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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문화

폭력 속 고군분투하는 난민들…동아프리카 역사를 새기다

입력 2022-05-20 10:27업데이트 2022-05-20 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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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 문학상’ 구르나 장편소설 3권 국내 동시출간
20세기 초 동아프리카 탄자니아의 가난한 작은 마을. 12세 소년 유수프는 갑자기 집을 떠난다. 유수프가 원한 건 아니었다. 호텔을 운영하던 유수프의 아버지는 사업수완이 없었다. 쌓여가는 빚 대신 아들을 상인에게 팔다시피 보낼 수밖에 없었던 것. 유수프는 낯선 마을에 살며 상인 아래에서 심부름꾼으로 산다. 그러던 어느 날 상인은 유수프를 밀수품 무역에 끌어들이는데…. 벼랑에 내몰린 소년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장편소설 ‘낙원’(1994년)의 이야기다.

지난해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탄자니아 출신 작가 압둘라자크 구르나의 장편소설 3권이 국내에 동시에 출간됐다. 지난해 10월 수상 당시 국내에 출간된 작품이 없었으니 국내 독자들은 7개월 만에 구르나의 작품을 읽을 수 있게 된 셈. 한국엔 동아프리카가 아직 낯선 만큼 작가의 생애와 역사를 이해하며 작품을 읽기를 권한다.

구르나는 1948년 동아프리카 잔지바르섬에서 태어났다. 잔지바르섬은 지배 세력이 자주 바뀐 탓에 아프리카, 아랍, 유럽 문명이 섞여있다. 특히 20세기 초 동아프리카엔 제국주의와 식민지 쟁탈전이 난무했다. 주민들은 살아남기 위해 무슨 일이든 해야만 했다. ‘낙원’의 주인공 유수프가 가난 때문에 낯선 이에게 팔려가고 밀수품 무역까지 하게 된 것처럼 말이다.

역사의 상흔은 ‘그후의 삶’(2020년)에도 짙게 묻어난다. 배경은 독일이 동아프리카 일대를 지배하던 1907년 탄자니아의 작은 해안 마을이다. 독일 군대는 반기를 든 원주민들을 진압한다. 마을을 불태우고 들판을 짓밟고 시체를 길가의 교수대에 매단다. 구르나는 이런 혼란 속에서 소년 일리아스가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처연하게 그린다. 폭력이 평범한 삶을 어떻게 짓밟는지 응시한다.

1964년 잔지바르섬엔 혁명이 일어났다. 이슬람에 대한 탄압이 특히 거세졌다. 무슬림인 구르나는 박해를 피해 영국으로 이주한다. 학생비자로 영국에 입국했지만 사실상 구르나는 난민이었다. 낯선 땅에서 살아남기 위해 병원 잡역부로 일하며 온갖 고생을 한 끝에 대학 교수가 됐다. 하지만 구르나는 언제나 자신을 이방인이라고 생각했다.

잔지바르섬 출신 남성 오마르가 런던 공항에 도착해 망명 의사를 밝히는 ‘바닷가에서’(2001년)는 구르나의 자서전처럼 느껴진다. 비자 없이 영국에 온 오마르는 우여곡절 끝에 동향 출신인 라티프를 만난다. 라티프는 오마르보다 30년 전에 영국에 난민으로 왔다. 두 사람의 집안은 잔지바르 혁명 때 원수가 된 사이였다. 그러나 이제 두 사람에게 남은 건 싸움이 아닌 화해다. 삶은 갈가리 찢겼지만 그건 역사의 소용돌이가 만든 비극이라는 것, 서로를 미워하는 것보다 중요한 건 상대를 이해하는 일이라고 구르나는 전한다.

“궁극적으로 글쓰기의 관심사는 인간의 삶이기 때문에, 결국 잔혹성과 사랑과 나약함이 그 주제가 됩니다. 악랄하게 지배하는 눈이 볼 수 없는 것을 보여주고, 명백하게 낮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이 다른 이들의 핍박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자긍심을 가질 수 있는지 보여주는 것이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그렇게 썼을 때 비로소, 어떤 아름다움이 나타납니다.”(노벨문학상 수상 연설문 중)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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