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 닥쳐도 어떤 감정 느낄지는 본인 선택…그림 통해 감정 깨워보세요”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3월 10일 13시 38분


코멘트
프랑스 인상주의 화가 오귀스트 르누아르는 ‘3B’, 즉 예쁜 사람(Beauty), 아기(Baby), 동물(Beast)을 즐겨 그렸다. 와인과 포도가 올려진 테이블 주위에서 남녀가 여유로이 대화를 나누고 있는 ‘선상파티의 오찬’, 턱시도와 드레스를 차려입은 이들이 함께 춤을 추는 ‘물랭 드 가레트의 무도회’ 등 그의 대표작들에는 가난이나 슬픔이 없다.

정작 르누아르의 삶은 여유와 행복과는 거리가 멀었다. 7일 만난 미술치료사이자 ‘마음챙김 미술관’(타인의사유)의 저자 김소울 씨(38)는 “르누아르는 끼니를 걱정할 정도로 궁핍했고, 그림은 잘 팔리지 않았으며 지원해주는 가족도 없었지만 행복하기를 택했다. 고난이 닥쳐도 어떤 감정을 느낄지는 본인의 선택과 의지라는 걸 보여준다”고 말했다. 12일 출간되는 책은 화가의 삶이 투영된 그림들을 통해 어떻게 자아를 실현하고, 타인과 더 건강한 관계를 만들 수 있는지 전한다.

김 씨가 석사에 진학했던 10여 년 전만 해도 미술치료는 비주류였다. 홍익대 미대를 나온 그가 미술치료를 공부하겠다고 하자 부모님은 반대했고, 미술치료연구소를 차릴 때 세무서 직원은 “누가 돈을 내고 미술치료를 하느냐”고 물었다. 김 씨는 클로드 모네의 그림을 보며 용기를 얻었다. 정교한 역사화가 주를 이뤘던 당시 빛과 그림자가 주는 인상을 표현한 ‘인상: 해돋이’를 보고 평론가들은 “붓질조차 서툰 아마추어의 그림”이라고 조롱했다. 이후 이 작품은 인상주의 시대를 열었다고 평가받았다. “사람들이 미술치료를 무시한다는 이유로 일찌감치 그만뒀다면 지금 제가 사람들과 그림을 통해 감정을 나누는 미술치료사가 될 수 있었을까요? 비판이 두렵더라도 익숙함에 안주하지 않고 계속 앞으로 나아가는데 모네의 그림이 큰 힘이 됐어요.”

김 씨는 독자들도 그림을 통해 지친 마음을 달래길 바란다. 그는 게르다 베게너의 그림들을 추천했다. 베게너는 세계 최초로 여성으로 성전환 수술을 한 릴리 엘베의 연인이었다.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이 심했던 사회적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베게너는 릴리를 있는 그대로 포용하는 것을 넘어 릴리를 뮤즈 삼아 그의 초상화를 화폭에 담았다.

“타인의 시선이 두려워 숨기는 내 진짜 모습을 있는 그대로 드러낼 단 한 명만 있으면 돼요. 나를 진심으로 지지해줄 단 한 명을 옆에 두는 것, 그리고 나 역시 누군가에게 그런 존재가 되어주는 것이 삶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임을 알았으면 합니다.”

화가의 삶을 알아야만 그림을 즐길 수 있는 건 아니다. 그는 “똑같은 그림이 어떻게 달리 보이는지를 통해 자신의 감정을 확인해보는 것”을 추천했다. 기분이 좋아지는 그림을 정하고 기분전환이 필요할 때마다 꺼내보는 것도 그림을 즐기는 방법이다.

“서른이 넘으면서 감정이 멈춰버린 것 같다고 털어놓는 내담자들이 많아요. 그건 내면을 들여다보지 않은지 오래됐다는 뜻이죠. 누군가를 강렬히 사랑했던 감정, 미워했던 감정, 무언가에 열정을 쏟았던 기억까지 모두 묻어버리는데 익숙해진 거죠. 그림을 통해 조금씩 내 안의 잠들었던 감정을 깨워보는 건 어떨까요?”

김재희 기자 jetti@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