적인 교육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청소년상담가 문두식 씨(69)



한진중공업에 입사해 한진도시가스 대표이사까지 지낸 문두식 씨는 심리학 전공을 살려 청소년 상담사로 변신했다. 직장인으로서 갈 수 있는 가장 높은 곳까지 갔지만, 한진중공업 필리핀 지사장 시절 회사로부터 갑작스럽게 “1년 뒤 나가달라”는 통보를 받았다. 그는 회사에서 준 1년의 유예기간 동안 퇴직 후 할 수 있는 일을 찾던 중 여성가족부가 청소년상담사자격증을 발급하는 것을 알게 됐다. 대학시절 심리학과에서 상담관련 공부를 했고, 심리학 전공이 자격증 시험 지원 요건이었기에 자신에게 맞는 영역이라 판단했다.

자격증을 딴 그는 의정부시 청소년 상담복지센터 상담사로 취업해 2011년부터 현재까지 약 300명의 청소년들을 상담했다. 58세의 나이에 두 번째로 갖게 된 직업이지만 실력을 연마하는데 소홀하지 않았다. 그는 청소년들과 더 잘 소통하고자 2015년 카톨릭대 상담심리대학원 아동심리상담학과 석사과정을 밟았다. 그는 “모든 정성을 다했는데 친구가 상담을 안받겠다며 거부할 때 ‘내가 뭘 잘못했지?’라는 고민이 찾아왔다. 내가 알고 있는 심리학 지식으로 한계가 있다고 느껴 대학원에 진학했다”고 말했다. 전문성을 쌓은 그는 청소년상담사 면접대비 수험서도 출간했다.

도시농부 김재광 씨(68)


염료를 만드는 중소기업에 다니던 김재광 씨는 2008년 은퇴 후 귀농했다. 직업뿐만 아니라 자신이 꿈꾸던 삶의 방식까지 고려한 선택이다. 은퇴하기 6년 전인 2002년 친구의 제안으로 전국귀농운동본부의 생태귀농학교를 다니며 작물재배법, 땅 임대방법 등 귀농에 대한 기본적인 내용들을 학습했다. 이후 귀촌을 하지 않더라도 수도권에서 여러 사람들과 함께 텃밭을 일구는 ‘공동체 농사’가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된 그는 도시농부의 길을 택했다. 현재 일산에서 55명의 사람들과 1200평 규모의 땅을 함께 일구고 있다. 지자체가 텃밭을 조성해 주민들에게 도심 속 친환경농업을 체험할 수 있도록 하는 ‘행복나눔텃밭’에서 도시텃밭활동가로도 일하고 있다. 매주 텃밭을 오는 주민들을 대상으로 작물재배방법을 가르친다.

그에게 귀농은 제2의 업이기 전에 삶 그 자체다. 그는 자신이 ‘작물농사’가 아니라 ‘사람농사’를 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는 “내가 직접 키운 건강한 먹거리를 나와 가족들이 함께 먹는다. 또 공동체 농사에서 함께 텃밭을 일구는 사람들과 소통을 한다”며 “마늘, 감자, 고구마 등 작물 별 공동체도 활성화돼 있고, 수도권에서도 ‘도시농업네트워크’가 활성화돼있어 귀농을 꿈꾸는 이라면 누구나 일상에서 소소하게 농사를 시작해볼 수 있다”고 말했다.

김재희 기자 j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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